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흥 출신의 1.4후퇴 피난민으로 미국에서 항공우주국 전기기술자로 일한 장송 씨.
함흥 출신의 1.4후퇴 피난민으로 미국에서 항공우주국 전기기술자로 일한 장송 씨.

매주 금요일 북한 관련 화제성 소식을 전해 드리는 ‘뉴스 풍경’입니다. 지난주 열린 미-한 정상회담 공동성명에  이산가족 상봉 문제가 포함되면서 미국 내 한인 이산가족들과 이산가족 상봉 추진단체들의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장양희 기자가 전해 드립니다. 

라디오
[뉴스 풍경] 미국 내 한인 이산가족들, 미한정상회담으로 상봉 기대감 높아져

“이번에는 정말 고향 땅에 가 볼 수 있을까? 가족을 알아 볼 수는 있을까?” 

한국전쟁 당시 고향을 떠나 이역만리 미국까지 온 재미 한인 이산가족. 

평균 80-90세의 고령인 한인 이산가족들은 지난 21일 미-한 정상회담 이후 적지 않은 기대감을 갖게 됐습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문재인 한국 대통령의 공동성명에  ‘남북 이산가족 상봉 촉진을 지원한다는 양측의 의지를 공유했다’는 문구가 포함됐기 때문입니다.  

함흥에서 태어나 한국전쟁 발발 후 1951년 1.4 후퇴 당시 피난민이 된 89세 장송 할아버지는 두 정상이 이산가족 문제를 꺼낸 것만으로 반갑습니다. 

[녹취: 장송] “늦게나마 이렇게 이산가족 문제가 나와서 회담 의제에 올렸다는 것이 고맙고. 이것만 해도 반갑다고.. 그렇잖아요. 우리 이산가족들이 모두 90인데 혼자 나와서 일사후퇴 때 피난 나온 사람들 그 분들이 뚜렷한 목적이 있어서가 아니라 살기 위해서 피난한 거니까..”  

전쟁통에 살기 위해 어쩔수 없이 선택한 길이 기약없는 생이별이 됐고, 한국에서 가족과 고향을 마음 놓고 그리워하지도 못했다는 장 할아버지는 1975년 미국으로 왔습니다.  

미국에서 사업을 하다 큰 어려움을 겪었고 60세에 공부를 시작해 새로운 여정을 걷기도 했습니다. 메릴랜드 그린벨트에 소재한 미 항공우주국(NASA) 고더드 우주연구소에서 전기 기술자로 21년 간 근무한 겁니다.  

어깨 부상으로 은퇴한 장 할아버지는 50여 년 이민생활 동안 자신이 이산가족임을 잊어본 적이 없습니다. 

장 할아버지는 캐나다와 미국 내 이산가족들의 북한 내 가족 생사 여부를 확인해 연결하는 등 한인 이산가족 문제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그러나 장 할아버지에게도 기다림은 쉽지 않은 여정이었습니다. 미국 내 한인 이산가족들에게는 상봉의 기회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흘러 백발 노인이 된 장송 할아버지는 미-한 정상회담에서 이산가족 문제가 처음으로 의제에 올랐지만 서운한 마음은 감출 수가 없습니다.

[녹취: 장송] “야 이게 너무 늦었지 않나. 세상만사가 때가 있는 거에요. 봄 여름 가을 겨울.. 나이 많아서 휠체어 타고 지팡이 짚고 갈 수가 없어요. 마음은 고마운데 갈 수가 없다..”

장 할아버지는 소학교를 함께 다녔던 친구들을 미국에서 만나 서로 의지하며 살았지만 이미 고인이 됐다며, 남은 생존자들은 거의 모두 늙고 병이 든 게 현실이라고 말했습니다. 

장 할아버지는 4-5년 전까지 북한에 있는 남동생과 여동생의 편지를 받았었지만 이들은 모두 사망했고, 이제는 북한에 가도 만날 수 있는 혈육은 조카와 그들의 손주들뿐입니다. 

그럼에도 희망을 놓을 수 없는 이유는 마지막 남은 소원 때문입니다. 고향에 가서 부모님의 유해를 찾는 것입니다.

[녹취: 장송] “바라는 게 있다면, 자식이 부모에게 효도를 하는 것은, 부모의 임종을 보는 것이 효도라고 했다고. 어머니 아버지가 언제 돌아갔는지 언제 어떻게, 유골은 어디에 있는지, 산에 있는지 강바닥에 있는지 개천에 있는지 모르잖아요. 가서 유골이라도 찾아서 어머니 아버지 형제들이 있으면 같이 유골을 모아서 나도 같이 묻히고.. 죽어서도 한 데, 동그랗게 해 가지고, 찾아가지고 모시는 게 효도가 아닌가. 서러움을 모두 묻고 잊어라… “

늦게라도 고향 땅에 함께 누워 평안하게 잠들기를 소망하는 장송 할아버지는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마지막 기회일 수 있는 이산가족 상봉을 위해 정부 차원에서 모든 여건을 마련해 주기를 희망하고 있습니다.   

미-북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경제적 지원과 고령인 생존자의 형편에 맞춰 방문 시기를 정하는 등 구체적인 방안이 나와야 실제로 도움이 될 거라는 겁니다.   

1990년대부터 미국 내 한인 이산가족 문제를 국제사회에 알려온 민간단체 ‘재미이산가족 상봉추진위원회’ 이차희 사무총장은 VOA에 이 같은 기대감에 부응해 추가 신청자를 받고 있다고 알렸습니다. 

이 사무총장은 2019년에 작성된 재미 한인 이산가족 신청자 명단에 97명이 이름을 올렸고, 이번 주 미 동부와 서부에서 3명의 추가 신청자가 나왔다고 밝혔습니다. 

정상회담에 앞서 미 하원에 발의된 법안도 이 단체의 움직임에 큰 힘을 실어줬습니다.  

그레이스 멩 민주당 하원의원 주도로 발의된 ‘이산가족 상봉 법안(HR826)’과 브래드 셔먼 의원이 주도한 ‘한반도 평화 법안’이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정부 간 협의 등의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사무총장은 의회의 움직임을 반기면서 생존자들의 모두 고령인 점을 고려해 법안이 통과하면 상봉 절차가 바로 시작돼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산가족인 자신의 미국 내 형제자매가 최근 모두 사망하고 북한에 남은 오빠의 생사도 모르는 상황인 만큼 이 문제는 시급히 다뤄져야 한다는 지적입니다.   

상봉이 성사돼 오빠도 찾고 개성에 있는 아버지의 산소를 찾아 가고 싶다는 이차희 사무총장은 부모님과 형제들의 유해를 정리하는 것은 고령인 생존자들이 바라는 일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이런 가운데 이 단체 이규민 회장은 이번 정상회담에서 지명된 성 김 대북특별대표와의 협력을 기대한다며, 생존자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VOA에 말했습니다. 

[녹취: 이규민] “혼자 만나는 것 보다 가능하다면 예를 들면 몇 년 전에 유엔 북한인권특사가 워싱턴 방문했을 때 이산가족 할아버지 할버미 세 분과 함께 미팅을 했었거든요. 대표 분들과 만날 때도 같이 만나면 더욱 더 의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현재 발의된 법안들이 상하원을 통과하고 대통령의 서명을 받는 등 넘어야 할 산이 있는 만큼 법적인 근거가 우선시 된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한인사회의 노력이 있어왔고 동력을 만들기도 했었던 만큼 정상회담을 계기로 결실을 맺기를 희망했습니다. 

미국 내 이산가족 이민들의 사연을 온라인 라디오 팟케스트로 전하고 있는 이규민 회장은 이산가족 상봉이 이들의 아픔을 치유하는 길이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녹취: 이규민] “역사적인 슬픈 사실이었구나..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말아야겠다 생각을 하는데요, 재미 이산가족 분들은 지금까지 살아계시잖아요. 아직까지는 어떻게 하면 그 분들의 한을 풀어드릴 수 있는지 더욱 더 실감하게 되더라고요. 단순한 한 번의 만남이 아니라 한 번의 만남은 좋을 수 있지만, 더 충격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진정한 힐링은 주기적인 체계적인 상봉과 소통이 되어야 하고 이를 어떻게 준비할 수 있는지 곰곰히 생각하게 됐습니다.”  

이 단체는 미국 내 한인 청년 주축으로 한인 이산가족 영상 기록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영상과 서신 교환도 어려운 현재 상황에서 한인 청년들의 역할을 찾아보기 위한 일환으로 기획했습니다. 

이 회장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으로 지구촌 사람들이 가족과 격리되고 만날 수 없는 상황을 겪었다며 이산가족의 아픔을 엿볼 수 있는 기회일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이규민] “희망하는 것은 이런 상태의 기회 중 하나는 미국 사람들이 재미 이산가족의 아픔을 조금 더 공감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통화 조차 70년 동안 못한 상태잖아요.” 

VOA 뉴스 장양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