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안성의 북한이탈청소년 학교인 한겨레중고등학교에서 한 학생이 컴퓨터 수업을 받고 있다.
한국 안성의 북한이탈청소년 학교인 한겨레중고등학교에서 한 학생이 컴퓨터 수업을 받고 있다.

한국에 정착한 탈북 청소년들의 우울증 수치가 높으며 감정을 억제할수록 우울증이 증가했다는 연구 결과가 최근 국제 저널에 실렸습니다. 탈북 과정에 겪은 심리적 압박과 한국 내 소외감 등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추정되는 가운데, 좀 더 세밀한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김영권 기자가 보도합니다.

탈북 청소년들의 우울증 현상 등을 분석한 논문이 최근 국제환경 연구 공중보건 저널(IJERPH)에 실렸습니다. 

‘탈북 청소년들의 정신건강 변화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 3년간의 조사’란 제목의 이 논문은 한국 국립정신건강센터 연구진이 작성한 것으로 우울증 현상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한국에 정착한 13~23세의 탈북 청소년과 청년 64명을 지난 3년 동안 면담하며 조사한 결과 우울증 비율이 45.3%에서 3년 뒤 59.4%로 상당히 증가했다는 겁니다.

우울증은 기분을 조절하는 기능에 이상이 생겨 오랜 기간 우울한 기분이 지속되는 상태로, 수면과 식사, 신체, 생각과 행동 등 일상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며, 방치하면 자살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합니다. 

이 논문은 탈북 청소년들 사이에서 감정 표현을 억제하고 회복 탄력성이나 삶의 만족도가 낮을수록 우울증이 증가하는 경향을 보였다고 분석했습니다.

논문 공동 저자인 한국 국립정신건강센터의 박수빈 정신건강연구소장입니다.

[박수빈 소장] “감정 표현을 억제하는 경향이 있는 아이들, 그러니까 스트레스나 감정을 드러내서 말하거나 누구와 의논하거나 잘 해소하는 아이들이 아니라 감정을 그냥 억제하는 성향의 아이들, 삶에 대한 만족도나 회복 탄력성이 낮은 아이들이 더 우울해지는 성향이 있었다는 결과입니다.”

박 소장은 15일 VOA에, 조사 대상 중 절반 이상에서 우울증 수치가 나왔다는 것은 비교군이 없다고 하더라도 상당히 많은 규모라며 여러 원인을 추정해 볼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박수빈 소장] “탈북 과정에서 겪은 스트레스나 트라우마가 있을 수 있을 것 같고, 한국 사회에 적응하면서 소외감이라든지 문화 적응의 어려움, 지금 학교 다니는 학생들이니까 학업 면에서도 아무래도 어려운 부분이 있고요. 그런 부분들이 주 관련 요소가 될 것 같고요.”

박 소장 등 연구진이 통일부 통계를 인용해 논문에서 밝힌 한국 내 10세~29세 이하 탈북 청소년과 청년은 2020년 9월 현재 1만 3천여 명으로 전체 탈북민 3만 3천여 명의 40%에 달합니다.

특히 탈북 청소년의 62.8%는 탈북 여성이 중국 등 제3국에서 낳은 자녀로, 언어와 문화 적응에 대한 어려움이 우울증을 심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옵니다.

독일 콘스탄츠대·빌레펠트대 연구진도 지난 2019년 국제학술지 '분쟁과 건강'(Conflict and Health)을 통해 발표한 논문에서, 탈북 청소년이 남쪽 청소년보다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나 우울증 등 정신적 어려움을 더 겪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었습니다. 

연구진은 PTSD와 우울증 심각도를 측정하는 지표 검사에서 탈북 청소년들이 남쪽 청소년들보다 모두 높은 점수가 나왔다며, 가장 큰 요인은 사고·폭행을 당하고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목격하는 등의 '트라우마 사건'과 가정폭력이었다고 밝혔습니다. 

독일 연구진은 그러면서 "탈북민들에 대한 심리 치료와 예방적 접근이 맞춤형으로 세심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권고했습니다.

탈북자 지성호 씨가 지난 2018년 1월 백악관 브리핑룸에서 언론과 인터뷰하고 있다. 지 씨는 전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국정연설에 참석했다.

탈북민 출신인 한국의 지성호 국회의원은 지난주 이와 관련해 탈북민들의 심리 안정과 사회 적응을 지원하기 위한 법률 개정안을 발의했습니다.

지 의원은 2019년 현재 한국 내 전체 의료수급권자 중 정신과 이용자 비율은 4.6%인 반면, 탈북민 이용 비율은 24%로 6배에 달해 심각한 수준이라고 지적했습니다.

탈북 과정과 중국에서의 오랜 도피로 인한 정신적 스트레스, 이로 인한 정신적 공황장애, 불면증과 우울증을 겪은 일부 탈북민들이 전문기관의 심리안정 치료를 받고 호전되는 것을 볼 때 탈북민 트라우마 센터 설치가 절실하다는 겁니다.

지 의원은 특히 미성년 탈북민들이 심리 발달의 문제로 정신 건강 치료를 받는 건수가 해마다 늘고 있다며, 탈북민 정착 초기의 심리 안정 지원은 낯선 사회에 스스로 정착해야 하는 탈북민들에게 건강한 정착의 기초가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박수빈 소장은 국립정신건강센터와 통일부 산하 남북하나재단, 하나원이 지난해 11월 탈북민 정신건강 지원을 위한 업무 협약을 체결했다며, 예방과 세심한 지원 노력이 지속적으로 필요하다는 지적에 공감한다고 말했습니다. 

[박수빈 소장] “(지원이) 필요할 것 같아요. 굉장히 정신건강적으로 취약한 군이 맞고요. 청소년뿐 아니라 탈북민 자체가 취약한 군이 맞고요. 그분들에 대한 예방이나 치료, 프로그램 같은 것이 제도적으로 정비가 필요하겠죠.”

탈북청소년 대안학교인 두리하나국제학교의 천기원 목사는 VOA에, “제도적 지원뿐 아니라 이웃의 사랑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과거 우울증에 시달리고 자살을 시도했던 탈북 청소년들이 사랑을 받고 합창단 활동을 하면서 밝게 변하는 모습을 볼 때, 과거에 겪은 어려움이 치유되면 훨씬 큰 힘과 잠재력이 된다는 것을 깨닫는다는 겁니다. 

탈북 청소년들과 한국의 청소년들이 함께 하는 '코리아 청소년합창단'이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

이 학교 출신 춘미양입니다.

[녹취: 춘미 양] “엄마랑 13살 때 헤어졌어요...일단 처음에 한국에 왔을 때 언어가 많이 어려웠어요. 그리고 사람들 관계. 사람들과 얘기하면서 지내야 되는데 많이 어색하고 무슨 이야기 해야 되는지 모르겠고. 처음에 그것 때문에 친구도 안 사귀고 혼자 많이 지냈어요. 사랑을 잘 몰랐던 것 같아요. 그때는 사랑을 잘 못 느끼고. (지금은) 재밌어요. 같은 소원을 갖고 노래 부르는 거 되게 큰 희망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 학교 학생들은 최근 주위에 받은 사랑을 나누고 싶다며 뮤직비디오를 촬영해 유튜브에 올려 관심을 받았습니다.

[녹취: 학생들 뮤직비디오]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 나의 힘을 의지할 수 없으니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 것은…”

국립정신건강센터의 박수빈 소장은 이렇게 한국 사회에 잘 적응하는 청소년들도 많기 때문에 선입견을 가질 필요는 없다며, 우울증 극복을 위해 가급적 “자기가 느끼는 감정을 안전하고 편안하게 밖으로 드러내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VOA 뉴스 김영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