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나마 독재자 마누엘 안토니오 노리에가가 지난 1989년 권좌에서 축출되기 직전 모습.
파나마 독재자 마누엘 안토니오 노리에가가 지난 1989년 권좌에서 축출되기 직전 모습.

세계 여러 나라의 주요 소식을 전해드리는 '지구촌 오늘'입니다. 지금 이 시간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지 함께 알아보겠습니다.

진행자) 오늘은 어떤 소식들이 있습니까?

기자) 파나마에서 1980년대 독재자로 군림하다 미국 교도소에서 20년동안 복역했던 마누엘 안토니오 노리에가가 뇌종양 수술 뒤 회복하지 못하고 사망했습니다. 자세한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선거개입과 ‘가짜뉴스’ 생산에 항의했고요. 일본에서 혐오발언 억제법이 시행된 후 1년간 극우단체들의 시위가 절반 가량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습니다.이 소식 함께 보겠습니다.

진행자) 중미 국가 파나마의 독재자였던 노리에가가 사망했군요?

기자) 네. 지난 1983년부터 1989년까지 파나마를 통치했던 마누엘 안토니오 노리에가가 월요일 (29일) 수도 파나마시티의 ‘산토 토마스’ 병원에서 향년 83세로 숨을 거뒀습니다. 올해 초부터 수차례 진행된 뇌종양 수술 후 회복하지 못한 건데요. 당일 파나마 정부가 이 같은 사실을 공식 발표했고요. 카를로스 바렐라 파나마 대통령은 화요일 (30일) “우리(파나마) 역사의 한 장이 마무리됐다”는 글을 인터넷 사회연결망 ‘트위터’에 올렸습니다. 

진행자) ‘파나마 역사의 한 장을 마무리했다’고 평가할 정도로 비중있는 인물이었나요?

기자) 노리에가는 파나마뿐만 아니라, 중남미 전체 역사를 통틀어 손꼽히는 독재자로 평가받습니다. 지난 1983년 파나마 군 최고사령관이 된 이후, 이듬해 선출된 대통령 위에 군림하는 실권자로 활동했는데요. 마약 밀매와 돈세탁, 정적 살해 등을 지속적으로 감행한 것으로 비판받았고요. 1989년에는 아예 대통령선거를 무효화하고 스스로를 ‘최고 지도자’로 칭하며, 미국을 상대로 전쟁을 선포하기도 했습니다. 노리에가가 집권했던 1983년부터 1989년까지 6년동안 살해됐거나 실종된 사람들의 가족들이 아직도 진상규명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진행자) 스스로 ‘최고 지도자’로 칭하던 독재자 노리에가가 6년 만에 실각하게 된 원인은 뭐죠?

기자) 노리에가는 1989년 미국의 파나마 침공으로 축출됐습니다. 미군 장병 2만7천여명이 투입된 파나마 작전은 베트남 전쟁 이후 미국의 가장 큰 군사행동이었는데요. 체포된 노리에가는 미국 마이애미로 이송된 뒤 마약 밀매와 돈세탁 관련 유죄가 인정돼 2010년까지 20년여동안 미 연방교도소에서 복역했습니다. 미국 법정에서 유죄 판결을 받고 죗값을 치른 외국 정상급 지도자는 노리에가가 처음입니다.

진행자) 미국이 노리에가를 권좌에서 축출한 이유는 뭐였나요?

기자) 지난 1989년 미군의 파나마 작전 당시 백악관은 “현지 미국인들의 생명을 보호하고, 파나마의 민주주의의 과정을 복원하며, 파나마 운하 조약을 보존하기 위한 조치”라고 발표했습니다. 조지 H.W. 부시 당시 대통령이 대국민 담화를 통해 미군에 작전 개시 명령을 내린 배경을 직접 설명한 내용, 들어보시죠.

[녹취: 조지 H.W. 부시 전 미국 대통령 담화] “General Noriega's reckless threats and attacks upon Americans in Panama created an imminent danger to..." 

기자) 노리에가가 미국을 상대로 전쟁을 선포하는 와중에 파나마군의 발포로 미군 병사가 사망하는 사건이 있었는데요, 부시 당시 대통령은 현지 미국인들에게 위험이 임박했다고 설명하면서, 이들을 보호하고 노리에가를 미국 법정에 세우기 위해 작전을 명령했다고 밝혔습니다.

진행자) 당시 백악관이 보호해야할 것 중 하나로 밝힌 ‘파나마 운하 조약’도 잠시 설명해 주시죠. 

기자) 네, 파나마 운하는 북미와 남미 대륙을 연결하는 '허리' 지점에 있는 파나마 땅에 물길을 파서 대서양과 태평양을 연결하는 국제운하인데요. 미국이 이 지역에 ‘치외법권’을 획득해 1904년 건설을 시작해 1914년 개통했습니다. 남미 대륙을 돌아갈 필요없이 카리브해를 통과하기만 하면 되기 때문에, 대서양에서 태평양으로 가는 해양 교통이 획기적으로 단축됐는데요. 하지만 파나마 정부는 운하 반환을 끊임없이 요구했고요. 1977년, 운하의 영구 중립을 보증하고 1999년에 돌려받는다는 내용의 파나마 운하 조약을 미국과 체결했습니다. 이 조약을 근거로 전 세계 모든 국가의 선박이 안전하게 파나마 운하를 통행할 수 있게 됐습니다.

진행자) 노리에가는 미국 교도소에서 나온 뒤에도 세계 각국에서 죗값을 치러왔다고요?

기자) 맞습니다. 노리에가는 미 마이애미 연방 교도소에서 출소한 직후 프랑스로 인도됐습니다. 중남미 마약 조직의 자금을 세탁해 준 혐의로 프랑스 현지에서 6년형을 선고받고 약 2년동안 복역한 뒤 2011년 12월 본국으로 추방됐는데요. 파나마로 돌아간 뒤에도 집권 당시 저지른 살인과 부정부패 등에 대해 유죄판결이 나와 60년형을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지난 1월 뇌종양 수술을 위해 교도소에서 잠시 나와 가택연금 상태로 지내던 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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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행자) 에마뉘엘 마크롱 신임 프랑스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회담했군요?

기자) 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월요일 (29일) 파리 외곽 베르사유 궁을 방문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회담했습니다. 이날 회담에서 마크롱 대통령은, 시리아 내전에서 러시아가 지원 중인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이 화학무기를 사용하면 즉각 응징하겠다고 경고하는 한편, 러시아의 자치공화국인 체첸에서 일어난 동성애자 탄압사건을 언급하며 러시아 인권 문제를 예의주시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진행자) 프랑스 대통령이 러시아의 대내·외 정책을 직설적으로 비판했군요?

기자) 그렇습니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양국 수교 300주년을 맞아 프랑스를 찾았는데요. 우호적인 분위기에서 진행될 만한 이번 일정에서, 마크롱 대통령이 껄끄러운 주제들을 놓고 직설적으로 문제를 제기한 데 대해 푸틴 대통령의 심기가 불편했을 것이라고 외신들은 설명했습니다.

진행자) 회담 후에도 마크롱 대통령의 러시아 비판이 이어졌다고요?

기자) 네.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회담 후 공동기자회견에서 ‘RT’와 ‘스푸트니크’ 등 러시아 국영 언론의 보도행태를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이들 매체들이 지난 프랑스 대선 과정을 전하면서 자신과 대선 캠프에 대한 ‘가짜 뉴스’를 생산해 선거에 개입했다고 지적한 겁니다. 러시아는 지난 프랑스 대선에서 마크롱 당시 후보의 결선투표 경쟁자인 극우정당 '국민전선(FN)'의 마린 르펜 후보를 지지한 것으로 알려져있습니다. 

진행자)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뭐라고 했습니까?

기자)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는 결코 프랑스 대선에 개입하지 않았다”고 이날(29일) 회견에서 해명했습니다. 또한 시리아 내전과 관련해서도, ISIL 등 "테러집단에 대처하려면 정부를 확고하게 세워야 한다”며 아사드 정권을 계속 지원하겠다는 의지를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러시아가 지난 2014년 우크라이나 영토인 크림반도를 강제병합한 뒤 이어지고 있는 서방측의 경제 제재는 사태의 해법이 될 수 없다고 푸틴 대통령은 강조했습니다.

진행자) 비판과 반박이 오갔는데, 두 나라 정상이 의견 일치를 본 부분도 있다고요?

기자) 그렇습니다. 프랑스 관영방송 ‘프랑스 24’는 마크롱 대통령과 푸틴 대통령이 의제를 사전에 정해놓지 않고 진행한 이번 회담을 통해 각 방면에서 견해 차가 큰 것을 확인했지만, 솔직한 대화를 통해 공감대를 찾은 부분도 있었다고 전했는데요. 두 정상은 북한 핵문제 해결과,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단체 ISIL를 비롯한 국제테러조직에 대응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협력하기로 합의했습니다. 또 이번 회담에서 양국은 서방 측과 러시아의 입장 차가 확연한 우크라이나 사태 해소를 위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독일, 프랑스가 참가하는 4자회담을 재개하는 데 뜻을 같이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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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행자) 일본에서 혐오발언 억제법이 제정된 지 1년이 다 됐는데요. 어떻게 가시적인 성과는 좀 있습니까?

기자) 네, 일본 경찰청이 최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혐오발언 억제법이 공식 시행에 들어간 지난해 6월 초부터 올 4월 말까지 11개월간, 혐오발언 관련 시위는 모두 35건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는 한 해 전 같은 기간의 61건에 비하면 약 절반 정도 줄어든 수치입니다. 

진행자) 혐오발언 억제법이 제정된 결정적인 이유가 일본에 거주하는 한국인들 때문이었다고요. 

기자) 그렇습니다. 일본에서는 2000년대 이후, 극우단체나 일부 주민들을 중심으로 한국인들에 대한 혐오감이나 적대감을 표출하는 단체 행동인, 이른바 ‘혐한 시위’가 종종 있었는데요. 일본인들은 이런 혐한 시위를 영어로 바꿔 ‘헤이트 스피치(hate speech)’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혐오 발언’이란 뜻인데요. 최근 5~6년 새 주로 한인을 대상으로 한 이 같은 헤이트 스피치가 일본 주요 도시에서 크게 늘고 시위대의 행동이 위험 수위에 이르렀다고 판단되면서 일본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이 같은 행위를 금지시키자는 입법 청원이 줄을 이었고요. 결국 지난해 5월 24일 혐오발언 억제법을 제정하기에 이른 겁니다. 

진행자) 하지만 일각에서는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고요.

기자) 네, 이 법은 일본 밖에서 태어난 사람들이나 그 후손들에 대한 폭언이나 공격적 행동은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명시하고 있는데요. 하지만 구체적인 처벌 조항이 없는 선언적 법규입니다. 이 때문에 실효성이 의문시된다는 지적이 많고요. 전문가들은 극우단체들이 여전히 에둘러서 혐오발언을 할 가능성이 많다고 지적하고 있는데요. 일본 경찰청은 재일 한인이나 다른 소수 종족에 대한 극우단체들의 혐오발언이나 시위를 완전히 근절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혐오발언이 용인되지 않는다는 사회적 각성을 일으키는데는 도움이 됐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진행자) 혐오발언 억제법에는 일본 중앙 정부와 각 지방자치단체측에 차별 금지를 위한 조치를 취하도록 촉구하고 있던데요. 

기자) 맞습니다. 지방정부로서는 제일 처음 가와사키시가 극우단체들의 공원 사용 등을 금지하는 등의 조치를 취했는데요. 이 가와사키 시는 재일 한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으로 손꼽히는 곳입니다. 반면 혐한 시위도 끊이지 않았는데요. 지난해 일본 정부가 혐오발언 억제법을 제정한 데는 가와사키 주민들의 청원이 발단이 된 겁니다. 가와사키 시는 지난 4월 말, 혐오 관련 시위를 사전에 규제하기 위한 지침서 초안도 공개했는데요. 하지만 다른 대부분의 지방정부들은 헌법에 보장된 표현의 자유를 위반할 수 있다는 우려로 이를 따르지 않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