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3월, 미국 수도 워싱턴의 연방대법원 앞에서 낙태 권리 찬반론자들이 나란히 시위를 벌이고 있다.
지난해 3월, 미국 수도 워싱턴의 연방대법원 앞에서 낙태 권리 찬반론자들이 나란히 시위를 벌이고 있다.

뉴스의 배경과 관련 용어를 설명해드리는 ‘뉴스 따라잡기’ 시간입니다. 미국 연방대법원이 미시시피주 낙태 제한법에 대한 위헌 심리를 맡기로 했습니다. 심리는 오는 10월에 시작하는 가을 회기 때 열릴 예정인데요. 보수 성향 구도로 짜여진 연방대법원에서 어떤 판결이 나올지 벌써부터 이목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뉴스 따라잡기 이 시간에는 미국 사회의 오랜 쟁점 가운데 낙태 문제에 대해 짚어보겠습니다. 

“미국 사회의 오랜 쟁점, 낙태”

낙태를 찬성하느냐, 반대하느냐는 미국 사회의 오랜 논쟁거리 가운데 하나입니다. 미국 사회에서 낙태를 둘러싼 논란은 개인 자유와 권리에 속한다는 주장과 인간 생명이라는 도덕적 가치가 충돌하는 지점인 데다가, 진보와 보수라는 정치적 이념에, 종교적 신념까지 더해지면서 민감한 쟁점이 돼 왔습니다. 

여기에 주마다 자체적인 낙태 규정을 갖고 있다 보니 이 규정이 연방법과 상충하는 경우가 종종 벌어지는데요. 이번에 미국 연방대법원이 미시시피주 낙태 제한법에 관한 심리를 맡은 것도 이런 배경 때문입니다. 

“낙태의 합법적 권리”

미국에서 낙태 찬반 논란이 워낙 뜨거운 쟁점이었기 때문에 자칫 미국에서는 낙태가 불법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요. 미국에서는 임신 6개월 이전까지 낙태는 사실상 법으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이는 지난 1973년 나온 미국 연방대법원 판결에 따른 것으로 , 임신 후 첫 3개월 동안, 산모는 자기 의지에 따라 낙태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즉 미국 50개 주와 미국 사법권이 미치는 지역에서 임신 초기 낙태는 불법이 아닙니다. 
그리고 임신 중기에 해당하는 3개월에서 6개월 사이에는 각 주 정부 지침에 따를 수 있습니다. 만일 주 정부가 산모 건강이나 생명과 관련된다고 판단할 경우, 낙태를 규제할 수 있습니다.  

“로 대 웨이드 판결”

미국에서 낙태 문제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사건이 있습니다. 바로 ‘로 대 웨이드 판결’이라고 1973년 미국 연방대법원이 내놓은 미국 역사에서 큰 획을 그은 판결입니다.

1970년대 초까지만 해도 미국 대부분의 주에서 임신부 생명과 직결되는 등 일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낙태는 불법이었습니다.  그러다보니 1950~60년대, 미국의 많은 여성이 위험하게 집이나 불법시술소에서 낙태하는 일이 많았고요. 그 결과 많은 여성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런 가운데 1969년, 텍사스주에 살던 한 여성이 성폭행을 당해 원치 않는 임신을 하게 됐다며 낙태 수술을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생명이 위독한 상황이 아니고, 성폭행 당시 사건 보고서가 없다는 이유로 낙태 수술을 거부당했는데요. 그러자 이 여성은 텍사스주를 상대로 소송을 걸었습니다. 

당시 이 여성은 신변 보호를 위해 ‘제인 로’라는 가명을 썼는데요. ‘헨리 웨이드’라는 이름을 가진 검사가 사건을 맡으면서 ‘로 대 웨이드’라는 이름이 붙게 됐습니다. 

양측 주장이 팽팽히 맞서면서 소송은 결국 연방대법원까지 올라갔는데요. 결국 1973년 연방대법원은 7대 2로, 미국 수정헌법 14조에 명시된 개인 사생활에 대한 헌법적 권리에 따라 여성 낙태권을 인정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연방대법원은 이 낙태권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며, 여성 건강과 태아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정부의 이익과 균형을 이뤄야 한다고 판결했습니다.  

또 연방대법원은 임신 기간을 3기로 나눠 낙태에 대한 주의 규정을 명시했는데요. 

즉 임신 초기, 각 주 정부는 낙태를 절대 금지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임신 중기에는 금지는 하지 못하지만 임신부 건강 등 이유로 이를 규제할 수 있도록 허용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3기에는 산모 생명이나 건강과 관련해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절대 낙태를 할 수 없다고 판결했습니다.

하지만 개인 권리와 주 정부 권한을 모두 인정한 이 판결은 50년 가까이 논란을 야기하고 있습니다.   

“미국 연방대법원의 역할”

미국 연방대법원은 그동안 여러 차례 낙태에 관한 소송을 맡았습니다. 

몇 가지 사례를 보면, 지난 1992년 당시 펜실베이니아 주지사의 낙태 제한 규정에 반발해 낙태를 찬성하는 측이 제기한 소송에서 연방대법원은 펜실베이니아 주지사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2016년에는 텍사스주 낙태금지법에 대한 소송에서 낙태 찬성 진영 손을 들어줬습니다. 

그런가 하면 지난해에는 루이지애나주 낙태제한법 소송을 다뤘는데요. 이때는 루이지애나주 법이 위헌이라고 판결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소송 때마다 연방대법원판결이 엇갈리면서 대법관 개개인의 성향이 크게 주목받았습니다.  

미국 연방대법관은 모두 9명으로 임기는 종신제인데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임기 중, 닐 고서치, 브렛 캐버노, 에이미 코니 베럿 등 대법관 3명을 새로 임명해 현재 미국 연방대법원 구성은 6대 3으로 보수가 절대적으로 우위입니다.   

 “낙태에 관한 미국인의 생각”

미국 여론 조사기관인 ‘퓨리서치’가 지난 4월 실시한 여론 조사결과를 보면, 응답자 가운데 약 60%가 낙태 권리를 지지한다고 답했습니다. 즉 전적으로,  또는 대부분의 경우, 합법적이라는 의견이었고요. 낙태가 불법이라는 의견은 약 40%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추세는 별로 변하지 않고 거의 그대로입니다. 

1995년부터 2021년까지 여러 여론 조사 결과를 토대로 한 추이를 보면, 낙태가 합법이라는 의견은 대개 50~60%, 불법이라는 의견은 40% 대를 유지해왔습니다. 

찬반 의견이 가장 비슷했던 해는 지난 2009년으로, 이 해에는 낙태가 합법이라는 견해가 47%, 반대는 44%로 팽팽하게 갈렸습니다. 

낙태에 대한 생각은 정당별로 더욱 극명하게 나눠집니다. 

이번 조사에서, 낙태가 합법이라고 생각하는 민주당원이나 민주당 성향 응답자는 80%인 반면, 공화당원이나 공화당 성향 응답자는 35%에 불과했는데요. 이런 격차가 최근 점점 더 벌어지는 경향을 보입니다.   

예를 들어 지난 2016년 조사 때 낙태가 합법이라고 답한 민주당 성향 응답자가 72%, 공화당 응답자는 39%로, 약 33%P 차이가 있었는데요. 이번 조사에서는 이 격차가 45%P로 더 벌어지면서 좀처럼 간극을 좁히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마스 지도자, 이스마일 하니예

뉴스 속 인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 지도자 이스마일 하니예

최근 뉴스에서 화제가 된 인물을 소개하는 ‘뉴스 속 인물’ 시간입니다. 오늘 주인공은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 지도자 이스마엘 하니예입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 간 대규모 무력 충돌이 벌어지면서, 누가 하마스를 이끌고 있는지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현재 하마스의 지도자는 이스마엘 하니예입니다.

이스마일 하니예는 지난 1962년 가자지구 난민촌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부모는 원래 이스라엘 남부 아슈켈론 출신이지만, 1948년 이스라엘 독립전쟁 당시 가자지구로 피난해 자리를 잡았습니다.  난민촌에서 나고 자란 하니예는 유엔이 가자지구 난민촌에서 설립한 학교에 다녔습니다. 

그리고 가자지구이슬라믹대학교에서 아랍문학을 전공했습니다. 
그는 대학생 시절 이슬람 학생운동에 적극적으로 가담했는데요. 1988년 ‘하마스’가 설립됐을 때 하니예는 가장 어린 창립 멤버 중 한 명이었습니다. 

하니예는 1989년 이스라엘에 대한 팔레스타인 민중봉기인 이른바 ‘제1차 인티파다’에 가담한 혐의로 이스라엘 당국에 체포돼 3년간 복역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출소 후에 하마스의 정신적 지도자이자 창립자였던 셰이크 아흐메드 야신을 비롯한 하마스 주요 지도자, 그리고 대원 약 400명과 함께 레바논으로 쫓겨났습니다. 

하지만, 1993년 미국 중재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평화협정이 체결되면서 가자지구로 돌아올 수 있었고, 가자기구이슬람대학교 학장으로 임명됐습니다. 

그러나 하마스의 대이스라엘 무장 투쟁은 이어졌고, 이스라엘의 공격에 하마스 지도자들이 사망하면서 하니예는 하마스 내 일인자가 됐습니다. 

이후 그는  2006년 팔레스타인 총선에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를 장악한 파타당을 누르고 압승을 거뒀습니다. 그리고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총리직에 오르는데요.  

하지만, 평화적 외교 해법을 지향하던 마무드 압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과 계속 마찰을 빚었습니다.

결국 2007년 압바스 수반은 하니예 총리를 해임하고 내각을 전격 해산합니다. 

하지만, 하니예는 이 조처에 반발해 가자지구에 하마스가 주도하는 자치 정부를 수립하고 이후 사실상 수반 역할을 해오고 있습니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하마스를 테러단체로 규정하고 있으며, 미  국무부는 지난 2018년, 하니예를 ‘특별지정국제테러리스트(SDGT)’ 명단에 올려놨습니다.
 
뉴스 따라잡기, 오늘은 미국의 낙태 찬반 논란에 대해 살펴봤고요. 뉴스 속 인물로 이스마일 하니예 하마스 지도자에 대해 알아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