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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인사이드] 김정남 사촌 이한영 피살사건 재조명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처조카인 이한영(본명 이일남) 씨. 탈북 후 정착한 한국에서 지난 1997년 북한 공작원의 총에 맞아 숨졌다.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처조카인 이한영(본명 이일남) 씨. 탈북 후 정착한 한국에서 지난 1997년 북한 공작원의 총에 맞아 숨졌다.

매주 월요일 주요 뉴스의 배경을 살펴보는 ‘뉴스 인사이드’ 입니다. 최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이복형 김정남 피살을 계기로 해외를 떠도는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일가 친인척들에 새삼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북한의 ‘로열 패밀리’들이 언제, 그리고 왜 평양을 떠났는지, 최원기 기자가 전해 드립니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이복형으로 지난 13일 말레이시아 공항에서 피살된 김정남이 마지막으로 목격된 건 2014년 9월입니다. 당시 프랑스 파리 샹젤리제 거리에 있는 호텔에서 한 여성과 식사를 하러 가는 모습이 한국 언론에 포착됐습니다.

당시 김정남은 북한 상황에 대한 기자의 질문에 "잘 모른다"며 즉답을 피했습니다. 또 고모부 장석택의 숙청에 대해서도 "할 말이 없다"고 대답했습니다.

지난 2007년 2월 베이징 공항에 나타난 김정남의 모습.
지난 2007년 2월 베이징 공항에 나타난 김정남의 모습.

중국과 동남아시아를 떠돌던 김정남이 프랑스에 나타난 것은 아들 김한솔 때문인 것으로 추정됩니다. 김한솔은 당시 프랑스 파리정치대학에서 공부하고 있었습니다.

앞서 2012년 10월 동유럽 보스니아의 국제학교인 ‘유나이티드 월드 칼리지’에 재학 중이던 김한솔은 핀란드 방송과 인터뷰를 하면서 주목을 받았습니다.

김한솔은 이 인터뷰에서 할아버지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이나 삼촌인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만나본 적이 없으며, 그들이 어떻게 독재자가 됐는지도 모른다고 말했습니다. 김한솔입니다.

[녹취: 김한솔] ”I’ve never met them so I really don’t know how…”

핀란드TV와 인터뷰한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손자 김한솔.
핀란드TV와 인터뷰한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손자 김한솔.

김정남이 국제사회에 처음 알려진 건 지난 2001년 5월입니다. 위조 여권을 들고 일본에 입국하려다 일본 당국에 적발된 겁니다.

김정남은 이 일로 아버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눈 밖에 났고, 결국 후계구도에서 제외된 채 홍콩과 마카오 등을 떠도는 신세가 됐습니다. 2010년 10월 중국 공항에 나타난 김정남의 목소리입니다.

[녹취: 아사히TV] "개인적으로 3대 세습에 반대합니다. 그러나 내부 요인이 있으면 따라야 합니다. 저는 유감스런 것이 없고 관심도 없고 개의치 않습니다.”

김정은 위원장의 친형으로 올해 36살인 김정철은 김정남과 달리 평양에 살면서 비교적 자유롭게 해외를 드나드는 것으로 보입니다.

북한 김정은 제1국방위워장의 친형 김정철(왼쪽)이 에릭 클랩튼의 공연을 보기 위해 영국 런던 로열 앨버트 홀에 모습을 드러냈다.
북한 김정은 제1국방위워장의 친형 김정철(왼쪽)이 에릭 클랩튼의 공연을 보기 위해 영국 런던 로열 앨버트 홀에 모습을 드러냈다.

영국의 유명 가수 에릭 크랩턴을 좋아하는 것으로 알려진 김정철은 2011년에 싱가포르에서, 또 2006년에는 독일에서 에릭 클랩턴 공연을 관람하는 장면이 언론에 노출되기도 했습니다.

전문가들은 김정철이 내성적인 성격으로 인해 후계구도에서 밀려났다고 말합니다. 한국 동국대학교 김용현 교수입니다.

[녹취:김용현 교수] “김정철의 성격 자체가 내성적인 반면 김정은은 동생이지만 외향적이고 정치에 관심도 많고 대중적인 성격이기 때문에…”

북한 최고 권력자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권력 투쟁에서 밀려나 수 십 년째 외교관 신분으로 해외를 떠도는 친인척도 있습니다. 현재 체코 대사로 있는 김평일입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이복형인 김평일은 지난 1980년대 김정일과의 권력투쟁에서 이른바 ‘곁가지’로 밀려나 30년 넘게 동유럽 국가 대사로 전전하고 있습니다. 평양 교원대학 출신으로 2002년에 탈북한 이숙 씨입니다.

[녹취: 이숙]”김평일도 있고 남동생도 있고, 여동생도 있었는데 외국으로 몽땅 보냈어요, 김성애가 난 자식들은 곁가지라고 하면서, 오직 김경희만 남겨두고, 대사로 내보냈어요.”

1988년 헝가리주재 대사로 임명된 뒤 불가리아, 핀란드, 폴란드 대사를 거쳐 지금은 체코 대사를 맡고 있습니다. 하지만 김평일은 외국 대사관 행사 참석을 제외하고 공개 활동은 대체로 삼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김정일 일가의 여인 가운데 가장 먼저 해외로 나간 사람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부인이자 김정남의 친모인 성혜림입니다. 영화 ‘분계선 마을’ 등으로 유명한 영화배우였던 성혜림은 당시 노동당 선전선동부 과장이었던 김정일의 눈에 띄어 1969년부터 그와 동거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2년 뒤 김정남을 낳았습니다. 그러나 김정일이 1970년대 중반 만수대예술단 무용수 출신인 고용희와 동거에 들어가자 이듬해 모스크바 행을 택했습니다.

모스크바에서 지내는 동안 성혜림은 신경쇠약과 우울증을 겪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리고 모스크바에서 외로운 생활을 하던 성혜림은 2002년 5월 삶을 마감합니다.

모스크바에서 성혜림을 돌봤던 언니 성혜랑은 1990년대 후반 딸 이남옥과 함께 프랑스로 망명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또 성혜림의 조카 이한영도 모스크바를 거쳐 1982년 남한으로 망명했습니다. 원래 이름이 ‘이일남’이었던 이한영은 1997년 ‘대동강 로열 패밀리 서울 잠행 14년’이라는 책을 출판하면서 김정일 일가의 내막을 폭로했습니다.

지난 1981년 8월 평양에서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그의 장남 김정남(김 국방위원장 옆) 등이 함께 찍은 가족사진. 사진 뒤쪽 왼쪽부터 김정남의 이모 성혜랑과 그녀의 자녀 이남옥, 이일남(이한영). 이한영은 어머니, 여동생과 탈북한 후 한국에 혼자 정착해 살다가 북한이 보낸 공작원에 의해 지난 1997년 피살됐다.
지난 1981년 8월 평양에서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그의 장남 김정남(김 국방위원장 옆) 등이 함께 찍은 가족사진. 사진 뒤쪽 왼쪽부터 김정남의 이모 성혜랑과 그녀의 자녀 이남옥, 이일남(이한영). 이한영은 어머니, 여동생과 탈북한 후 한국에 혼자 정착해 살다가 북한이 보낸 공작원에 의해 지난 1997년 피살됐다.

그러자 북한은 그 해 2월 공작원을 남파해 이한영을 살해했습니다. 살아 생전 이한영과 접촉했던 세계북한연구센터 안찬일 소장입니다.

[녹취:안찬일] “최순호라고 노동당 사회문화부 거물급 공작원이 1 명의 동료를 데리고 내려와서 분당의 아파트에서 이한영을 저격하고 다시 올라가 공화국 영웅칭호까지 받았고..”

가장 최근 해외 언론에 모습을 드러낸 북한의 ‘로열 패밀리’는 고용숙입니다. 고용숙은 김정은 위원장의 생모인 고용희의 여동생입니다. 지난해 5월 미국 ‘워싱턴 포스트’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은 김정은의 어린 시절을 자세히 전하면서 관심을 모았습니다.

고용희는 당시 한국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자신들이 망명을 한 것은 권력의 비정함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밝혔습니다.

이렇듯 북한 당국은 최고 권력자의 친인척을 ‘곁가지’로 분류해 제거하거나 외부 활동을 엄격히 통제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위협을 느낀 친인척들은 스스로 북한을 등지고 해외로 도피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VOA뉴스 최원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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