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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따라잡기]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무력 충돌이 격화하면서 가자지구 접경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피난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무력 충돌이 격화하면서 가자지구 접경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피난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뉴스의 배경과 관련 용어를 설명해드리는 ‘뉴스 따라잡기’ 시간입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무력 충돌이 격화하고 있습니다.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의 대규모 로켓 공격에 이스라엘은 대대적인 공습으로, 연일 공격을 주고받으면서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데요. 뉴스 따라잡기 이 시간에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오랜 역사적 갈등 관계 짚어보겠습니다.

“이스라엘 국가 설립 과정”

이스라엘은 20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지도상에 존재하지도 않던 나라였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을 흔히 ‘유대인’이라고 하는데요. 이는 이스라엘 12 지파 가운데 하나인 ‘유대 지파’에서 나온 말입니다.

기원전부터 지금의 팔레스타인 지역에 살던 이들 유대인은 2천 년 넘게 나라 없는 민족으로, 유럽 등 전 세계에 흩어져 살았습니다. 그러다 19세기 말, 이른바 ‘시온’으로 돌아가자는 민족적 대운동을 펼치며 지금의 팔레스타인 지역에 국가 건설을 추진했는데요. 시온은 고대 이스라엘의 다윗왕의 궁전이 있던 곳으로 오늘날 예루살렘을 일컫는 성경적 이름이기도 합니다.

이스라엘의 이런 시온주의 움직임은 당연히 그 지역에 이미 살고 있던 아랍 민족의 반발을 불러왔고, 양측의 무력 충돌이 끊이지 않았는데요.

결국 유엔이 나서, 1947년 11월 팔레스타인 지역을 분할해 아랍 국가와 유대인 국가를 각각 세우는 결의안을 채택합니다.

이스라엘은 이 결의안을 받아들였지만, 아랍인들은 거부했습니다. 이스라엘은 이듬해인 1948년 5월 14일 국가 건설을 국제사회에 선포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과 아랍권 국가들은 3차례 전쟁을 벌이는데요. 세 번 다 이스라엘이 승리했고, 전쟁에서 패한 팔레스타인인들은 난민 신세로 전락했습니다.

“팔레스타인의 국제적 지위”

오늘날 팔레스타인이 나라인지 아닌지 혼동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요. 팔레스타인은 현재 영토와 국민이 제대로 없기 때문에 국제사회로부터 완전한 독립주권국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난 2012년 유엔에서 ‘비회원옵서버 국가(non-member observer state)’의 지위를 얻었습니다. 비회원 옵서버국가란 유엔 총회에서 의결권은 없지만, 국제사회가 팔레스타인을 사실상 국가로 승인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전까지 유엔 내 팔레스타인의 지위는 ‘옵서버단체(observer entity)’였는데요. 유엔은 이 해 팔레스타인의 지위를 옵서버국가로 격상하는 결의안을 표결에 부쳐 찬성 138, 반대 9, 기권 41로 통과시켰습니다.

“요르단강 서안과 가자지구”

현재 팔레스타인은 요르단과의 접경, 흔히 요르단강 서안 지구라고 하는 요르단강 서쪽 지역과 지중해 연안에 있는 가자지구에 대한 주권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요르단강 서안 지구는 1967년 제3차 중동전쟁에서 이스라엘이 이긴 후부터 이스라엘이 점령하고 있는데요. 이곳에 특히 오늘날 분쟁의 씨앗이 되고 있는 동예루살렘도 있습니다.

요르단강 서안 지구에는 1993년 팔레스타인 지도자 야세르 아라파트가 이스라엘과 합의한 이래,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들어서 있는데요. 국제사회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를 팔레스타인을 대표하는 합법적 기구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요르단강 서안 지구는 육지 면적이 약 5천600㎢ 되고, 인구는 334만 명 정도로 팔레스타인인이 대부분입니다.

2017년 기준으로 약 275만 명이 팔레스타인 주민인데요. 하지만 이스라엘이 이곳에 이른바 유대인 정착촌을 계속 건설하면서 이스라엘 주민의 수가 계속 늘고 있습니다. 현재 요르단강 서안 지역에 거주하는 이스라엘 주민은 약 39만 명 정도고요. 동예루살렘에도 약 20만 명의 이스라엘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습니다. 팔레스타인은 이스라엘의 유대인 정착촌 건설은 영토 확장 야욕이자 국제법 위반이라고 반발하고 있습니다.

현재 가자지구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에서 떨어져나온 무장 정파 ‘하마스’가 장악하고 있습니다. 급진 이슬람 근본주의 성향이 강한 이들은 대이스라엘 강경노선을 걸으며 무장투쟁을 종종 벌이고 있는데요. 미국과 이스라엘은 하마스를 테러 단체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가자지구는 약 365㎢의 아주 좁은 땅입니다. 인구는 2020년 기준, 약 200만 명으로, 전 세계에서 인구밀도가 가장 높은 곳의 하나입니다. 주민은 거의 다 팔레스타인인들입니다.

“중동의 화약고, 예루살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갈등의 중심에는 ‘예루살렘’이 있습니다.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인들이 믿는 유대교와 팔레스타인인들이 믿는 이슬람교 모두 성지로 여기는 곳입니다. 여기에 1세기에 태동한 기독교 역시 예루살렘을 성지로 삼아, 세계 3대 종교의 성지라는 독특한 지위를 갖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을 둘러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갈등은 이스라엘의 건국으로 본격화하는데요. 이스라엘은 1948년, 제1차 중동전쟁에서 예루살렘의 서쪽을 점령하고 이곳을 수도로 선포했습니다. 그리고 1967년 6일 만에 끝난 3차 중동전쟁에서 승리하면서 예루살렘 동쪽까지 점령하고 1980년, 예루살렘 전체를 이스라엘의 영원한 수도로 선포했습니다.

하지만 국제사회는 예루살렘에 대해 어느 나라에도 속하지 않는 특별한 지위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이스라엘의 예루살렘 수도 주장도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나라가 이스라엘 제2의 도시 텔아비브에 대사관을 두는 것도 이 때문인데요. 하지만 이스라엘 정부 청사와 국회의사당, 대법원과 중앙은행이 서예루살렘에 있어, 현실적으로는 예루살렘이 이스라엘의 수도 기능을 하고 있습니다.

“풀리지 않는 숙제, 2 국가 해법”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지난 1993년 미국의 중재로 역사적인 오슬로협정을 체결했습니다. 중동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장차 두 나라가 평화롭게 공존하자는 이른바 ‘2 국가 해법’이었는데요.
골자는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와 요르단강 서안 등 일부 점령지를 팔레스타인에 반환해 팔레스타인의 독립을 돕고, 팔레스타인은 이스라엘에 대한 무장 투쟁을 포기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오슬로협정의 주역이었던 이츠하크 라빈 이스라엘 총리가 1995년 극우파 유대인에게 암살되고, 강경 보수파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가 집권하면서 이스라엘의 정치 판도가 바뀌게 됐습니다. 여기에 하마스의 테러 공격이 이어지면서 오슬로협정은 30년 넘게 아무런 결실도 거두지 못한 채 흐지부지해지고 말았습니다.

이런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지난 2017년,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인정한다고 전격 선언하고 이듬해에는 텔아비브에 있던 미국 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이전해 아랍권의 격렬한 반발을 샀는데요. 현 조 바이든 대통령 행정부는 미 대사관을 예루살렘에 계속 유지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리즈 체니 미 공화당 하원의원
리즈 체니 미 공화당 하원의원

최근 뉴스의 화제 인물을 소개하는 ‘뉴스 속 인물’ 시간입니다. 오늘 주인공은 리즈 체니 미 공화당 하원의원입니다.

리즈 체니 공화당 하원의원이 12일, 당내 서열 3위인 공화당 의원총회 의장직을 상실했습니다.

그간 리즈 체니 의원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탄핵에 찬성표를 던진 이래 배신자라는 비난 속에 공화당 지도부의 눈 밖에 나 있었는데요. 하원 공화당 의원들은 이날 비공개회의를 열고 체니 의장의 불신임안을 표결에 부쳐 통과시켰습니다.

이로써 체니 의원은 당내 서열 3위의 최고 위치에서 일반 하원의원으로 내려오게 됐습니다.

공화당 안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 비판에 앞장서 온 체니 의원은 공화당은 지금 중대한 갈림길에 서 있다며 공화당의 가치와 지위를 다시 찾아야 한다고 역설해왔습니다.

리즈 체니 의원은 유명한 공화당 정치 가문 출신입니다.

체니 의원은 지난 2001년부터 2009년까지 집권한 조지 W. 부시 행정부에서 미국의 부통령을 역임한 딕 체니 부통령의 2녀 중 장녀입니다.

체니 의원은 1966년생으로 미국 중서부 위스콘신주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릴 적부터 정치인 아버지의 선거 유세를 지켜보며 정치적 감각을 익힌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콜로라도대학교를 졸업한 후 미 국무부와 국제개발처 등 정부 부처에서 근무했습니다. 이후 시카고대학교 법률전문대학원을 졸업한 후 국제법 전문 변호사로 활동했습니다.

체니 부통령 재임 시절인 2002년 국무부 근동문제차관보를 시작으로 2006년에는 국무부 산하 ‘이란시리아정책운영그룹(ISOG)’을 이끌었습니다.

2007년 국무부를 떠난 그녀는 2008년 공화당 대선 경선 후보 가운데 1명이었던 프레드 톰슨 전 테네시주 상원의원의 선거 운동을 돕는가 하면, 2012년에는 미국의 대표적인 보수 매체 ‘폭스뉴스’의 해설자로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리즈 체니 의원은 2014년 처음 연방 의원직에 도전했습니다.

당시 그녀는 아버지의 정치적 기반이자 공화당 텃밭인 와이오밍주에서 연방 상원의원 선거에 출마했는데요. 하지만 가족의 건강 문제를 이유로 중도 하차했습니다.

체니 의원은 2016년 연방 하원의원 선거에 출마해 압승을 거두면서 다시 워싱턴에 입성합니다.

그리고 2018년과 2020년 선거에서 승리하면서 3선 의원으로서 당내 입지를 견고히 다져왔습니다.

특히 2018년 11월 표결을 통해 공화당 의원총회 의장에 선출된 이래 2019년 1월부터 당내 서열 3위의 자리를 지켜왔는데요. 하지만 2년여 만에 결국 자리에서 물러나게 됐습니다.

정치 분석가들은 공화당 지도부가 체니 의원을 당직에서 몰아낸 것은 최근 정치적 기지개를 켜고 있는 트럼프 전 대통령을 포용하기 위한 포석으로 해석하고 있는데요. 공화당의 선택이 내년 중간선거에서 어떤 결과를 낳을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뉴스 따라잡기, 오늘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오랜 갈등 관계에 대해 살펴봤고요. 뉴스 속 인물로 리즈 체니 미국 공화당 연방 하원의원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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