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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터닌 스캘리아 미 연방 대법관


미 연방 대법원의 전설적 인물인 앤터닌 스캘리아 연방 대법관. (자료사진)

미 연방 대법원의 전설적 인물인 앤터닌 스캘리아 연방 대법관. (자료사진)

뉴스의 배경과 관련 용어를 설명해드리는 뉴스 따라잡기 시간입니다. 지난 13일 앤터닌 스캘리아 미 연방 대법관이 텍사스의 휴양지에서 갑작스레 사망했다는 소식이 전해져 충격을 던져줬습니다. 스캘리아 연방 대법관이 사망하면서 미국 법조계뿐만 아니라 정치권에까지 파장이 미치고 있는데요. 뉴스 따라잡기, 오늘은 지난 13일 타계한 앤터닌 스캘리아 미 연방 대법관을 조명해 봅니다. 박영서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연방 대법원의 전설적 인물, 앤터닌 스캘리아 연방 대법관”

지난 13일 향년 79세를 일기로 사망한 앤터닌 스캘리아 미 연방 대법관은 현직 연방 대법관들 가운데서는 재임 기간이 가장 길었습니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지명하고 상원의 인준을 받은 게 지난 1986년이니까 올해로 만 30년째를 맞게 됐었는데요. 지인들과 텍사스 주로 사냥여행을 떠났다가 지난 2월 13일(토요일) 오전에 휴양지 숙박시설에서 숨진 채 발견돼 충격을 던져줬습니다. 사인은 심근경색으로 알려졌습니다.

[녹취: 오바마 대통령] ” He influenced a generation of judges,lawyers, and students…

스캘리아 대법관의 사망 소식이 있던 바로 그 날 저녁에 바락 오바마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스캘리아 대법관의 죽음을 애도하는 기자회견을 했는데요. 오바마 대통령은 스캘리아 대법관이 판사와 변호사, 학생들은 물론이고 미국의 법적 지형에 깊이 영향을 미친 대법원의 전설적인 인물이었다며 애도를 표했습니다. 또 백악관과 연방 대법원은 월요일인 대통령의 날 'President's Day'에 조기를 걸고 스캘리아 대법관을 추모하기도 했습니다.

"총명한 수재였던 앤터닌 스캘리아 연방 대법관”

[녹취: 오바마 대통령] “Antonin Scalia born in Trenton, New Jersey to …”

오바마 대통령이 앤터닌 스캘리아 대법관의 추모 기자회견에서 스캘리아 대법관의 약력을 직접 소개하고 있습니다. 스캘리아 대법관은 1936년 뉴저지주 트렌턴에서 이탈리아 이민자의 외아들로 태어났는데요. 10대 후반에 미국에 이민 온 아버지는 미국에서 대학 교육을 받고 브루클린 칼리지에서 로마어 교수까지 되고요. 스캘리아 대법관의 어머니는 이탈리아계 미국인으로서는 미국의 초등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한 첫 세대였습니다. 스캘리아 대법관도 부모를 닮아 학창시절 아주 총명하고 똑똑한 우등생이었다고 합니다. 미국의 명문 사립인 조지타운 대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하버드 로스쿨, 그러니까 하버드 법률대학원을 차석으로 졸업했죠. 이후 민간 법률회사에 들어가 일하는데요, 많은 사람이 함께 일하고 싶어 할 만큼 명성이 자자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처럼 교육에 더 흥미를 느꼈던 스캘리아 대법관은 교육계로 자리를 옮겨, 한동안 버지니아 주립대학교에서 법과 교수로 재직했습니다. 스캘리아 대법관이 공직에 발을 처음 디디게 된 건 1972년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통신위원회 법률자문위원으로 위촉하면서였는데요. 이후 포드 행정부를 거쳐, 1982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연방 항소법원 판사 지명에 이어 1986년, 다시 레이건 대통령이 연방 대법관으로 지명하면서, 미국 역사상 첫 이탈리아계 연방 대법관이 탄생하게 됩니다.

“보수파의 거목, 앤터닌 스캘리아 대법관”

앤터닌 스캘리아 대법관은 30년간 연방 대법관으로 재직하면서, 보수파의 거목으로 보수주의 미국 연방 대법원의 부활을 이끈 인물이라는 평을 받고 있습니다. 스캘리아 대법관은 열렬한 헌법 원칙주의자였는데요. 헌법이란 변화하는 시대에 따라 다르게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본문 그대로 해석해야 한다는 소신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헌법은 살아있는 문서가 아니라 죽은 것이다, 살아있는 것처럼 시대에 따라 달리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고 역설하기도 했습니다. 스캘리아 대법관은 또 명석한 두뇌와 유머 있고 재치 있는 언변, 신랄하면서도 뛰어난 문장력으로 유명했습니다.

[녹취: 오바마 대통령] “a devout Catholic, he was the proud father…

오바마 대통령도 언급하고 있듯이 스캘리아 대법관은 특히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서 슬하에 9명의 자녀와 29명의 손주를 뒀습니다. 짐작하시듯, 스캘리아 대법관은 낙태 반대자였습니다. 또 동성결혼도 강력히 반대했습니다. 반면에 총기 소지와 사형제도에 대해서는 지지 입장을 보였는데요. 그런가 하면 오바마 대통령의 핵심 사업이었던 건강보험 개혁법, 일명 오바마케어는 끝까지 반대했습니다. 스캘리아 대법관은 지난 30년간, 미국 연방 대법원의 판결이 보수냐 진보냐 갈림길에 있을 때면 항상 앞장서서 보수파를 이끌었습니다.

“보수, 진보 모두에게 존경을 받은 인물”

앤터닌 스캘리아 대법관은 보수파의 거목이었지만 법학자로서 보수, 진보를 막론하고 많은 사람의 존경을 받아온 인물입니다. 스캘리아 대법관이 연방 대법원 안에서 보수파의 대표적 인물이라면 최고령 대법관으로도 유명한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대법관은 연방 대법원 안에서 진보파의 대모 같은 인물인데요. 이 두 사람이 서로 다른 정치적 사상에도 불구하고 긴 세월 깊은 우정을 나눠온 건 아주 유명한 일입니다. 지난해 7월에는 두 사람의 관계를 다룬 코믹 오페라가 무대에 올라 호평을 받기도 했습니다.

[녹취] 스캘리아/긴즈버그 오페라 공연 현장음

긴즈버그 대법관은 스캘리아 대법관의 죽음을 애도하는 추모사에서 "우리는 때때로 서로 의견이 달랐지만 최고의 친구였고, 미국의 헌법과 우리가 섬기는 연방 대법원을 숭상하는 마음은 같았다"고 회상했습니다. 스캘리아 대법관을 스승처럼 여긴 클래런스 토머스 연방 대법관은 물론이고 엘레나 케이건 대법관 같은 진보적인 대법관들도 스캘리아 대법관이 매우 따뜻하고 관대하며 매력적이었던 동료로 영원히 기억될 것이라면서 그의 죽음을 애도하고 있습니다.

뉴스 따라잡기, 오늘은 최근 타계한 앤터닌 스캘리아 전 연방 대법관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지금까지 박영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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