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가장 다양한 인종과 가장 다양한 언어, 그리고 가장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동부 대도시 뉴욕. 평화로운 이곳에 2001년 9월 11일 충격적인 일이 벌어진다.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한 뉴욕 맨하탄. 테러 분자들에 의해 납치된 두 대의 비행기가 세계무역센터를 향해 돌진하면서 110층의 위용을 자랑하던 쌍둥이 건물이 무너져 내린 것이다.  

또 다른 비행기 한 대는 워싱턴디씨 인근의 국방부 펜타곤을 공격하고 나머지 한대는 미국 대통령의 관저인 백악관으로 향했지만 비행기 탑승객들의 저지로 펜실베니아 주에 추락하게 된다. 이 같은 동시 다발적인 테러 공격이 발생한 지 올해로 10년째다.  사망자 수만 3천여명. 특히 2천명 이상의 많은 사망자를 낸 뉴욕은 10년 전의 테러를 어떻게 기억하고 또 어떻게 이겨내고 있을까?

여전히 많은 사람들로 붐비는 거리, 끊이지 않는 교통체증. 버스에서 내리는 수많은 관광객들. 뉴욕시는 10년 전과 크게 달라진 것이 없어 보인다. 뉴욕 부르클린에 살고 있는 한 대학의 영문과 교수 애덤 실스 씨는 9/11 테러에도 불구하고, 뉴욕이 근본적으로 바뀌지는 않았다고 말한다.

(남1:뉴욕하면 늘 그랬듯이 강인하면서도 탄력 있는 도시라는 이미지가 9/11 테러 공격을 통해 사실로 확인된 듯 합니다. 어떤 큰일이 닥치더라도 뉴욕 시민들은 이를 받아들일 놀라운 능력을 갖추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를 딛고 일어설 수 있는 능력까지도 갖고 있으니까요. )

씰스씨의 부인인 젠 자피씨, 뉴욕이 여전히 테러분자들의 공격 대상일 가능성이 많은 건 알지만 문화적인 다양성이 존재하는 뉴욕 부르클린의 일원이 되어 계속 살아가기로 결심했다.

뉴욕 사람들을 사랑하고 또 뉴욕의 다양성과 북적거리는  분위기가 좋고….뉴욕의 한 부분이 되어 살아가는 것이 좋다는 것이다.

(남2:미국내 다른 지역 사람들에 비해 뉴욕 시민들이 9/11테러 공격에 상당히 다른 반응을 보였다는 건 흥미로운 사실입니다.)

뉴욕 콜럼비아 대학교의 심리학과의 조지 보나노 교수는 ‘슬픔과 집합적 외상’에 관한 연구를 실시했다. 이 연구 결과에 따르면 뉴욕 시민들은  그 어떤 지역 주민들보다 테러의 충격에서 훨씬 빠른 회복을 보였다.

하지만, 일부 뉴욕시민들은 여전히 9/11테러가 남긴 충격 속에 살아가고 있다.

(여1: 지금도 9/11 테러와 관련된 사진이나 영상만 봐도 눈물이 나고 또 마음이 무너지는 것 같아요.  9/11테러가 남긴 기억들이 너무 크고 이겨내기 힘들어서 지금 대화하는 이 순간에도 울고 싶은 심정입니다.)

하지만 이런 상처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뉴욕을 떠나지 않고 살고 있다.  또한 앞으로 20년 사이 1백만명 이상이 뉴욕으로 이주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한다. 10년의 슬픔은 어느덧 과거 속으로 사라져 가고 있고, 사람들은 이제  또 다른 희망의 이름으로 특별한 도시, 슬픔을 이겨낸 도시, 뉴욕을 찾고 있다.

뉴욕에서 2천4백 킬로미터 떨어진 남부 텍사스 주의 작은 도시 나카도체스(Nacogdoches).  9/11테러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을 것 같은 이 도시에도 지난 10년 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다.  언론과 인터넷의 발달로 테러의 장면들을 생생히 접할 수 있었고, 그 충격과 아픔 또한 생생하게 전달됐다. 직접 테러를 경험하진  않았지만 이 곳의 주민들 역시 테러와의 전쟁에는 자신들도 깊이 연관됐다고 느낀다.

현재 두 아들이 군에서 복무 중인 캐롤린 애덤스씨. 지난 5월 미군 특수부대 요원들이  9/11 테러 공격의 주범인 오사마 빈라덴을 사살하면서 테러의 위협이 줄어든 것으로 본다고 말한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테러에 대한 공포를 갖고 있는데.

은퇴한 의사 캐롤 그레고리씨는 9/11테러로 시작된 전쟁으로 많은 젊은이들이 목숨 바쳐 전쟁을 치르고 있지만 이같은 희생이 과연 미국을 안전하게 지켜줄 지 의문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인구 3만명의 이 작은 도시에  9/11 테러로 인해 주민들의 생각에만 변화만 생긴 것이 아니다. 테러의 위협이 거의 없는 곳이지만, 치안을 담당하는 경찰서는  최신 장비와 기기들을 갖추게 됐다.

이 마을은 정부의 지원으로 이제 그 어떤 형태의 테러나 자연재해까지도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됐다고 한다.  9/11 테러 이후 미국 정부가 국방과 치안에 많은 노력을 쏟아붓고 있어 더욱 더 안전한 미국이 되어가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Stephen F. Austin 주립대학에서 역사학을 가르치는 아치 맥도널드 교수는 아직 불안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지만, 9/11 테러 사건도 언젠가는 역사 속의 한 순간으로 남게될 것이라고 말한다. 마치 독립 기념일 처럼…

(남4: 7월 4일 미국독립기념일이 되면 미국인들은 다들 연회를 즐기며 축하하죠. 사람들은 미국의 독립을 이뤄내기 위해 235년전 수많은 희생자가 발생했다는 사실을 기억하지는 않습니다.)   

맥도널드 교수의 말처럼 언젠간 9/11 테러 공격도  테러 당시의 모든 악몽을 떨쳐내고 미국의 자유와 정신을 지켜낸 역사적인 날로 기억이 될까?

뉴욕의 작은 한 연극무대 위에서 그웬돌린 브라일리 스트랜드라는 (Gwendolyn Briley-Strand) 여성이 1인극을 하고 있다. 1800년대 흑인 노예들의 탈출을 도왔던 영웅적인 여성 Harriett Tubman 을 연기한다.

(여: 자유는 쉽게 얻을 수가 없는 것. 많은 대가를 요구하는 것이다.)

그웬돌린은 왜 이런 역할을 연기하는 연극배우가 된걸까?  그의 오빠 Jonathan 은 9/11 테러 당시 세계무역센터 107층에서 일하고 있었다.  테러가 나자 오빠는 화염의 휩싸인 건물에서 뛰어내렸고, 그웬돌린은  그 후 검시관으로 부터 오빠의 말없는 시신을 넘겨받아야만했다.  오빠의 죽음은 자신의 삶을 바꾸었고 오빠를 잃은 고통은 자유를 노래하는 배우의 삶으로 자신을 이끌었다.

(여:사람들에게 미국은 그저 당연히 주어진 나라가 아님을 말하고 싶습니다. 제가 연기하는 1800년대의 여성 해리엇과 제 자신은 같은 선상에 있다고 볼 수 있어요. 그 여성도, 저도. 자유는 당연히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죠.)

9/11 테러를 겪으면서 많은 사람들의 희생이 있었다. 사랑하는 가족을, 친구를 잃는 아픔도 있었다. 하지만 미국인들은 그 희생이 있었기에 지금의 자유와 평화를 누리게 된 것을 알고 있다. 2백년여년 전 미국이 독립을 할 때, 또 흑인 노예들이 해방 될 때 그랬던 것 처럼.

9/11테러는 미국인들에게 큰 상처를 남겼지만 그 상처는 이제 새로운 역사의 한 순간으로, 새롭게 도약하는 기회로 거듭나고 있다.  9/11 테러가 발생한 지 어언 10년, 미국인들은 이렇게 무너진 세계 무역센터와 무너진 마음을 함께 일으켜 세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