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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풍경] 미국 내 탈북 여성, 암 투병 중 끝내 숨져


42세의 일기로 별세한 메이 주 씨.
42세의 일기로 별세한 메이 주 씨.

매주 금요일 북한 관련 화제성 소식을 전해 드리는 ‘뉴스 풍경’입니다. 북한에 두고온 아들을 만날 희망을 놓지 않았던 탈북 여성이 오랜 투병 끝에 최근 숨졌습니다. 미 서부 캘리포니아에 거주하면서 북한 인권 개선을 위해서도 적극 활동했던 메이 주 씨의 안타까운 사연을 장양희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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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8년 조지 워싱턴대학이 개최한 ‘세계 여성 인권의 날’ 행사에 증언자로 나섰던 탈북 여성 메이 주 씨.

당시 주 씨는 평양에서 나고 자라 외교관이 되고 싶었던 꿈이 어떻게 좌절됐는지를 설명했습니다.

[녹취: 메이 주] “평양시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던 저는 외교관이 될 꿈을 갖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꿈도 잠깐, 1988년 북한 당국의 인구 축소 조치로 가족이 모두 양강도 해산시 두메산골로 추방 당했습니다.”

결혼해 2명의 자녀를 낳고 살았지만 행복하지 못했습니다.

남편은 목을 조르는 등 주 씨에게 극심한 폭력을 일삼았고, 큰 아이는 기차에 치어 죽었으며, 둘째 아이는 화상을 입어 손이 오그라들었습니다.

아이 만이라도 제대로 살게 해주려고 수술비 마련을 위해 중국을 방문했던 주 씨는 북한으로 돌아간 뒤 더 큰 불행을 겪었습니다.

[녹취: 메이 주] “뇌물을 받고, 약속했었지만 경비대원들이 초소로 끌고 갔습니다. 온몸을 벗기고, 자궁안 검사 받았습니다. 강제로 책상에 엎드리게 해 성폭행을 강행했습니다. 아들 수술비니 봐달라고 했지만 나무 각목으로 때리고, 차고 때리고, 죄목은 돈이 나왔는데 거짓말을 했다는 이유였습니다.”

집결소를 나와 집으로 가보니 아들은 실종되고 없었습니다.

북한에서 살아갈 이유를 잃은 주 씨는 중국으로 탈북했지만 인신매매를 당해 중국인 남성과 살면서 딸을 낳았습니다.

중국인 남편 역시 폭력이 심했고, 주 씨는 한 살도 채 안된 자식을 두고 중국을 떠났습니다.

태국의 난민수용소에 도착해 미국행을 기다리게 된 당시 30대 초반의 메이 주 씨. 이제는 사람답게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미국 땅을 밟기도 전에 위암 선고를 받았습니다.

2012년 미국 콜로라도 주에 도착해 암 제거 수술을 받고 LA에 정착한 지 8년 만인 지난 4월 24일, 메이 주 씨는 42세 나이에 숨을 거뒀습니다.

주 씨의 미국 정착을 도운 미 서부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의 탈북민 지원단체 엔키아 대표 김영구 목사입니

[녹취:김영구] ”위에 있는 암이, 간으로 한 번 가서 황달도 한 번 왔었고, 그 담에는 폐로 가고.. 먹는 게 다 복수가 차고..”

김 목사는 VOA에 주 씨의 마지막 모습에 대해 말했습니다.

[녹취:김영구] ”4월 24일 4시 였어요. 쫒아 들어갔더니 눈 감았는데, 따뜻하더라고요. 오랫동안 아팠으니.. 옆에 병간호사가 있었고. 대소변을 쏟으시니까.. 치워주고, 복수가 차니까, 물을 빼주고, 누가 옆에 있었는데, 돌아가신 지 10분 됐더라고요. 들어갔더니. 특별한 유언은 없었고 장례만 부탁한 거 같더라고요. 저한테 부탁해 달라고 했다고”

주 씨의 사망 소식은 가장 먼저 북한의 가족에게 전해졌습니다.

[녹취: 김영구] “돌아가시고 난 다음날 돌아가셨다고 이야기했어요. 엉엉 우시죠. 집사님이 탈북하실 때 그 어머니가 두만강 가에 와서 다시는 돌아오지 말라고.. 돌아오지 말고 가서 잘 살으라고.. 그랬다는데..”

코로나 사태로 조문객이 많지 않았지만 김 목사는 “정성스럽게 장례를 치르고 시신은 화장해 뼛가루를 납골당에 모셨다”며, “통일 후 북한에 가져가야 하지 않겠냐”고 말했습니다.

주 씨의 안타까운 죽음은 탈북민 사회에도 알려졌습니다. LA에 거주하는 50대 탈북 남성 박명남 씨는 뭐라 말할 수 없다고 심경을 토로했습니다.

[녹취:박명남] “남의 일이 아니니까 얼마나 많은 한을 마음에 품고 갔겠어요. 처음으로 찢어지는 거 같아요. 저도 작년에 어머니를 하늘나라로 보냈는데. 90이었어요. 90대 할머니가 죽어도 마음이 이렇게 허전한데. 그 젊은 사람이 하늘나라 갔다니까,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요. 하늘도 무심하지. 그 생각 밖에 없네요.”.

그러나 누구보다 충격을 받을 사람은 중국에 있는 어린 딸일 것이라며, 김 목사는 주 씨가 2년 전 딸을 만났다고 말했습니다.

2년 전 주 씨와 함께 중국에 간 엔키아의 사라 조 간사는 VOA에 당시 상황을 전했습니다.

[녹취:사라 조] “2016년도에 치료 받고 있던 병원에서 할 수 있는 건 다 했으니까, 생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판정을 받고, 그 때부터 죽기 전에 딸을 꼭 만나고 싶다고 해서. 준비가 시작됐고..”

주 씨가 미국 시민권을 딴 2018년, 지역 한인과 탈북민들이 십시일반 모은 기금으로 2년 만에 이뤄졌습니다.

사라 씨는 주 씨의 보름 간의 여행을 이렇게 회상합니다.

[녹취:사라 조] “비행기 타고 가는데 이렇게 말하시는 거에요. 사라 씨. 제가 신분도 없이 숨어살던 제가 그 중국 땅에 미국 시민으로 간다는 것이 감격스럽다고.. 감회가 새로울 거 같다고. 중국말이 잘 나올까 걱정을 하면서 갔는데. 무섭다고 하시더라고요. 중국에서 겪었던 일이 떠오르면서 그때 감정이 되살아 나신다고..”

7년 만에 만난 딸을 안고 눈물을 흘렸던 메이 주 씨.

[녹취: 사라 조] “딸의 할머니가 마중 나오시고, 딸을 부둥켜 안으시면서 우시더라고요. 내가 엄마야 내가 엄마야. .중국말로 말씀하셨어요...”

사라 씨는 엄마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는 주 씨와 딸이 너무 잘 지내는 것을 보며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이 실감났다고 말했습니다.

다만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딸의 고모가 늘 따라다녀 아쉬움이 컸다고 말했습니다.

딸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주 씨의 몸 상태는 더욱 나빠졌습니다.

주 씨의 소셜미디어 페이스북에는 중국 여행을 준비하는 기간에 게시한 것으로 보이는 딸 사진이 한 장 올라와 있습니다.

자신의 상황을 수많은 북한 주민과 탈북민이 겪고 있는 인권 문제로 봤던 주 씨는 평소 북한 문제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주 씨의 페이스북 게시물은 대부분 북한의 인권과 핵 문제를 다룬 VOA 기사들 입니다.

김 목사는 주 씨가 아픈 와중에도 북한의 인권을 알리는 활동에 매우 적극적이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김영구] “평양에서 아버지가 상당히 높은 지위에 있었는데, 무엇보다 김정일 정권을 너무 잘 알아요. 거기에 대해서 광분하셨고, LA에서 증언했을 때 한 200명이 모였는데, 가장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강연하고..어디든지 북한을 알리는 거라면 몸이 아픈데도 다니셨어요..”

인권 사각지대인 북한과 중국에서 직접 목격하고 경험한 피해자로서, 그리고 아들을 잃어버려도 찾을 수 없는 엄마로서 할 수 있는 만큼 증언대에 섰다는 겁니다.

“어떻게 온 미국인데 죽지 않는다’며 투병 중에도 희망을 잃지 않고 용감했던 주 씨의 모습을 떠올리는 사람들 중에는 워싱턴의 민간단체 ‘북한자유연합’의 수전 숄티 의장도 있습니다.

주 씨를 만났던 숄티 의장은 주 씨의 죽음을 큰 손실이라고 VOA에 말했습니다.

[녹취: 수전 숄티] “It's a huge loss, with the passing of May Joo, I can't emphasize enough how her bravery and courage in speaking out made us understand how much the women of North Korea's suffer. And we were able to be a given the opportunity to present her story before during the U. N. Commission…”

‘유엔여성지위원회’에서 주 씨가 증언할 기회를 마련했던 숄티 의장은 자신의 고통을 알린 주 씨의 용기가 사람들에게 북한 여성들의 고통을 이해하게 만들었다고 말했습니다.

숄티 의장은 주 씨가 “북한에서 여성의 가치는 파리보다 못하다”고 말했던 것을 잊을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미 연방정부 공무원으로 주 씨의 암 치료를 위해 주 정부에 청원을 넣는 등 탈북민들의 인권을 위해 일해온 사라 조 간사는 주 씨의 생전의 꿈을 이야기 했습니다.

[녹취:사라 조] “좋은 남편 만나서 평범한 가정집 하나.. 살림하고 집안을 가꾸고 꽃같은거 가꾸고, 아이 키우고, 그게 내 꿈입니다. 말씀하시더고요. 들으면서 너무 평범한..것인데. 꿈이라고 하시니까. 너무 속상했고. 북한에 있었던 남편도 그렇게 좋은 남편이 아니었고, 중국 남편도 좋은 남편도 아니었고.”

보통 사람에게는 너무나 평범한 일상이 주 씨에게는 이뤄보지 못한 꿈이었다는 겁니다.

주 씨의 페이스북에는 “간절히 원하면 이뤄진다”는 글이 적혀있습니다.

VOA 뉴스 장양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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