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각 국의 주요 소식을 알아보는 '지구촌 오늘' 입니다.중국 해양경찰선이 센카쿠 인근 해역에 하루 이상 머물자 일본이 강력히 항의했습니다. 시리아 반군이 바샤르 알 아사드 대통령의 차량 행렬을 공격했다고 주장했지만, 정부는 부인했습니다. 버마에서 1988년 민주화봉기 25주년을 맞아 집회가 열렸습니다. 필리핀 당국이 타이완 어부에게 총격을 가해 사망케한 해경들에게 살인죄를 적용하기로 했습니다. 오늘도 VOA 김근삼 기자와 함께 알아보겠습니다.

진행자) 중국 해양경찰선이 센카쿠 12해리 해역에 계속 머물고 있다고요?

기자) 센카쿠 인근 해역에서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데요. 일본 해상보안청에 따르면 중국 해경선 4척이 어제(7일) 오전부터 센카쿠 12해리 해역에서 하루 이상 계속 머물고 있습니다. 12해리는 영해의 기준이 되는 수역인데요. 지난 2월 중국의 해양감시선이 12해리 수역에서 14시간 가량 항해한 적이 있었는데, 하루 이상 머물고 있는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진행자) 이번에는 해양경찰선이 진입했다고 하셨는데 해양감시선과는 다르죠?

기자) 중국은 지난달에 국가해양국과 공안 등에 흩어져있던 해양 경찰 기능을 통합해서 해경국을 공식 출범했는데요. 경찰선은 자동화기를 비롯해서 더욱 강한 무장을 갖추고 있다는 점이 감시선과 다른데요. 중국 해경국은 출범 이후 여러 차례 센카쿠 인근 해역에 경찰선을 보냈고, 이번에는 하루 이상 머물고 있는겁니다.

진행자) 일본이 강하게 항의했겠군요?

기자) 일본은 중국대사관 관계자를 불러서 강력히 항의하고, 즉각적인 철수를 요구했는데요.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상은 중국 선박이 최장시간 침범한 데 대해 극도의 유감을 표한다면서, 힘으로 현상을 바꾸려는 중국의 방식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진행자) 중국은 어떤 입장입니까?

기자) 중국은 센카쿠를 댜오위다오라고 부르고 자국의 영토라는 입장 아닙니까? 중국 국가해양국은 이번 상황과 관련해, 중국 해경이 댜위위다오 영해에 침범한 일본 선박을 발견했고, 해경선 4척이 출동해서 선박을 쫓아냈다고 주장했습니다. 중국대사관은 역시 일본 외무성의 철수 요구에 대해, 오히려 일본 우익 분자들의 중국 영해 불법 침임에 대해 엄정한 항의를 했고, 모든 일본 선박이 해당 해역에서 떠날 것을 요구했다고 밝혔습니다.

진행자) 양측의 주장이 완전히 배치되는군요?

기자) 네. 특히 중국과 일본은 센카쿠 열도를 둘러싼 영유권 긴장이 고조되면서, 충돌 우려도 높아지고 있는데요. 중국과 마찬 가지로 일본도 해상자위대의 대비태세를 강화하고 있습니다.

진행자) 얼마 전에 일본이 항공모함에 가까운 크기의 호위함을 진수했다는 소식도 있었죠?

기자) '이즈모'라는 이름의 함정인데요. 일본은 호위함이라고 부르고 있지만 넓은 갑판을 갖춘 모습은 항공모함에 가깝습니다. 일본이 갖춘 가장 큰 수상전투함이고요, 일본 매체들은 최대 14대의 전투기를 탑재할 수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한편 중국은 일본의 이즈모함 진수에 대해서도 군국주의 망령을 되살리려 한다며 비난했는데요. 특히 '이즈모'란 이름이 과거 일본의 중국 침략 당시 일본 해군 함대 소속 기함과 같아서, 더욱 큰 반발을 사고 있습니다.

진행자) 중동 소식입니다. 시리아 반군에서 바샤르 알 아사드 대통령의 차량 행렬을 공격했다는 주장이 나왔는데, 아사드 대통령은 무사한 것 같군요?

기자) 앞서 오늘 오전(7일) 시리아 반군이 수도 다마스쿠스에서 아사드 대통령의 차량 행렬에 공격을 가하는 데 성공했다고 주장했습니다. 당시 아사드 대통령은 이슬람 성월인 라마단 종료를 축하하는 '이드 알 피트르' 기도회에 참석하기 위해 사원으로 향하던 중이었는데, 여기에 박격포 공격을 가했고 사상자가 발생한 것을 확인했다는 겁니다. 하지만 시리아 정부는 즉각 이런 주장을 부인했고요, 또 아사드 대통령이 사원에서 기도를 올리는 모습도 TV로 방영했습니다. 아사드 대통령은 전혀 이상이 없는 모습이었습니다.

진행자) 그래도 공격이 발생했던 것은 사실인가 보군요?

기자) 네. 시리아 현지 소식통들도 아사드 대통령과 측근들의 자택이 위치한 다마스쿠스 말키 지구에서 포탄 공격에 의한 것으로 보이는 연기가 피어올랐다고 전했는데요. 반군 측은 아사드 대통령이 무사하더라도, 그의 자동차 행렬에 공격을 가했다는 것 만으로 시리아 정부에 동요를 가져올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진행자) 계속해서 시리아 관련 소식인데, 국제사면위원회죠, 엠네스티가 미사일 피해 지역의 사진을 공개했군요?

기자) 시리아에서도 정부군과 반군의 교전이 가장 치열한 곳 중 하나인 알레포의 미사일 공격 전후 사진을 공개했습니다. 주택가와 아파트같은 민간 지역임에도 미사일 공격으로 인해 파괴된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요. 앰네스티는 모두 3 곳의 사진을 공개하면서, 지난 2월 중순에 공격이 이뤄졌다고 밝혔는데요. 현지를 방문해 조사한 결과 당시 160명이 숨지고 수백명이 다쳤다고 주장했습니다.

진행자) 시리아 정부는 이런 인권단체들의 주장을 계속 부인하고 있다고요?

기자) 시리아 정부는 민간인을 겨냥해서 미사일을 발사하지 않았으며, 민간 주택가에 숨어있는 테러리스트를 공격했다는 주장입니다.  하지만 탄도미사일은 정확도가 떨어지기 때문에, 민간 지역에 미사일을 발사해서 민간인과 반군을 구분해 공격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말인데요. 인권단체들의 주장에 따르면 실제로 미사일 사상자 중 상당수는 집에 있던 어린이들이었습니다.

진행자) 다시 아시아로 가보겠습니다. 버마에서 민주화 봉기 25주년을 맞았군요?

기자) 네 지난 1988년 8월 8일, 버마 랑군에서는 학생들을 주축으로 군사정부에 항의하는 시위가 벌어졌는데요. 그래서 8888 항쟁이라고 부르는데요. 처음에는 평화적인 시위로 출발했지만 군부가 강제 진압하고, 이에 반발한 시민과 승려 등이 시위에 가세하면서 시위가 한 달 가까이 이어졌고요. 당시 3천여명이 사망한 사건입니다. 오늘 양곤에서는 25주년을 맞아 학생과 시민들이 거리 행진을 벌였고요, 기념식도 열렸습니다.

진행자) 버마 정부가 민주화 개혁을 추진해 왔는데, 8888 항쟁과 관련해서도 태도에 변화가 있나요?

기자) 그렇습니다. 올해 처음으로 버마 여당 관계자가 기념식에 참석했습니다. 아웅산수치 여사를 비롯한 야당 인사들도 참석했고요. 이 날 기념식에서는 당시 학생 운동을 이끌었던 인사 중 한 명인 민 코코 나잉이 연설했는데요. 오랫동안 권력자들이 역사를 왜곡했었지만, 마침내 진실이 세상의 빛을 보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진행자) 랑군 시민들의 표정은 어떴습니까?

기자) 민주화 항쟁이 시작됐던 공원에는 시민들이 가져온 꽃이 놓여졌고요, 당초 정부가 관련 집회를 허락하지 않았던 곳에서도 앞서 말씀드린대로 시민들을 주축으로 집회와 거리 행진 등이 벌어지는 모습이었습니다. 참석자들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공개적으로 8888 항쟁을 기념한 것을 처음이라면서, 버마의 변화를 실감한다고 말했는데요. 한편 인권단체 관계자 등은 당시 수천명의 희생자가 발생한 것과 관련해, 이제 책임자를 가리고 법의 심판을 받게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습니다.

진행자) 아시아 소식 한 가지 더 알아보죠. 필리핀과 타이완 사이에 타이완 어부 피격 사망 사건으로 불거졌던 갈등이 사건 발생 석 달만에 마무리 되는 분위기라고요?

기자) 필리핀 당국은 어제(7일) 타이완 어부에게 총격을 가한 해안경비대원 8명을 살인죄로 기소할 방침이라고 밝혔고요, 조속한 사법처리도 약속했습니다. 이는 그 동안 타이완이 요구해온 것인데요. 필리핀은 또 오늘(8일) 베니그노 아키노 대통령의 특사를 타이완에 파견하고, 유족에게 공식 사과했는데요. 타이완도 처음으로 필리핀 당국의 사과를 받아들인다고 밝혔습니다. 또 유족과의 보상 협상에도 의견 일치를 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진행자) 그 동안 타이완이 필리핀에 강력한 제재를 가하면서, 강경한 태도를 보였었는데 결국 필리핀의 양보를 이끌어낸 것 같군요?

기자) 네. 타이완은 필리핀인에 대한 노동비자 발급을 중단하고 필리핀 여행도 제한했었는데요. 이로인해 필리핀 경제가 직접적인 타격을 입기도 했습니다.타이완 정부는 오늘 관련 제재를 해제한다고 밝혔습니다.

진행자) 어떤 사건이었는지도 다시 한 번 설명해주시죠?

기자) 지난 5월 타이완 어선이 필리핀 해역 인근에서 조업하다가 필리핀 해안경찰의 단속을 받았는데요. 단속에 순응하지 않다가 경찰의 총격을 받았고 어부 한 명이 숨진 사건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