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한 상점에 밸런타인데이 선물용 초콜릿이 진열돼있다.
서울의 한 상점에 밸런타인데이 선물용 초콜릿이 진열돼있다. (자료사진)

미국과 한국 등 자유세계에서 밸런타인데이를 보내는 탈북민들은 다소 어색하지만 사랑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어 행복하다고 말했습니다. 한 민간단체는 이런 사랑의 마음을 담아 탈북민을 더 구출하자며 동영상 캠페인을 펼쳤습니다. 김영권 기자가 보도합니다.

탈북민 출신 인권운동가인 박연미 씨는 14일 밸런타인데이를 맞아 인터넷 사회관계망인 ‘트위터’에 자유세계에 사는 게 감사한다는 글을 올렸습니다. 

박 씨는 “북한에 살 때는 사람들 사이에 사랑을 기념하는 날이 단 하루도 없었고, 모든 휴일은 (대부분) 수령이나 노동당을 기념하는 날”이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자유세계에서 우리가 사는 게 다행스럽다”며 빌딩 숲 야경을 배경으로 한 자신의 사진과 함께 “사랑이 가득한, 행복한 밸런타인 데이”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2월 14일, 밸런타인데이는 지구촌의 많은 주민이 사랑하는 가족이나 연인에게 감사나 애정의 표현을 담은 선물을 주고받으며 보내는 날입니다.

미국 동부에 사는 함경북도 출신 데보라 씨는 미국에 난민 지위를 받아 정착한 지 14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미국에서 자란 남편에게서 밸런타인데이 선물을 받으면 어색하다고 말합니다.

[녹취: 데보라 씨] “집에 오니까 상자들이 쌓여 있더라고요. 문 앞에요. 열어 보니까 박스에서 초콜릿이 하나하나 나오더라고요. 엄청 비싸더라고요. 그래서 다시는 그런 짓 하지 말라고 했어요. 돈 아깝게.”

사랑을 자연스럽게 표현하기 힘든 북한 문화에 너무 익숙해져 있다 보니, 아직도 사랑 표현을 들으면 종종 민망스럽다는 겁니다.

[녹취: 데보라 씨] “(북한에서는) 남녀 사이에 좋아해도 좋아한다는 표현도, 손도 못 잡고 그렇게 표현 못 하며 살다가 여기 와서는 국가적으로 연인들의 날까지 되어 있고, 서로 사랑 표현을 하고, 아직도 많이 익숙하지 않아서 밸런타인데이가 오면 몸이 적응이 안 돼, 되게 오글거려요. (웃음)”

몸은 좀 오글거리지만, 그래도 이제야 북한에서 느끼지 못했던 사람 사는 맛을 느낀다는 데보라 씨.

[녹취: 데보라 씨] “북한에 살 때는 그저 기계라는 느낌이 들었다면 자금은 진짜 나도 인간이구나. 너무 기본적으로 인간스러운, 자연스러워진 것 같고요. 부드러워지고 사람도 많이 달라지고. 성격도 많은 변화가 있고, 표현하는 방법도 그런 것을 통해 배우는 것 같아요.”

미국의 탈북민 지원 단체인 링크(LiNK)는 밸런타인데이를 맞아 자유세계에 먼저 정착한 탈북민들의 사랑 얘기를 담은 동영상들을 올렸습니다. 

[녹취: 동영상 중 탈북민 기원 씨] “김일성 사망 후에….풀을 뜯어 먹고 살던 형편이었는데…그런 형편에서 할 수 없이 조국을 떠나 외국에 와서...”

탈북민 기원 씨는 사랑하는 아내에게 죽기 전에 꼭 자유를 누리자고 약속했고, 4천800km의 긴 여정을, 아내 손을 잡고 이동한 끝에 한국에 정착할 수 있었습니다. 

[녹취: 동영상 중 탈북민 기원 씨] “여러분들이 이렇게 도와주기 때문에 편하게 오고, 어둠 속에서 숨어 사는 형편이었습니다. 여기 와서 아직까지는 그렇게 없고 어찌나 감사한지 더 말할 게 없습니다.”

링크는 밸런타인데이를 맞아 “기원 씨의 약속은, 사랑은 무엇이든 이겨낼 수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 준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런 사랑의 마음을 담아 도움이 필요한 다른 탈북민들을 더 구출하자며 미국인들에게 지원을 호소했습니다.

이 단체는 지난해 탈북민 206명을 포함해 지금까지 총 1천 201명을 구출했다며, 이 중 459명이 자유세계에서 사랑하는 가족과 다시 재회하는 기쁨을 누렸다고 소개했습니다. 

한국에 정착한 젊은 탈북민들은 미국과 달리 여성이 주로 남성에게 초콜릿을 선물하는 한국 특유의 밸런타인데이 문화에 다양한 반응을 보입니다.

직장인 허숙영(가명) 씨는 14일 VOA에, 북한인들에게 2월은 김정일의 생일인 16일, 광명절로 각인돼 있다며, 사랑이 아닌 김 씨 가족에게 충성을 강요하는 시기라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개인의 권리보다 의무에 익숙한 북한에 살다가, 한국에서 초콜릿과 꽃을 파는 밸런타인데이 길거리 풍경을 보면 아직도 많이 낯설다는 겁니다. 

[녹취: 허숙영 씨] “북한에는 밸런타인데이가 아예 없죠. 여기는 내가 이 날이 기다려지고 뭔가 누구를 챙겨야 하고 그래야 되는데, 그 자체를 잘 모르고, 편의점이나 꽃가게에 꽃들이 길옆에 나오고 하니까..아 그 날인가? 하고 깨닫는 정도? 그래서 누군가가 해피 밸런타인 데이라고 얘기하면 약간 쑥스러워요. 뭐라고 얘기해야 할지..”

한국에서 연인이 생기면 좀 달라질 것 같다며 수줍어하는 숙영 씨는 한국에서 개인의 행복과 자유가 무엇인지 배워가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허숙영 씨] “북한은 국가를 중심으로 돌아가니까 개인한테는 뭔가가 없죠. 생일? 명절? 설날이나 추석 빼고는 딱히 없죠.”

대학원에 재학 중인 리경 씨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용기를 내서 고백할 수 있는 공식적인 날이 있다는 게 아주 흥미롭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진정한 사랑보다 너무 상업화, 형식화된 분위기가 불편할 때도 있다고 말합니다.

[녹취: 리경 씨] “너무 상업화돼 있어서 뭐 초콜릿 주는 것은 서로를 위한 게 아니죠. 자영업자를 도우려면 초콜릿을 하나 사야 하는 거고. 줄 수 있는 날은 많으니까. 일을 할 때는 회사에서 뭔가 분위기 때문에 그냥 하나씩 의무처럼 돌리기는 했는데, 뭔가 즐거워서라기보다는 그냥 그 날이니까……”

탈북민들은 그럼에도 사랑하는 사람에게 마음을 표현하며 어디든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는 세상에 산다는 게 큰 축복이라고 말했습니다. 

VOA 뉴스 김영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