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63년 린든 존슨 당시 미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첫 공식 연설을 하고 있다.
지난 1963년 린든 존슨 당시 미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첫 공식 연설을 하고 있다.

오는 11월에 치를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는 민주당 후보로 확정된 조 바이든 전 부통령과 공화당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현 대통령이 맞붙을 예정입니다. 이런 가운데 바이든 전 부통령은 최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를 꾸리기 시작했습니다. 올해 대선에서 승리한 뒤 정권 인수 작업을 맡을 조직을 만들기 시작한 것인데요. ‘미국 대선 ABC’, 오늘은 ‘미국의 대통령직 인수제도’ 다섯 번째 시간으로 ‘인수위원회 없는 대통령직 인수’와 관련해 ‘린든 존슨 대통령’ 사례에 관해 알아보겠습니다.

린든 존슨 대통령은 1963년 11월,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암살된 직후 대통령직을 이어받았습니다.

존슨 대통령은 오랜 기간 상원 민주당 지도자로 활약했고, 이런 경력이 이후 대통령 시절, ‘입법의 명수’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탁월한 성과를 내는 데 밑거름이 됐습니다.

하지만, 케네디 대통령 참모진은 존슨 부통령을 ‘노회한 정치인’이라고 생각해 탐탁지 않게 여겼습니다. 

특히 케네디 대통령이 암살된 직후 급히 워싱턴 D.C로 돌아오는 대통령 전용기 안에서 그가 서둘러 대통령 취임 선서를 한 것이 참모들 마음을 상하게 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는 노련한 존슨 부통령이 법률전문가와 상의한 뒤 국정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 취한 조처였지만, 대통령을 잃은 참모들 입장에서는 당혹스러운 일이었습니다.

1940년대 해리 트루먼 대통령처럼 존슨 대통령의 당면 과제는  역시 국정의 연속성을 확보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자기 임무를 전직 대통령의 유업을 완수하는 것으로 생각했고, 의회 연설에서 “케네디 대통령을 추모하는 길은 그가 추진한 개혁법안을 통과시키는 것이다”라고 강조했습니다.

이처럼 케네디 대통령의 유업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존슨 대통령은 의회에서 역사적인 ‘민권법(Civil Rights Act of 1964)’을 통과시키는 데 성공했습니다.

존슨 대통령이 대통령직을 승계한 시점은 다음 대선을 1년여 앞둔 시점이었습니다. 존슨 대통령은 젊은 대통령의 죽음을 애도하는 분위기 속에서 충직한 후계자로 자리매김했으며, 내각과 백악관 비서실 고위직을 그대로 유임시켰습니다.

특히 그는 취약 분야인 대외정책에 대해서는 케네디 대통령이 임명한 외교안보팀에 전적으로 의존했습니다. 존슨 대통령이 대통
령이 되자 사임한 장관은 케네디 대통령 친동생인 로버트 케네디 법무장관이 유일했습니다.
하지만, 존슨 대통령은 고향인 텍사스 출신 인사들도 백악관으로 불러들여 기존 관리들과 함께 일하도록 하는 이중 전략을 구사했습니다. 

그리고 1년 뒤 존슨 대통령은 대선뿐 아니라 상⋅하원을 모두 장악하는 역사적 대승을 거둘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