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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따라잡기] 미국과 이란 관계


미국의 성조기와 이란 국기. (그래픽)
미국의 성조기와 이란 국기. (그래픽)

뉴스의 배경과 관련 용어를 설명해드리는 ‘뉴스 따라잡기’ 시간입니다. 지난주 실시한 이란 대통령 선거에서 법조인 출신인 이슬람 원리주의자 에브라힘 라이시 후보가 압승을 거뒀습니다. 온건파인 하산 로하니 현 대통령과는 대조적인 강경 보수 인물의 등장에 국제 사회가 주목하고 있는데요. 뉴스 따라잡기 이 시간에는 이란과 중동의 역학 관계, 또 40년간 반목하고 있는 미국과 이란 관계 짚어보겠습니다. 박영서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중동의 이단아 이란”

이란은 중동, 엄밀히 말해 서아시아라고 부르는 아시아의 서쪽에 있습니다. 동쪽으로는 투르크메니스탄,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과 국경을 맞대고 있고, 서쪽으로는 터키, 이라크와 접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흔히 중동 국가로 알고 있는 나라들과 이웃하고 있는 데다가 생김새도 얼핏 비슷하고, 이슬람이라는 종교도 같다 보니 종종 이란도 아랍 국가로 취급되지만, 이란은 아랍 국가가 아닙니다.

이란은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등 20여 개 아랍 국가들과는 우선 민족부터 다릅니다. 이란은 고대 문명의 한 지류인 페르시아인의 후예인 반면, 아랍인들은 오랫동안 사막에서 유목 생활을 하던 민족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래서 문화나 풍습, 사고방식이 다릅니다.

또 얼핏 비슷해 보이지만 문자나 언어도 완전히 다릅니다. 이란은 페르시아어를 사용하고, 아랍권 국가들은 아랍어를 사용하는데요. 두 언어는 한국어와 영어처럼 어순 등 문법 구조가 완전히 달라 의사소통이 쉽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종교적으로 이란과 아랍권 국가들은 크게 충돌하고 있습니다.

이슬람교는 수니파와 시아파 두 종파가 오랜 세월 대립과 반목을 하고 있는데요. 아랍권 국가들은 대부분 수니파고요. 이란은 이슬람의 약 15%를 차지하는 시아파의 종주국입니다. 이런 역사적, 종교적 배경 때문에 이란은 종종 ‘중동의 이단아’로 불립니다.

“이슬람 근본주의 회귀, 이슬람 혁명”

이란은 40여 년 전만 해도 중동의 대표적인 친미, 친 서방 국가의 하나였습니다.

1979년 이슬람 혁명이 일어나기 전, 이란의 청년들은 미국의 대중음악을 듣고 짧은 치마를 입은 여성들이 거리를 활보할 만큼 자유로운 나라였는데요.

하지만 팔레비 왕조의 사치와 빈부 격차, 지나친 서구화에 대한 불만과 함께 팔레비 왕조의 친미 노선을 비판하는 국민 정서가 팽배해졌습니다.

이런 가운데 이슬람 근본주의 성직자 루홀라 호메이니가 이른바 ‘이슬람 혁명’을 일으키고 팔레비 왕조를 축출하면서 미국과 이란은 갈등 국면을 맞게 됩니다.

이란 혁명 지도부는 이슬람 원리주의에 입각한 신정국가, 즉 정치와 종교를 결합한 이슬람공화국 수립을 선포하고, 호메이니는 ‘최고지도자’라는 직책을 만들어 그 자리에 오르는데요. 이런 가운데 미국 정부는 신병 치료차 미국 입국을 요구한 팔레비 국왕의 요청을 받아들입니다.

이는 이란의 거센 반발을 일으켰고, 이슬람 혁명이 일어난 그해 11월, 과격한 학생들이 테헤란 주재 미국 대사관을 점거하는 사태가 발생합니다. 시위대는 당시 대사관 직원 등 미국인 52명을 무려 444일 동안 억류하는데요. 이 사건을 계기로 두 나라는 외교 관계를 단절했고요. 지금까지 양국은 공식 외교 관계를 수립하지 않고 있습니다.

“역대 미국 행정부와 이란 관계”

미국과 이란 관계에 결정적으로 금이 간 이란 대사관 인질 사건은 지미 카터 행정부 시절 발생했는데요. 당시 지미 카터 대통령은 행정명령을 발령해 미국 내 모든 이란인의 자산을 동결했습니다.

로널드 레이건 정부 시절에는 이른바 ‘이란 콘트라 사건’이 불거졌습니다. 당시 이란과 연계된 테러 집단에 억류된 미국인 인질을 구출하는 데 도움을 받기 위해 적성국인 이란에 무기를 판매하고, 그 이익을 니카라과 반군 세력인 ‘콘트라’에 제공했다는 스캔들인데요. 이로 인해 레이건 대통령은 탄핵 위기에 몰리기도 했습니다.

1995년, 빌 클린턴 행정부는 이란에 대한 제재를 더욱 확대해, 석유 등 이란과의 무역 거래를 사실상 중단했습니다. 당시 빌 클린턴 대통령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역사적인 중동 평화협정을 추진하고 있었는데요. 이란이 이를 방해하고 테러 세력을 후원한다고 비판하면서 제재를 가했습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2002년, 이란을 이라크, 북한과 함께 악의 축으로 지목하면서 양국 관계는 더 악화하는데요. 이런 가운데 강경 보수파인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이 취임하고 본격적인 핵 개발에 나서면서 두 나라 관계는 더욱 냉랭해집니다.

하지만 바락 오바마 행정부 들어와 미국과 이란 관계는 다소 개선 조짐을 보입니다. 2008년 미국 대선에서 오바마 후보가 당선됐을 때는 아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이 축하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는데요. 하지만 오바마 정부는 이란 핵 개발과 관련한 제재를 이어갔습니다. 그러면서 또 한편으로는 국제 사회와 이란 핵 협상에 나섰는데요. 결국 2015년, 유엔안보리 5개 상임이사국 (미국 ·영국· 프랑스 ·중국 ·러시아)과 독일 등 주요 6개국과 이란 간에 ‘포괄적공동행동계획(JCPOA)’, 이른바 ‘이란 핵 합의’를 도출하는 데 성공합니다.

“위기에 처한 이란 핵 합의”

2017년 미국에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미국과 이란 관계는 다시 급속하게 경색됩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이란 핵 합의는 최악의 거래이자 재앙이라면서, 당선되면 핵 합의에서 탈퇴할 것이라고 공언해왔습니다. 이란이 핵 합의를 제대로 준수하지 않는 데다가 탄도미사일 시험 등으로 역내 긴장을 도발하고 있다는 주장이었는데요. 결국 2018년, 트럼프 행정부는 이란 핵 합의에서 전격 탈퇴하고 이란에 대한 제재를 전면 복원합니다. 이란은 이에 반발해 합의 사항을 단계별로 축소하면서 이란 핵 합의는 사장 위기에 처합니다.

하지만 이란 핵 합의 체결 당시, 부통령이었던 조 바이든 현 대통령은 이란 핵 합의를 통해 역내 안정을 도모할 수 있다며 이란 핵 합의 복귀 의사를 밝혔습니다. 다만 이란이 먼저 핵 합의를 준수해야 제재를 해제할 수 있다고 강조한 바 있습니다.

현재 바이든 정부는 유럽의 중재로 이란 핵 합의 복원 협상에 나서고 있는데요. 하지만 최근 이란 대선에서 이슬람 원리주의자 에브라힘 라이시 후보가 당선되면서 협상 전망이 불투명해지고 있습니다. 바이든 정부는 이란의 최고결정권자는 라이시 당선인이 아니라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최고지도자라며 바뀐 건 없다고 강조하고 있는데요. 향후 이란 핵 합의 협상이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 당선인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 당선인

뉴스 속 인물: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 당선인

최근 뉴스의 화제 인물을 소개하는 ‘뉴스 속 인물’ 시간입니다. 오늘 주인공은 오는 8월 초 취임할 예정인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 당선인입니다.

에브라힘 라이시 당선인은 1960년 이란 제2의 도시이자 시아파 최고 성지의 하나인 ‘마슈하드’에서 태어났습니다.

라이시 당선인의 아버지도 성직자였지만, 그가 다섯 살 때 사망했고요. 라이시 당선인은 아버지의 뒤를 따라 15살 때 또 다른 이란의 주요 성지인 ‘곰’에 있는 신학교에 들어갔습니다.

1979년 이란에서 이슬람 원리주의 성직자 루홀라 호메이니가 이끄는 이른바 ‘이슬람 혁명’ 시위가 발발했는데요. 라이시 당선인은 당시 학생 신분으로 시위에 가담했고요. 시아파 지도부의 눈에 들었습니다.

이슬람혁명 후 그는 훗날 대통령과 이란 최고지도자가 되는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로부터 훈련을 받는 한편, 사법부에서 활동하며 잔뼈가 굵어졌습니다.

불과 25살 때 테헤란검찰청 차장검사직에 오른 그는 검사장과 검찰총장 등을 거쳐 2019년, 이란 사법부 수장이 됐습니다.

라이시 당선인은 특히 1988년 설치된 특별 법정 소속 판사 4명 가운데 1명이었는데요. 이 특별 법정은 이란 정부가 반체제 인사들에 대한 비공개 재판 후 사형을 집행해 이른바 ‘죽음의 위원회’로 불리는 곳입니다.

이 비밀 법정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사형을 선고받고 처형됐는지 정확한 수는 알 수 없는데요. 하지만 인권 단체들은 적어도 5천 명 이상 처형됐으며 알려지지 않은 곳에 집단 매장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란 지도부는 처형 사실을 부인하지는 않지만, 처형된 사람들의 신상 정보나 재판 내용 등은 일절 공개하지 않고 있습니다.

일각에서는 반체제 인사 숙청에 앞장선 라이시 당선인을 ‘테헤란의 집행자’, ‘잔인한 도살자’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라이시 당선인은 2009년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 부정 선거 의혹에 항의하는 반정부 시위가 벌어졌을 때도 유혈진압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 2019년 다른 이란 고위 공직자들과 함께 인권 탄압 등을 이유로 라이시 당선인을 제재 명단에 올린 바 있습니다.

독실한 이슬람 원리주의자로서, 늘 검은 옷과 검은 터번을 두르고 다니는 그는 이슬람교 창시자 무함마드의 후손이기도 합니다. 특히 현재 이란의 절대 권력을 가지고 있는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최고지도자의 최측근으로서, 일각에서는 하메네이 사후 가장 유력한 후계자 후보로 꼽고 있는데요. 초강경 보수 성향인 라이시 당선인의 등장으로 향후 이란 정국과 국제 정세 판도에 작지 않은 파장이 예상됩니다.

뉴스 따라잡기, 오늘은 미국과 이란 관계 살펴봤고요. 뉴스 속 인물로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 당선인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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