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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들, 북 정치범 수용소 참상 증언


지난해 4월 한국 국가인권위원회 북한인권침해신고센터에 북한 정치범 수용소 인권 침해 실태를 고발한 탈북자 김혜숙(오른쪽) 씨. (자료 사진)

지난해 4월 한국 국가인권위원회 북한인권침해신고센터에 북한 정치범 수용소 인권 침해 실태를 고발한 탈북자 김혜숙(오른쪽) 씨. (자료 사진)

오늘(21일) 서울에선 북한 정치범 수용소 출신 탈북자들이 수용소의 참상을 고발하는 증언대회가 열렸습니다. 이들의 증언은 다음 달 영문 수기집으로 엮어져 유엔에 제출될 계획입니다. 서울에서 김환용기자가 보도합니다.

증언에 나선 탈북자들은 때론 분노가 서린 목소리로 때론 울먹이며 자신들이 겪은 처참했던 수용소 경험을 전했습니다.

국군포로 자녀 출신으로 지난 1991년부터 94년까지 요덕 수용소에 수용됐던 김기철씨는 군 복무를 마치고 탄광에 집단배치 지시를 받았을 때 흥분해서 내뱉은 말 한마디가 수용소행의 빌미가 됐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탈북자 김기철] “아니 나라가 그렇게 어렵고 힘들면 장군님 아들 먼저 가면 누가 안 가겠다고 하겠느냐, 먼저 보내라 그럼 나도 가겠다, 아니 군대 복무 10년 넘게 온갖 힘든 거 시켜 먹고 또 탄광에 가라는 게 말이나 되나, 그러니까 거기서 사람들이 술렁거리는 거에요, 10년 동안 부려먹고 탄광 보내는 게 잘못된 것이라고”

굶주림 속에서 짐승처럼 살아야 했던 충격적 증언도 나왔습니다.

가족 중 월남자가 있고 한국 사람을 만났다는 이유로 1999년부터 2002년까지 요덕 수용소에 갇혔다는 김광일씨는 개구리나 쥐 등을 잡아 먹는 것은 차라리 별식이었다며 소의 배설물에서 소화되지 않은 콩을 골라먹기까지 했다고 증언했습니다.

김 씨는 수용소에선 배가 고파야 정신을 차린다는 말이 있다며 굶주림을 교화의 수단으로 삼았다고 말했습니다.

역시 요덕 수용소에서 2년간 수감생활을 한 장영걸씨는 수용소 내 공동묘지의 참상을 전했습니다.

장 씨는 자갈 뿐인 땅에 묘비는 커녕 시체 일부가 땅 밖으로 드러난 게 태반이었고 산짐승들이 훼손한 시체들도 있었다고 밝혔습니다.

연좌제 때문에 13살의 어린 나이에 북창 수용소에 수감돼 27년간이나 갇혀 지내야 했던 김혜숙씨는 탄광에서 하루 18시간의 중노동에 시달렸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탈북자 김혜숙] “10년 동안 채탄공으로 일하면서 단 한번의 지각 결석 없이충성을 다하는 모범이 돼서 28살에 결혼 승인을 받았지만 남자들은 서른살이 넘으면 진폐증으로 사망하고 사고로 죽고 굶어 죽고 그래서 제가 서른 살 될 때까지 저하고 결혼할 대상자가 없었습니다”

한편 북한에 억류 중인 것으로 알려진 신숙자씨 모녀를 90년대 초 요덕수용소에서 봤다는 증언도 나왔습니다.

김기철씨는 신 씨 모녀는 서독에서 살다 왔기 때문에 수용소 내에서 서독집이라고 불렀다며 신 씨는 당시 폐인이 된 상태였고 어린 두 딸이 어렵게 살림을 꾸려갔다고 전했습니다.

[녹취: 탈북자 김기철] “전력 공업상 아들하고 저하고 혜원이 규원이 집에 한 달에 두 번씩 교대로 땔나무를 해다 줬어요, 아이들은 어려서 땔나무를 못하니까, 그리고 신숙자 아주머니는 그 때 당시 이미 폐인이 됐기 때문에 일을 할 정도가 못 됐어요”

신 씨의 남편 오길남씨는 지난 1985년 독일 유학 중 아내와 두 딸과 함께 북한에 들어갔다가 이듬해 홀로 탈출했습니다. 이후 남은 가족들은 수용소에 강제 수용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북한 정치범 수용소 생존자들이 주축이 돼 만든 북한정치범수용소 해체본부는 다음달 중순 영문으로 된 ‘북한 정치범 수용소 생존자 수기집’을 출간하고 유엔에 제출할 계획입니다.

서울에서 VOA 뉴스 김환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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