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유엔 인권이사회가 열린 스위스 제네바에서 토마스 오헤아 퀸타나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이 기자회견을 했다.
토마스 오헤아 퀸타나 북한인권특별보고관.

북한 정권이 주요 인권 관련 국제협약과 관련해 거의 20년째 보고서를 제출하지 않는 등 당사국으로서 의무를 이행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지독한 인권 침해의 핵심 쟁점과 근본 문제가 제기되는 것을 피하려는 의도란 지적이 나옵니다. 김영권 기자가 보도합니다.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가 최근 갱신한 인권협약기구 데이터베이스(UN Treaty Body Database)에 따르면 북한은 14개 인권협약과 의정서 가운데 지금까지 5개 협약과 1개 의정서를 비준했습니다.

북한이 비준한 5개 협약은 지난 1981년 비준한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협약(CCPR)과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협약(CESCR), 1990년 아동권리협약(CRC), 2001년 여성차별철폐협약(CEDAW), 그리고 2016년에 비준한 장애인권리협약(CRPD)입니다.

북한 당국은 그러나 아동과 여성, 장애인 관련 협약에 관해서는 제한적으로 협력하면서도 인권협약의 뼈대로 가장 근본적인 권리를 다루는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협약과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협약은 20년째 외면하고 있습니다.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 자료에 따르면,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협약을 비준한 173개 당사국은 3~6년마다 국가보고서를 제출하고 심의를 받아야 하지만, 북한은 2002년 8월 이후 보고서를 전혀 제출하지 않고 있습니다.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협약도 2002년 4월 보고서를 끝으로 제출 의무를 이행하지 않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북한 당국이 근본적인 인권 문제가 제기되는 것을 피하려고 하는 것으로 풀이하고 있습니다. 

워싱턴의 민간단체인 북한인권위원회의 그레그 스칼라튜 사무총장은 29일 VOA에, 북한 지도부가 인권 침해의 핵심 쟁점과 근본 원인 등 주요 문제 대신 환경 등 지엽적인 사안에 치중하려는 목적이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녹취: 스칼라튜 총장] “Let's say circumstances and fringe issues, instead of addressing the core of the problem.

북한 정권이 지난 2017년 장애인 권리 특별보고관의 방문을 허용하는 등 아동과 여성, 장애인 인권에 제한적이나마 협력하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이런 취약 계층의 인간 안보가 왜 그렇게 열악한지에 대해서는 문제를 회피하고 있다는 겁니다. 

유엔도 보고서와 결의안을 통해 비슷한 문제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토마스 오헤아 퀸타나 북한인권특별보고관은 지난해 유엔총회와 올해 유엔 인권이사회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북한은 세계인권선언과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협약 당사국으로서 인권 위반에 대한 효율적인 개선책을 보장할 의무가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퀸타나 보고관 보고서] “Building on the Universal Declaration, the International Covenant on Civil and Political Rights, to which the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 remains a party, obliges states parties to ensure an effective remedy for violations of human rights.”

그러면서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협약을 감독하는 자유권규약위원회가 지적하는 기본적인 인권 침해 문제를 나열하며 개선을 촉구했습니다.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협약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생명권을 비롯해 신체의 자유, 종교와 양심, 표현, 집회, 결사의 자유 보장을 명시하고 있지만, 이런 기본적 권리가 북한에서는 대부분 무시되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퀸타나 보고관은 또 북한 정권의 주요 체제유지 수단인 노예 노동 문제를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협약 위반 문제로 지적했습니다. 

[퀸타나 보고관] “This system of State assigned labour appears to violate the right to work as guaranteed by the International Covenant on Economic, Social and Cultural Rights, to which the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 is a party since 1981.”
 
북한 지도부가 강제로 배정하는 노동 제도가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협약이 보장하는 노동권, 특히 개인 스스로 생계를 위해 직업을 자유롭게 선택하고 수용할 권리를 침해하는 것으로 보인다는 겁니다.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협약과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협약은 모두 국제법적 구속력이 있지만, 유엔 내 여러 정치적 이해관계 때문에 특정 국가에 실질적인 제재를 가하기 어려운 모순이 있다고 유엔 전문가들은 지적합니다.

유엔 자유권규약위원회는 최근 북한의 기본적인 인권 침해 문제에 대해 북한 당국이 어떤 개선 노력을 하는지 묻는 29개 질의서를 북한 정부에 보냈습니다.

그러나 코로나 여파로 국경을 장기간 봉쇄하고 최근 여러 국가적 행사를 통해 주민의 사상교양사업을 더욱 강화하는 기류로 볼 때 북한 당국이 보고서를 제출하거나 협력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합니다.

스칼라튜 총장은 북한이 유엔에서 지도부에 대한 인권 비난을 회피하고 미국 등 다른 서방국가들의 인권 기록을 공격하며 정상 국가 이미지를 선전하기 위해 핵심 협약을 무시한 채 나머지 3개 협약에 제한적으로 협조하는 기존 전략을 고수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VOA 뉴스 김영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