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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NPT 탈퇴 10년...핵 개발, 고립 심화


지난 2006년 10월 북한의 1차 핵실험 직후 대북 제재 결의를 논의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지난 2006년 10월 북한의 1차 핵실험 직후 대북 제재 결의를 논의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오늘(10일)은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에서 탈퇴한지 꼭 10년이 되는 날입니다. 당시 북한은 핵 개발 의사가 없다고 주장했지만, 이는 곧 거짓으로 드러났습니다. 지난 10년 간의 경과를 이연철 기자가 정리했습니다.

2003년 1월10일, 북한은 핵확산금지조약(NPT)를 탈퇴한다고 전격 선언했습니다. 그러면서, 1993년에 이미 탈퇴를 선언했다가 유보한만큼 NPT탈퇴의 효력이 즉시 발효된다고 주장했습니다.

[녹취: 조선중앙TV] “핵무기전파방지조약에서 탈퇴함에 따라 조약 3조에 따르는 국제원자력기구와의 담보협정의 구속에서도 완전히 벗어난다는 것을 선포한다.”

핵확산금지조약은 핵을 보유하지 않은 나라가 새로 핵무기를 갖는 것과 핵 보유국이 비 보유국에 핵무기를 제공하는 것을 금지하는 조약으로, 북한은 1985년에 가입했습니다.

북한은 미국이 적대의사 포기를 약속하고도 새로운 핵의혹을 제기하면서 중유공급을 중단하고 불가침조약 체결을 거부했기 때문에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NPT를 탈퇴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북한은 그러나, NPT에서 탈퇴하지만 핵무기를 만들 의사는 없다고 밝혔습니다.

[녹취: 조선중앙TV] “우리는 핵무기전파방지조약을 탈퇴하지만 핵무기를 만들 의사는 없으며 현 단계에서 우리의 핵활동은 오직 전력생산을 비롯한 평화적 목적에 국한될 것이다.”

하지만, 북한의 그 같은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북한은 북 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 그 해 8월에 시작된 6자회담에 참석하면서도 핵 개발을 계속했으며 2005년 2월 10일에는 핵무기 보유를 선언했습니다.

다음 해인 2006년 10월에는 핵실험계획을 발표한데 이어 10월9일에는 핵실험을 강행했습니다.

[녹취: 조선중앙TV] “우리 과학연구 부문에서는 주체95, 2006년 10월9일 지하 핵시험을 안전하게 성공적으로 진행하였다.”

북한은 이어 2009년 5월25일에 또 다시 2차 핵실험을 단행했습니다.

이밖에도 1998년 대포동 1호 미사일을 발사한 북한은 지난 14년 간 5차례나 장거리 미사일 발사 실험을 하는 등 핵무기 운반수단을 개발하기 위한 노력도 계속하고 있습니다.

국제사회는 북한의 이 같은 행동을 도발로 규정하고 강력하게 대응하고 있습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2006년 7월 북한의 대포동 2호 미사일 발사에 대한 대응으로 안보리 결의 1695호를 채택한 데 이어 북한 핵 실험과 관련해 대북 결의 1718호를 만장일치로 가결함으로써 핵 무기 등 북한의 대량살상무기를 좌시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했습니다. 아울러, 1718호는 북한에 대해 NPT에 복귀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2차 핵 실험을 강행하자 안보리는 더욱 강력한 대북결의를 채택했습니다.

[녹취: 바키 일킨 유엔 당시 안보리 의장]

당시 안보리 의장을 맡고 있던 바키 일킨 유엔 주재 터키 대사는 안보리 결의 1874호가 만장일치로 채택됐다고 밝혔습니다.

2009년 6월 채택된 1874호는 앞서 채택된 대북결의 1718호를 재확인하면서 대북제재를 한층 강화했습니다.

무기 금수 대상을 거의 모든 무기로 확대했고, 공해상에서 화물 검색을 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또한, 북한의 돈 줄을 완전히 차단하기 위해 인도적 목적이나 개발 목적을 제외한 모든 대북 금융 지원을 금지했습니다. 아울러, 북한의 기관과 개인도 제재 대상에 포함시켰습니다.

이밖에도 미국과 일본, 유럽연합 등은 유엔 제재와 별도로 북한에 대한 제재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결국 NPT에서 탈퇴한 지난 10년 동안 북한은 국제적으로 더욱 고립됐고, 이에 따라 주민들의 생활은 더욱 어려워졌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습니다.

VOA 뉴스 이연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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