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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따라잡기] 후안 마누엘 산토스


후안 마누엘 산토스(오른쪽) 콜롬비아 대통령이 지난 7일 수도 보고타의 대통령궁에서 회견을 열어 올해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된 소감을 밝히고 있다. 왼쪽은 부인 마리아 여사.
후안 마누엘 산토스(오른쪽) 콜롬비아 대통령이 지난 7일 수도 보고타의 대통령궁에서 회견을 열어 올해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된 소감을 밝히고 있다. 왼쪽은 부인 마리아 여사.

뉴스의 배경과 관련 용어를 설명해드리는 뉴스 따라잡기 시간입니다. 올해 노벨평화상은 50여 년 만에 반군과 평화협정을 체결한 후안 마누엘 산토스 콜롬비아 대통령에게 돌아갔습니다. 협정안은 비록 국민투표에서 부결됐지만 반세기 넘게 이어져 온 콜롬비아 내전을 끝낼 물꼬를 튼 공로를 인정받은 건데요. 뉴스 따라잡기 오늘은 올해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후안 마누엘 산토스 콜롬비아 대통령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박영서 기자입니다.

"정치 명문, 신문 재벌가 출신의 대통령"

후안 마누엘 산토스 콜롬비아 대통령은 1951년생, 올해로 65살입니다. 산토스 대통령 가문은 대대로 여러 명의 정치인을 배출해낸, 콜롬비아에서는 알아주는 명문입니다.

산토스 대통령의 큰 할아버지인 에두아르도 산토스는 1938년부터 1942년까지 콜롬비아의 대통령을 지냈고, 사촌인 프란시스코 산토스는 알베로 우리베 정권에서 부통령을 지냈습니다.

산토스 가문은 또 콜롬비아의 유력 일간지인 ‘엘 티엠포’의 대주주로 산토스 대통령의 아버지는 50년 넘게 엘 티엠포의 편집국장을 지냈습니다.

"국제 경험이 많은 정치인"

후안 마누엘 산토스 대통령은 콜롬비아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한 후 미국 유학길에 올라 미국 캔자스대학교에서 경제와 경영학을 전공했습니다. 이후 곧바로 영국 런던에 소재한 ‘국제커피기구(International Coffee Organization)’의 콜롬비아 대표로 발탁돼 9년 동안 국제 행정 경험을 쌓았습니다. 이 기간 중 영국 정경대학에서 경제학 석사 학위도 받았습니다.

귀국한 후에는 엘 티엠포 신문의 부국장으로 일했는데요. 10년간 언론인으로 활동하는 동안 정치권에 입문하라는 권유를 많이 받았던 산토스 대통령은 1991년, 당시 가비리아 대통령이 제의한 무역장관직을 수락하면서 정계에 투신합니다. 산토스 대통령은 2000년 안드레 파스트라나 행정부 때는 재무장관을 지냈습니다. 이 시기, 콜롬비아 최대 무장반군조직인 콜롬비아무장혁명군(FARC)과의 협상에 참여하는데요. 하지만 협상 과정에 실망해 곧 사임했습니다.

“정치 지도자로 부상”

후안 마누엘 산토스 대통령은 2005년에 직접 새로운 당을 만들었습니다. 당시 콜롬비아의 가장 힘 있는 정당은 1840년대에 만들어진 자유당으로, 산토스 가문 역시 대대로 자유당에서 잔뼈가 굵었는데요. 하지만 당시 알바로 우리베 대통령이 재선을 위해 헌법을 개정하려고 하자 자유당은 이에 반대해 개헌을 지지하는 의원들을 제명 처분했습니다.

당시 우리베 대통령을 지지했던 산토스 대통령은 자유당과 결별하고 우리베 지지자들을 하나로 연합하는 ‘국민사회연합당’이라는 이름의 신당을 창당했습니다.

2006년 헌법 개정을 통해 재선에 성공한 우리베 대통령은 산토스 대통령의 충성심에 보답해 가장 중요한 보직 가운데 하나인 국방장관에 발탁합니다.

“초강경 노선의 국방장관”

산토스 대통령은 국방장관 재임 시기, ‘민주주의적 안보’를 주창하는 우리베 대통령 아래서 FARC 등 반군을 상대로 초강경 노선을 취했습니다. 이는 산토스 대통령의 정치 이력 중 가장 논란 많은 시기이기도 한데요. 특히 2008년 3월, FARC 지도급 인사를 사살하기 위해 에콰도르 국경을 넘어가는 공습을 승인해 에콰도르를 비롯한 국제사회의 거센 비난을 받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산토스 대통령이 장차 대통령의 꿈을 꾸는 발판이 된 시기기도 합니다.

같은 해 7월, 산토스 대통령은 6년간 FARC에 억류돼 있던 잉글리드 베탕쿠르 전 대통령 후보와 미국인 등 14명을 총격전 없이 구출하는 데 성공하면서 국제사회의 명성과 함께 인기 정치인으로 부상하게 됩니다.

“대통령 당선 후 평화의 길로 노선 변경 “

우리베 대통령의 3선이 불가능해지자, 산토스 대통령은 2010년 국방장관에서 물러나 국민사회연합당의 후보로 대통령 선거에 출마합니다. 그리고 우리베 대통령의 전폭적인 지원 속에 69%의 압도적인 득표로 대권을 거머쥐는데요. 하지만 우리베 대통령의 계승자로 여겨졌던 산토스 대통령은 취임 직후부터 우리베 전 대통령과 거리를 두기 시작합니다. 특히 2012년부터는 FARC와 평화협상을 개시하면서 강경 노선 일변도였던 전 정권과는 확연히 다른 노선을 취하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우리베 전 대통령은 산토스 대통령을 위선자라고 비난하는 등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반목하기 시작했습니다.

2014년 재선에 나선 산토스 대통령은 우리베 전 대통령의 지지를 받은 후보와 맞붙어 결선투표까지 가는 접전을 펼친 끝에 연임에 성공합니다.

“FARC와의 평화 협상”

2012년 8월, 산토스 대통령은 FARC와의 평화 협상을 재개했습니다. 이전 정부들도 간헐적으로 평화협상을 벌였지만 번번이 무산됐었는데요. 하지만 2012년 11월, 쿠바 정부의 주재로 아바나에서 양측간의 협상이 공식 진행됐습니다.

이 평화협상은 재임 기간 내내 FARC와 싸워온 우리베 전 대통령의 업적을 위협하는 모양새였고, 우리베 전 대통령과 우리베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보수적인 정치인들은 FARC와의 평화 협상 반대 운동에 나섰습니다.

[녹취: 평화협정 서명식 보도]

약 4년간의 긴 협상 과정을 거쳐, 마침내 지난 9월 말 50년 넘는 내전을 종식하기 위한 평화 협정 서명식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평화 협정안이 국민투표에서 부결되면서 양측은 다시 협정 내용을 수정하고 있습니다. 대다수 콜롬비아인들은 평화 협정의 내용이 반세기 넘게 콜롬비아 국민에게 고통을 안겨준 FARC에게 너무 관대하다는 지적입니다.

후안 마누엘 산토스(가운데 왼쪽) 콜롬비아 대통령이 지난달 26일 카리브 해안도시 카르타헤나에서 반기문(왼쪽) 유엔사무총장 등 국제사회 지도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로드리고 론도뇨(가운데 오른쪽) 콜롬비아 무장혁명군(FARC) 최고사령관과 함께 평화협정에 서명한 뒤 악수하고 있다.
후안 마누엘 산토스(가운데 왼쪽) 콜롬비아 대통령이 지난달 26일 카리브 해안도시 카르타헤나에서 반기문(왼쪽) 유엔사무총장 등 국제사회 지도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로드리고 론도뇨(가운데 오른쪽) 콜롬비아 무장혁명군(FARC) 최고사령관과 함께 평화협정에 서명한 뒤 악수하고 있다.

“노벨 평화상 수상 논란”

[녹취: 노벨 평화상 수상 발표]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후안 마누엘 산토스 콜롬비아 대통령이 선정됐다는 발표 듣고 계십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평화 협정이 부결된 상황에서 산토스 대대통령이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된 것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습니다.

콜롬비아 국민 사이에서도 엇갈린 반응이 나오고 있는데요. 콜롬비아 작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에 이은 또 한 명의 노벨상 수상자가 탄생했다며 콜롬비아 국민의 자긍심을 높여줬다는 평가도 있는 가 하면, 산토스 대통령이 콜롬비아 국민은 신경 쓰지 않고, 개인의 명성에만 신경 썼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습니다. 일각에서는 노벨 평화상 수상이 오히려 콜롬비아의 민심만 분열시킬 것이라는 전망도 있습니다.

뉴스 따라잡기 오늘은 올해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후안 마누엘 산토스 콜롬비아 대통령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지금까지 박영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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