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9년 1월 미얀마 카우투레이에서 열린 카렌족 독립 70주년 기념식에서 카렌민족연합 소속 군인들이 행진하고 있다.
지난 2019년 1월 미얀마 카우투레이에서 열린 카렌족 독립 70주년 기념식에서 카렌민족연합 소속 군인들이 행진하고 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미얀마에서 발생한 군사 쿠데타를 계기로 미얀마 내 ‘카렌민족연합(KNU)’이 통제하는 지역이 미얀마 민주 세력의 집결지가 되고 있습니다. 군부 쿠데타에 반대하는 세력이 KNU와 함께 군부를 상대로 무장투쟁을 벌이기 위해서인데요. ‘시사상식 ABC’ 오늘은 ‘카렌민족연합(KNU)’에 관해 알아보겠습니다. 김정우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KNU는 미얀마 내 소수민족인 카렌족의 광범위한 자치권을 요구하는 정치 조직입니다.

[음악: 카렌족 전통 음악]

카렌족은 에야워디 삼각주 지역과 양곤 지역 등 주로 미얀마 남부 지역에 살며 일부는 미얀마 동부 국경 지역에도 거주합니다.

카렌족 인구는 출처에 따라 다른데 현재 KNU 측은 약 800만 명에서 1천만 명 사이로 추산합니다.

카렌족은 19세기 영국에 정복되기 전까지 오랜 기간 버마 왕조의 탄압을 받았습니다. 한편 영국의 영향으로 카렌족 가운데 많은 사람이 기독교도가 되기도 했습니다.

카렌족과 버마족 사이 갈등은 태평양전쟁 기간 더 심각해졌습니다. 당시 일본 측에 가담한 버마인들이 영국을 지지한 카렌족을 대거 학살했던 것입니다.

이런 갈등은 버마 독립과정에서 더욱더 깊어졌습니다. 이 과정에서 독립적인 카렌주를 세우기 위해 ‘소바우지(Saw Ba U Gyi)’를 지도부로 하는 정치조직인 KNU가 1947년 2월 설립됐습니다.

[녹취: KNU 관련 뉴스]

한편 KNU는 독립적인 카렌주 설립에 대한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1949년 1월부터 무장투쟁을 전개했습니다.

KNU는 무장투쟁 초기 큰 성과를 거두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60년대와 70년대, 그리고 80년대를 거치면서 상황이 크게 반전돼 버마 정부군의 거센 공세 탓에 KNU는 점차 점령지를 잃어갔습니다.

특히 1995년 KNU 등 몇몇 반군 세력의 수도와도 같은 역할을 했던 ‘마네플로’가, 다음엔 핵심 요새였던 ‘고무라’가 정부군 수중에 들어갔습니다. 이렇게 계속되는 정부군 공세에 수많은 카렌족 주민이 목숨을 잃었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난민이 돼 태국으로 넘어갔습니다.

[녹취: KNU 관련 VOA 뉴스]

이후 KNU는 미얀마로 나라 이름을 바꾼 버마의 군사정권이 추진한 ‘전국평화협정(NCA)’에 참여했습니다. NCA는 미얀마 정부와 군, 소수민족 무장단체 간 휴전 협정이었습니다.

하지만, 2021년 2월 1일 미얀마에서 다시 쿠데타가 나고 군사정권이 쿠데타를 반대하는 시위대를 유혈 진압하자 KNU는 더 군사정권과 협상하지 않고 민중 시위를 지지할 것이라고 선포했습니다.

네. ‘시사상식 ABC’, 오늘은 ‘KNU’에 관해 알아봤습니다. 지금까지 김정우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