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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따라잡기] 석유수출국기구(OPEC)


오스트리아 빈의 석유수출국기구(OPEC) 본부.
오스트리아 빈의 석유수출국기구(OPEC) 본부.

이번에는 뉴스의 배경과 관련 용어를 설명해드리는 ‘뉴스 따라잡기’ 시간입니다.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다음 주 출범 60주년을 맞습니다. 하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로 세계 경제가 얼어붙고 국제 유가가 직격탄을 맞으면서 OPEC은 또 한차례 큰 도전을 맞고 있는데요. 뉴스 따라잡기 오늘은 OPEC의 역사와 당면 과제 등을 짚어보겠습니다.

“OPEC이란?”

OPEC의 공식 명칭은 ‘석유수출국기구(Organization of the Petroleum Exporting Countries)’입니다.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산유국을 위한 국제기구입니다. 전 세계 모든 산유국이 다 가입되어 있는 건 아니고, 현재 13개 나라만 가입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 13개 나라에서 생산하는 원유가 전 세계의 40% 이상에 달하고, 전 세계에서 현재까지 확인된 원유 보유량의 80%가량을 이들 나라가 차지하고 있어 OPEC의 움직임은 늘 국제 사회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OPEC 본부는 오스트리아 빈에 있습니다.

“환갑을 맞은 OPEC”

OPEC은 1960년 9월 14일에 결성됐습니다. OPEC의 출범은 대표적인 산유국인 러시아의 전신, 구소련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1950년대 구소련이 국제 석유 시장에 석유를 수출하면서 석유 공급이 크게 늘었습니다. 그러자 미국의 엑손(Exxon) 등 전 세계 주요 석유 회사들은 석유 구매 가격을 줄줄이 내리기 시작했는데요. 이는 곧 이들 산유국의 수입 감소를 의미했습니다.

그러자 남미 최대 산유국인 베네수엘라와 중동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가 적극적으로 나서 공동 대응을 모색했고, 결국 ‘OPEC’이라는 새로운 국가 간 협의체를 결성하기에 이른 겁니다.

“OPEC 회원국”

OPEC 출범 초기에는 이라크와 이란,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베네수엘라, 이렇게 5개 나라로만 출발했습니다. 하지만 이후 OPEC은 대개 13개 회원국으로 유지하는 모양새입니다.

2020년 현재, OPEC 회원국을 지역별로 살펴보면, 중동 국가들보다 아프리카 대륙 회원국이 좀 더 많습니다.

중동권에서는 이란과 이라크, 쿠웨이트,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등 모두 다섯 개 나라고요. 아프리카 지역은 알제리, 앙골라, 콩고, 적도 기니, 가봉, 리비아, 나이지리아 등 7개국이 OPEC에 가입해 있습니다. 그리고 남미 지역에서는 창립 회원국인 베네수엘라가 유일합니다.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회원국으로 가입해 있던 인도네시아는 그간 탈퇴와 가입을 반복해왔는데요. 지난 2016년 다시 탈퇴했고요. 전통적으로 OPEC 회원국이었던 카타르는 천연가스 생산에 집중하겠다며 지난 2019년 1월 1일부로 탈퇴했는데요. OPEC을 사실상 주도하고 있는 사우디아라비아에 반발한 움직임이라는 분석도 있습니다.

재정난에 허덕이던 남미 에콰도르 역시 2020년 1월 1일 자로 OPEC에서 공식 탈퇴했습니다.

회원국 가입 조건은 당연히 석유를 생산하고 충분히 수출할 수 있는 나라여야 하는데요. 회원국 4분의 3이 동의하고, 특히 창립 5개 회원국이 모두 찬성해야 합니다.

현재 브라질의 OPEC 가입 여부도 관심거리가 되고 있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 등 OPEC 회원국들은 심해유전이 있는 브라질에 OPEC 가입을 권유하며 영향력 확대를 모색하고 있는데요. 하지만 브라질 정부는 현 단계에서는 검토 대상이 아니라는 입장입니다.

“OPEC의 유가 결정 방식”

OPEC은 출범하면서 몇 가지 합의 사항을 내놨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생산 할당제를 통해 유가를 조절하기로 한 것입니다. OPEC회원국들은 적정한 가격과 공급을 유지하기 위해 시장을 분석하며 증산, 또는 감산을 결정합니다. 이런 결정은 회원국의 만장일치 동의가 있어야 하는데요. 회원국의 해당 부처 장관들은 통상적으로 1년에 두 차례, 대개 3월과 9월에 모여 이를 논의하고 특별한 현안이 있을 때는 특별회의를 개최합니다.

“OPEC의 영향력”

OPEC의 영향력이 절정에 달한 건 지난 1970년대입니다. 당시 국제 사회는 두 차례 큰 석유파동을 겪으면서 석유가 무기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됐습니다.

첫 번째 석유파동은 1973년 10월에 있었던 이른바 제4차 중동전쟁이 발단이 됐습니다. 당시 중동 산유국들이 이스라엘에 맞서 석유 생산을 제한하고 수출 금지 조처를 하면서 전 세계는 극심한 혼란을 겪었습니다.

두 번째 석유파동은 1978년 이란으로 인해 벌어졌습니다. 당시 이란은 친미 성향의 팔레비 왕조가 무너지고 극심한 정치적, 사회적 혼란을 겪고 있었는데요. 이런 가운데 이란 당국이 석유 생산을 대폭 줄이고 수출을 중단해버리면서 국제 사회는 또 한차례 석유파동을 겪게 됩니다.

이런 석유파동을 겪으면서 OPEC은 원유 가격의 결정권을 장악하게 되고요. 국제 사회는 석유가 무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각성하고 대체에너지로 눈을 돌리게 됩니다.

OPEC의 영향력은 시대에 따라 조금씩 변해왔고, 오늘날에는 각국의 입김과 주장이 점점 더 강해지면서 석유파동 당시만큼

강력하지는 않은데요. 하지만 여전히 국제 사회에 미치는 OPEC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OPEC+의 출현”

2000년대 들어오면서는 러시아와 멕시코 등 OPEC에 가입하지 않은 다른 산유국들이 OPEC의 독주에 제동을 걸었습니다. 이들 비회원국은 전 세계 원유 수급량과 원유 가격을 둘러싸고 OPEC과 잦은 마찰을 빚었는데요. 그래서 OPEC과 비회원국 간에 이를 논의하기 위한 ‘OPEC +’라는 새로운 협의체가 구성됐습니다.

OPEC+는 기존의 ‘OPEC’에 다른 몇 개 나라를 더했다는 뜻인데요. 러시아와 멕시코를 중심으로, 오만, 수단, 말레이시아, 아제르바이잔 등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미국 역시 산유국입니다. 미국의 원유 매장량은 2018년 기준, 약 440억 배럴에 달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전략적으로 비축하는 원유는 포함되지 않았고요. 또 개발되지는 않았지만, 시추가 가능한 이른바 가채매장량도 2천억 배럴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미국은 OPEC+ 회원국은 아니지만, 협상 중재에 종종 나서고 있습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여파”

지난 3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본격적으로 전 세계에 확산하면서, 전 세계 경제가 꽁꽁 얼어붙었습니다. 공장이 마비되고 이동이 중단되면서 유가도 폭락했는데요. OPEC+는 급락하는 유가를 막기 위해 회의를 거듭했지만, 회원국 간의 이견으로 난항이 이어졌습니다. 이 과정에서 OPEC의 한계가 드러나기도 했는데요. 결국 진통 끝에 감산에 합의하고, 각국이 코로나 사태로 단행했던 경제 봉쇄를 완화하면서 국제 유가는 조금씩 회복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코로나 충격을 상쇄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거라는 중론입니다.

러시아 야권 지도자 알렉세이 나발니 의원.
러시아 야권 지도자 알렉세이 나발니 의원.

뉴스 속 인물: 알렉세이 나발니

최근 뉴스의 화제 인물을 소개하는 ‘뉴스 속 인물 ‘시간입니다. 오늘 주인공은 구소련이 개발한 화학물질 ‘노비촉’의 공격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국제 사회에 큰 충격을 던진 러시아 반정부 운동가 알렉세이 나발니 씨입니다.

러시아 야권 정치인 알렉세이 나발니 씨가 지난 7일 의식을 되찾았습니다. 지난달 비행기 안에서 갑자기 쓰러진 지 18일 만의 일이었습니다. 나발니 씨의 몸 안에서 구소련이 개발한 노비촉이 검출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러시아 정부의 개입 의혹이 커지고 있습니다. 국제 사회는 러시아에 진상규명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알렉세이 나발니 씨는 1976년생으로 올해 44살입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계 후손으로 모스크바 근교에서 태어났습니다.

‘러시아 민족 우호대학교’에서 법학을 공부하고, ‘러시아 연방정부 산하 금융대학교’에서 금융 등을 전공했습니다.

2010년에는 미국 명문 예일대학교에서 차세대 지도자들을 대상으로 한 ‘예일 월드 펠로(Yale World Fellows)’ 프로그램에 참여한 적도 있습니다.

나발니 씨는 변호사이자 유명한 블로거로 활동하면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비롯한 러시아 정치 현안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높여왔습니다. 특히 러시아 국영회사들의 부패 활동을 파헤쳐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2013년에는 모스크바 시장 선거에도 출마했는데요. 비록 무소속 후보에게 지긴 했지만 28% 가까이 득표하며 주목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이 해 횡령죄로 5년 형을 선고받기도 했습니다.

이후 그는 반정부 시위를 적극적으로 주도하며 푸틴 대통령의 대표적인 정적으로 부상했습니다.

2016년 말에는 2018년에 있을 러시아 대통령 선거에 출사표를 던졌습니다. 하지만 러시아 선거 당국은 그의 과거 횡령죄를 문제 삼아 출마를 금지했습니다.

나발니 씨는 정치적 탄압이라고 반발하며 소송을 제기했는데요. 하지만 러시아 대법원도 러시아 선거 당국의 손을 들었습니다.

나발니 씨는 그동안 여러 차례 투옥됐고, 공격도 당했습니다.

2017년 4월에는 나발니 씨의 사무실 앞에서 한 괴한이 녹색 염료를 뿌려 실명 위기에 처한 적도 있습니다. 당시 후유증으로 현재 나발니 씨는 한쪽 눈의 시력을 거의 80% 상실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지난해에는 불법 집회 주도 혐의로 수감된 상황에서 독극물 중독 의심 증상을 보여 병원에 이송된 적도 있습니다.

그리고 올해 또다시 시베리아에서 모스크바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의식을 잃고 쓰려져 사경을 헤매다가 의식을 회복한 겁니다. 하지만 병원 측은 독극물 노출에 따른 장기적 후유증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뉴스 따라잡기, 오늘은 창립 60주년을 맞는 ‘석유수출국기구(OPEC)’에 관해 알아봤고요. 뉴스 속 인물로 러시아 야권 운동가 알렉세이 나발니 씨에 대해 살펴봤습니다. 지금까지 박영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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