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가운데)이 러시아와의 국경 돈바스 지역을 시찰하고 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가운데)이 러시아와의 국경 돈바스 지역을 시찰하고 있다.

뉴스의 배경과 관련 용어를 설명해드리는 뉴스 따라잡기 시간입니다. 러시아의 대규모 병력이 우크라이나 국경으로 집결하면서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고 있습니다. 양국의 무력 충돌 가능성에 대한 국제 사회의 우려도 점점 커지고 있는데요. 뉴스 따라잡기 이 시간에는 두 나라 관계와 쟁점, 국제 사회 움직임 짚어보겠습니다.

“동유럽의 지정학적 요충지, 우크라이나”

우크라이나는 1991년에 소련이 붕괴하면서 독립했습니다. 

러시아에 이어 유럽에서 두 번째로 큰 나라인 우크라이나는 자연조건이 좋아서 농업이 크게 발달했고요. 석탄, 철강 등 광공업도 주요 산업 기반입니다.  

우크라이나는 동유럽의 지정학적 요충지입니다. 

북쪽으로는 벨라루스, 서쪽으로 폴란드, 헝가리, 루마니아 등 과거 소련의 위성국가들과 접해 있고요. 동쪽으로는 러시아와 길게 국경을 대고 있습니다. 그리고 남쪽에는 군사적 요충지인 크림반도와 흑해가 있습니다. 

이런 지리적 이유로 우크라이나는 소련 붕괴 이후에도 종종 서방과 러시아의 힘이 충돌하는 현장이 되고 있습니다. 

또 국제적인 정치 스캔들로 높은 관심이 우크라이나로 쏠린 적도 있습니다.   

지난 2019년, 도널드 트럼프 당시 대통령은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와 아들 헌터 씨의 비리를 조사하라고 우크라이나 정부에 압력을 가한 의혹을 받았는데요. 민주당 주도의 하원은 결국 그해 12월, 권력 남용과 의회 방해 혐의를 적시한 탄핵 소추안을 통과시키는 등, 우크라이나는 미국 정치권의 태풍의 눈으로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분쟁의 전초지, 크림반도”

 ‘크림반도’가 오늘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분쟁의 빌미가 된 건 1954년 소련 시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니키타 흐루쇼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소련의 연방 국가였던 우크라이나에 크림반도를 줬는데요. 하지만 1991년 소련이 붕괴하고 우크라이나가 독립하면서 크림반도도 자연스럽게 우크라이나의 영토가 됐고요. 크림반도에는 크림 자치공화국이 들어섰습니다.  

문제는 크림반도가 소련이 세워지기 전, 제정 러시아 시절에도 러시아의 지배를 받았고 러시아 주민들도 많이 거주하는, 러시아 성향이 매우 강한 지역이었다는 겁니다. 

소련 붕괴 10년 후인 2001년 우크라이나가 실시한 인구 조사를 보면, 당시 크림반도에는 약 240만 명이 살았는데요. 러시아계가 약 60%고 우크라이나계는 25%도 안 됐습니다. 

그러다 보니 러시아로 귀속하자는 목소리도 나왔고요. 분리 독립을 추진하는 반정부 세력의 움직임도 끊이지 않았습니다. 

결국 크림 자치공화국은 2014년 3월, 러시아 귀속에 대해 찬반을 묻는 주민투표를 시행하는데요. 이에 앞서 러시아는 탱크를 앞세운 대규모 무장병력을 크림반도로 보냈습니다. 투표 결과 95% 이상의 찬성표가 나왔습니다. 그리고 다음 달 크림공화국은 러시아와 합병조약에 서명했습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는 물론, 미국과 유럽연합(EU) 등 국제 사회는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주민투표 자체가 우크라이나 헌법과 국제 질서를 위반한 것인 데다, 러시아 병력이 주둔 중인 가운데 실시됐다며 이는 무력으로 강제병합한 것이라는 지적입니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은 러시아의 크림반도 강제 병합에 대한 책임을 물어 러시아에 대한 경제 제재를 단행하고 있습니다. 

“또 다른 갈등 지역 돈바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크림반도 말고, 내륙 지역에서도 오랜 갈등을 겪고 있습니다. 

바로 러시아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주와 루간스크주가 있는 돈바스 지역인데요. 이 지역 역시 러시아계 주민이 많이 거주하고 친 러시아 성향이 강해 우크라이나 중앙 정부와의 마찰이 늘 끊이지 않았습니다. 

2014년 크림반도에서 위기가 고조됐을 당시, 돈바스 지역도 분리 독립 주민투표를 치렀습니다. 그리고 도네츠크인민공화국과 루간스크인민공화국의 수립을 선포했는데요. 우크라이나 정부는 이를 인정하지 않고 이들을 반정부 테러 세력으로 규정했습니다. 

이후 반군 세력과 정부군 간에는 격렬한  무력 충돌이 벌어지면서 내전 양상으로 비화했는데요. 국제 사회는 러시아가 반군 세력에게 중화기를 제공하며 배후에서 지원하고 있다고 비난하며 즉각 휴전을 촉구했고요. 유럽의 중재로 그해 9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도네츠크와 루간스크 대표가 벨라루스 민스크에서 휴전협정을 체결합니다. 하지만 이후로도 계속 이 지역에서는 정부군과 반군 간에 산발적인 교전이 계속됐는데요. 유엔은 2014년부터 지금까지 약 1만4천 명 이상 사망한 것으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다시 고조되는 군사적 긴장”

올해 들어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에서 군사적 긴장이 다시 고조되고 있습니다. 특히 3월부터 반군과 정부군 간의 충돌로 인명 희생이 계속 나오고 있는데요. 여기에 러시아가 대규모 무장병력을 우크라이나와의 접경인 서부 지역으로 이동시키면서 크림반도 사태가 재현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 정부에 따르면, 현재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동부 국경 지역에 4만 1천 명, 크림반도에 4만2천 명 정도의 병력을 배치하고 있는데요.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부 장관은 병력 증강은 훈련의 일환이라면서, 앞으로 2주 정도 더 기동훈련을 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현재 미국과 유럽연합(EU),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는 러시아의 동태를 예의주시하며, 우크라이나 주권과 영토에 대한 확고한 지지를 천명하고 있습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외교, 안보 사령탑인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과 로이드 오스틴 국방부 장관을 유럽에 보내 나토 동맹국들과 대응 모색에 나섰고요. 또 한편으로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직접 통화해 강력한 우려와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지 입장을 전달했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또 푸틴 대통령에게 몇 달 안에 제3국에서 정상회담을 열자는 제안도 했는데요. 성사된다면 우크라이나 사태를 포함한 일련의 국제 현안이 심도 있게 다뤄질 전망입니다.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과 남편 필립공

뉴스 속 인물: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남편 필립공

최근 뉴스의 화제 인물을 소개하는 ‘뉴스 속 인물’ 시간입니다. 오늘 주인공은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남편 필립공입니다. 

지난 9일, 향년 99세를 일기로 타계한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남편 필립공의 장례식이 17일 거행됩니다. 

필립공의 장례식은 고인의 뜻과 영국 왕실의 관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사태 등으로 국장이 아닌 왕실장으로 간소하게 치러집니다.  

그리스와 덴마크 왕족으로 태어나 영국 역사상 현존하는 최장수 군주인 엘리자베스 여왕의 남편으로서, 70여 년간 여왕의 곁을 지켰던 필립공의 생애는 유럽의 근현대사와도 궤를 같이합니다. 

필립공은 1921년 6월, 그리스 코르푸섬에서 태어났습니다.
하지만 필립공이 태어난 무렵, 그리스는 1차 세계대전 후 왕정에 대한 반감 속에 거대한 격변기를 겪고 있었는데요. 그리스와 덴마크 왕자였던 필립공의 아버지도 군사정권에 체포돼 사형 선고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필립공의 가족은 영국 해군의 도움으로 그리스를 탈출하게 되고, 이후 프랑스, 독일, 영국 등지에서 살았습니다. 

필립공과 엘리자베스 여왕이 처음 만난 건 18살, 13살 때였습니다. 

1939년, 당시 영국 왕립해군학교 사관생도였던 필립공이 조지 6세 영국 국왕을 따라 학교를 방문한 엘리자베스 당시 공주를 만난 건데요. 엘리자베스 여왕이 필립공에게 첫눈에 반했다는 건 널리 알려진 이야기입니다. 

이후 필립공은 영국 해군 중위로 복무하며, 2차 세계대전에도 참전했습니다. 이 기간, 두 사람은 편지를 주고받으며 사랑을 키워나갔고, 1947년 11월 20일, 영국 런던 웨스트민스터 대성당에서 성대한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필립공은 결혼과 함께 그리스 국적과 왕족을 포기했고요. 에든버러 공작이라는 칭호를 받았습니다. 

결혼 후 5년도 안 돼 갑작스럽게 조지 6세 국왕이 사망하면서, 엘리자베스 여왕은 26살 생일을 몇 달 앞두고 왕위를 이어받았는데요. 다음 해 치러진 대관식에서 필립공은 여왕에게 무릎을 꿇고 영원한 충성을 맹세했습니다. 군인 정신을 갖춘 강직한 성품의 필립공은 이후 평생을 여왕의 가장 충성된 신하이자 반려자로 여왕의 곁을 지켰습니다. 

특별한 위치였던 만큼 70여 년 결혼 생활이 늘 평탄한 것만은 아니었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이 가정과 나라를 함께 지킬 수 있었던 비결로 필립공의 헌신과 희생이 조명되고 있습니다.  

두 사람은 슬하에 찰스 왕세자 등 4명의 자녀와 8명의 손주, 10명의 증손주를 뒀습니다. 

뉴스 따라잡기, 오늘은 러시아-우크라이나 긴장 상황에 관해 알아봤고요. 뉴스 속 인물로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남편 필립공을 살펴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