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기독교 민간단체 '두리하나선교회'의 천기원 목사(가운데)와 탈북자 자녀들이 미 동북부 뉴욕에 있는 한인 교회를 방문했다. 사진출처=두리하나선교회 웹사이트.
한국의 기독교 민간단체 '두리하나선교회'의 천기원 목사(가운데)와 탈북자 자녀들이 미 동북부 뉴욕에 있는 한인 교회를 방문했다. 사진출처=두리하나선교회 웹사이트.

14년 전 미국에 난민 지위를 받아 처음으로 입국한 탈북 난민 데보라 씨가 최근 신종 코로나 여파로 어려운 탈북 지원단체에 1만 달러를 기부해 훈훈한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데보라 씨는 과거 절망과 위험에 처했을 때 받았던 사랑에 화답하고 탈북민들에 대한 편견도 깨고 싶었다고 말했습니다. 김영권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20년 넘게 탈북민 구출과 지원 활동을 펴고 있는 한국 두리하나선교회의 천기원 목사는 최근 자신의 인터넷 사회관계망 서비스에 행복하다는 글을 올렸습니다.

14년 전 이 단체의 지원으로 난민 지위를 받아 미국에 처음 정착한 탈북민 6명 중 한 명인 데보라 씨가 탈북민들을 위해 사용해 달라며 1만 달러를 보내왔기 때문입니다. 

[녹취: 천기원 목사] “후원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 했고 그런 것을 바란 일도 없었는데, 먼저 그렇게 1만 불을 보내고 싶다고 해서, 액수보다 그 마음이 아름답고, 자기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을 구출하는 데 보탬이 됐으면 좋겠다고 해서 정말 감동이 됐지요. 정말 기특하고 자랑스럽습니다. 이렇게 어려울 때 그런 마음을 가져주니 더 기쁘죠.”

지난 20년간 수천 명의 탈북민 구출에 기여한 천 목사는 25일 VOA에, 탈북민들이 잘 정착해서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는 게 가장 큰 보람이라며, 힘든 시기에 이런 뜻밖의 선물을 받게 돼 큰 위로를 받았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천기원 목사] “요즘 코로나 때문에 미국이나 한국이나 기업도 개인도 다 삶이 어렵잖아요. 우리 두리하나도 코로나 때문에 봉사자도 전혀 올 수 없고, 기업이나 아는 분들도 다 어려우니까 후원금도 줄어들고 많이 힘들었는데, 그래서 데보라도 당연히 어려울 줄 알았는데, 아무래도 본인도 그런 탈북 환경에서 있었고, 누가 보란 듯이 자랑하려고 하지도 않고 제게 조용히 헌금하고 싶다고 해서 정말 기특하고 빛이 나는 것 같아요.”

실제로 한국 내 대부분의 탈북민 지원 단체들은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여파로 많은 재정적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단체 관계자들은 북한과 중국, 동남아 국가들이 국내와 국경 경계를 대폭 강화하면서 탈북민들의 이동이 힘들고, 한국 정부가 남북협력에 주력하면서 북한 인권과 탈북민에 대한 관심은 크게 떨어져 후원을 받기조차 힘들어졌다고 말합니다.

게다가 최근 북한군이 한국인을 사살해 불태운 소식 등 북한에 대한 부정적 뉴스가 불거지면, 북한 출신 탈북민들을 바라보는 한국인들의 시선도 싸늘해져 탈북민들이 힘들어한다고 천 목사는 말했습니다.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 탈북민 데보라 씨의 선행은 탈북민들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바꾸는 데도 큰 도움이 된다는 겁니다. 

데보라 씨는 25일 VOA에, 소식이 알려지는 게 매우 부끄럽다며, “그저 받은 사랑을 다시 나누고 싶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데보라 씨] “저희가 하늘만큼 받은 사랑이 있는데, 거기에 비교는 안 되지만, 받은 것을 다시 나누고 싶은 마음이 있었어요. 특히 탈북자들이 오래전에 많은 사랑을 받고, 지역사회의 도움을 받아 정착을 했잖아요. 그래서 잘 정착했으니 저희가 앞장서서 같은 탈북자들을 도와야 한다는 그런 마음이 생겨서 기꺼이 하게 됐습니다.”

미 동부의 한 도시에서 해산물 상점을 운영하는 데보라 씨는 신종 코로나 여파로 초기에 자신도 어려움을 겪었지만, 사업 전략을 바꾸면서 최근 많이 회복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갑작스런 어려움을 겪으면서 과거 탈북해 중국에서 어려움을 겪었던 시절이 더 떠올랐다며, 탈북민과 지원 단체에 조금이나마 힘이 되고 싶었다고 말했습니다.

미국 동부에 정착한 탈북민 데보라 씨가 운영하는 해산물 가게.

[녹취: 데보라 씨] “목사님에게도 이 어려운 시기에 다른 곳에서 후원하는 헌금보다 직접 자신이 구출한 우리 탈북자들이 성장해서 보내드린 돈은 아마 두 배 세 배 더 뿌듯해하실 거라 생각했어요. 그래서 목사님에게도 힘을 드리고 싶었어요.”

북한에서 전화 교환수를 하다 20대 초반에 탈북한 데보라 씨는 두리하나선교회의 도움으로 동남아를 거쳐 지난 2006년 5월, 북한인권법에 근거해 첫 난민 지위를 받아 미국에 입국했습니다.

데보라 씨는 당시 도착 직후 가진 VOA와의 인터뷰에서 기회의 나라 미국에서 열심히 일해 꿈을 펼치고 싶다고 말했었습니다.   

[데보라 씨] “우리가  정말 누가 말씀하신 것처럼 다른 별에서 다른 별로 온 느낌이잖아요. 우리가 엄청 뒤떨어져 있으니까 이걸 따라가자면 앞으로 힘든 일 많겠죠. 그래서 부담스러운 감도 좀.. 과연 따라갈 수 있을까, 그런 느낌도 좀 들고요.. 그런데 우리는 이때까지 많은 고생을 해봤으니까  우리에게는 인간의 어려움이 어려움이 아니거든요. 열심히 하면 되겠죠. 기회의 나라니까…”

데보라 씨는 이후 주경야독으로 고등학교 졸업자격 검정시험인 GED를 통과해 커뮤니티 대학에 진학했고, 식당 종업원, 손발톱을 손질하는 네일 미용사, 학원 행정보조원, 간호보조사 등 여러 일을 하며 성공에 대한 꿈을 키웠습니다.

그리고 미국에서 만난 한인 2세와 결혼해 두 자녀를 낳고 사업도 확장했으며, 미국에 정착한 후배 탈북민들에게도 여러 도움과 조언을 주어 귀감이 되고 있다고, 주위 관계자들은 말합니다.

과거 VOA의 탈북민 특집 방송에 출연했던 데보라 씨는 이렇게 열심히 노력하는 이유에 대해 “북한 사람들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 싶었다”고 말했습니다. 

[데보라 씨] “북한 사람들도 북한이란 나라에서 태어나서 못한 거지 똑똑하고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구나. 그런 것을 보여주고 싶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제가 열심히 공부해서 여기 사람들보다 더 잘 못해도 열심히 해서 인정받고 아 북한 사람들 다른 사람이 아니구나. 우리처럼 똑똑한 사람이구나 그런 것 보여주고 싶어요.”

아직 북한에 가족이 있는 데보라 씨는 북한 지도자가 고모부 장성택을 처형해 머리를 시신에 올려 간부들에게 전시하고, 북한군이 한국인을 사살해 불태웠다는 소식을 들으면 “변하지 않는 북한에 회의감도 많이 든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결국에는 북한의 문이 열릴 것이란 믿음이 있다며, 그때를 착실하게 준비해 북한의 발전에 기여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데보라 씨] “저는 믿음이 있거든요. 하나님이 북한에 변화를 주시고 열어주실 것이란 믿음이 있으니까 그동안에 저희가 여기서 잘 준비해서 북한이 열리는 날에 저희가 들어가서 거기서 쓰임 받는 역군으로 살 수 있도록 여기서 해이해지지 않고 긴장감을 갖고 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VOA 뉴스 김영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