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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따라잡기] 피델 카스트로


27일 쿠바 수도 아바나 시내 관공서 건물 앞에 피델 카스트로 전 국가평의회 의장 영정이 놓여져있다. 쿠바 당국은 다음달 4일 열리는 장례식까지 9일동안의 국상 기간을 선포했다.

27일 쿠바 수도 아바나 시내 관공서 건물 앞에 피델 카스트로 전 국가평의회 의장 영정이 놓여져있다. 쿠바 당국은 다음달 4일 열리는 장례식까지 9일동안의 국상 기간을 선포했다.

뉴스의 배경과 관련 용어를 설명해드리는 뉴스 따라잡기 시간입니다. 쿠바의 공산혁명을 이끌었던 피델 카스트로 전 국가평의회 의장이 지난주 금요일(25일) 90세를 일기로 사망했습니다. 카스트로 전 의장은 인민을 위해 싸운 혁명가란 찬사와 동시에 쿠바인들의 인권을 탄압한 독재자란 엇갈리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요. 뉴스 따라잡기, 오늘은 피델 카스트로 전 의장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김현숙 기자입니다.

“피델 카스트로의 일생”

피델 카스트로는 1926년 스페인에서 쿠바로 이주해온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6살 때 가톨릭 교회에서 세례를 받고 줄곧 예수회 학교에 다녔는데요. 카스트로는 어린 시절 공부보다는 운동하는 걸 더 좋아하는 활달한 소년이었다고 합니다.

1945년 쿠바의 아바나 대학에 입학한 카스트로는 정치적인 활동에 관심을 보이게 되는데요. 제국주의 반대와 미국개입 반대를 주장하는 운동을 전개했고, 1946년엔 라몬 그라우 당시 쿠바 대통령을 비난하는 공개 연설을 해 신문 1면에 실리기도 했습니다.

1950년부터 변호사로 활동하기 시작한 카스트로는 크고 작은 반정부 시위에 가담했고, 1953년 당시 미국의 지원을 받던 풀헨시오 바티스타 독재정권을 타도하기 위해 몬카다 병영을 습격했지만, 결국 실패해 징역 15년 형을 선고 받았습니다.

2년 뒤인 1955년 특사로 석방된 카스트로는 멕시코로 건너간 뒤 바티스타 독재 정권을 전복시키기 위한 조직을 건설하고 쿠바 혁명을 준비하게 되는데요. 1956년 체 게바라 등 혁명가들과 함께 쿠바를 공격했습니다.

1959년 1월 바티스타 정권을 무너뜨린 카스트로는 총리에 취임했습니다. 50년 가까이 총리와 공산당 제1서기, 국가평의회 의장직을 맡으며 쿠바를 이끌다가, 건강 악화를 이유로 2008년 친동생인 라울 카스트로에게 정권을 물려줬고요. 2011년에는 마지막으로 갖고 있던 직함인 공산당 제1서기직까지 내려놓았는데요. 그리고 지난 25일밤, 90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카스트로 정권 주요 일지”

1959년 혁명에 성공한 카스트로는 쿠바를 사회주의 국가로 선언합니다. 토지개혁을 통해 국민에게 토지를 돌려주고 가난한 사람들의 권리를 보호하겠다고 약속했는데요. 하지만 권력을 잡은 카스트로는 소련의 스탈린 체재를 본뜬 일당 독재 정권을 세우고, 정부에 반대 목소리를 내는 사람을 억압하기 시작했습니다.

[녹취: 피델 카스트로 연설 ]

피델 카스트로는 또한, 미국과도 대립각을 세우게 됩니다. 민간기업 국유화를 진행하면서 미국 등 외국 자본을 모두 몰수한 건데요. 1961년 1월, 미국의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쿠바의 미국 대사관을 폐쇄하고 쿠바와의 국교를 단절했습니다.

이후 쿠바는 반미를 주장하며 미국을 비롯한 서방과 맞서는 반면, 소련을 추종하면서 남미와 아프리카 일대로 공산혁명 수출을 시도했습니다.

결국, 미국은 공산주의 확산을 막기 위해 1961년 쿠바의 피그만을 침공했지만 이 계획은 실패로 돌아갔고요. 이듬해에는 카스트로가 미국 플로리다 주 코 앞에 있는 자국 영토 내에 소련의 핵미사일을 배치하려다 ‘쿠바 미사일 위기’를 불러서 핵전쟁의 공포를 일으키기도 했는데요. 당시 미국의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미국이 쿠바를 침공하지 않기로 확약하는 동시에 쿠바에 대한 봉쇄정책을 펼쳤습니다.

1991년 소련이 붕괴하면서 쿠바는 경제적으로 큰 타격을 입게 됩니다. 하지만 피델 카스트로는 쿠바의 경제난이 미국의 대쿠바 경제 제재 때문이라고 주장했고요. 수도 아바나에서 대규모 반미 집회를 이끌기도 했습니다.

경제적 궁핍함과 정치적 압박을 이기지 못하는 수많은 쿠바인이 배를 타고 미국으로 향하게 됐고, 1994년 카스트로가 난민의 방출을 막지 않겠다고 선언하면서 약 4만 명의 쿠바인이 미국으로 망명했는데요. 미국과 쿠바 관계는 지난 2014년 말에 미국이 쿠바와의 외교 관계 정상화를 선언하면서 회복되기 시작했습니다.

“카스트로를 둘러싼 엇갈리는 평가”

카스트로는 인민을 위해 싸우고 소탈한 모습을 보인 혁명 지도자였다는 긍정적인 평가와 함께, 인권 탄압을 저지른 잔인한 독재자였다는 비판을 동시에 받고 있습니다.

[현장음: 리틀 아바나 거리]

카스트로의 사망 소식이 알려진 이후, 쿠바 난민이 많이 거주하는 미국 동남부 플로리다 주의 ‘리틀 아바나’에는 수많은 사람이 몰려나와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고, 거리의 차들은 경적을 울리며 카스트로의 죽음을 기뻐했습니다.

[녹취: 리틀 아바나 쿠바 출신 이민자들]

그리고 이곳에서 만난 쿠바 출신 이민자들은 카스트로가 쿠바 국민을 억압한 나쁜 독재자였다고 기억하는 가하면, 쿠바가 아직 민주화가 되지 않았는데 카스트로의 죽음으로 쿠바의 변화를 기대한다는 사람들도 있었죠.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당선인을 비롯한 공화당 정치인들 역시 피델 카스트로는 국민을 억압한 독재자였다며 부정적인 평가를 쏟아냈는데요. 서방 지도자들의 반응도 부정적인 평가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중국과 러시아를 비롯한 공산주의 국가들과 중남미 좌파 정권 등 쿠바의 우방들은 일제히 카스트로의 생애를 칭송하면서 애도를 보냈습니다.

특히 북한은 카스트로의 사망 소식에 북한 전역에 애도 기간을 선포할 정도로 가장 적극적인 반응을 보였는데요. 카스트로는 생전 북한을 방문해 김일성 주석과 회담하기도 할 정도로 북한 김일성 정권과의 친분이 두터웠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피델 카스트로에 대한 평가는 이렇듯 나뉘고 있지만,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공통된 모습도 있는데요. 카스트로 의장의 젊은 시절, 녹색 군복을 입고 시가를 입에 문 모습은 혁명가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인식되기도 했죠.

또한, 카스트로는 집권한 총 기간이 52년이 넘으면서 세계에서 가장 오래 집권한 지도자로 기네스북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뉴스 따라잡기, 오늘은 피델 카스트로 전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에 관해 알아봤습니다. 지금까지 김현숙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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