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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수해 보도 ‘은파군’에만 집중…“당국 대응 여력 없기 때문”


지난 1996년 8월 북한 은파군에서 폭우와 홍수에 무너져 떠내려온 건물 잔해가 농지를 덮었다.
지난 1996년 8월 북한 은파군에서 폭우와 홍수에 무너져 떠내려온 건물 잔해가 농지를 덮었다.

전례없이 긴 장마가 한반도를 덮치면서 북한에도 광범위한 홍수 피해가 난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북한 매체들은 관련 보도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방문한 황해북도 은파군에만 집중하고 있습니다. 수해 복구 여력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에서 ‘애민지도자’상을 부각시켜 민심을 달래기 위한 선전 방식이라는 분석입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 6일과 7일 이틀간 수해 현장인 황해북도 은파군 대청리를 찾아 국무위원장 전략예비분 물자를 나눠주라고 지시했다고 북한 관영매체들이 보도했습니다.

장마로 인한 홍수 피해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이틀간의 일정을 소화한 것도 이례적이었지만 김 위원장이 직접 흙투성이 스포츠 유틸리티차(SUV) 운전대를 잡고 현장을 돌아보는 사진이 북한 관영매체들을 통해 공개돼 눈길을 끌었습니다.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황해북도 은파군 대청리 일대 홍수 피해 상황을 현지에서 파악했다며 7일 사진을 공개했다.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황해북도 은파군 대청리 일대 홍수 피해 상황을 현지에서 파악했다며 7일 사진을 공개했다.

이후 이 지역에 대한 북한 매체들의 수해 관련 보도가 이어졌습니다.

‘조선중앙통신’은 박봉주 국무위원회 부위원장이 은파군 대청협동농장을 현지 요해하며 피해 복구 실태를 시찰했다고 12일 보도했습니다.

또 당 중앙위원회 부서들과 본부 가족세대들이 지원하는 필수 물자들을 실은 차들이 지난 10일 은파군에 도착했다고 전했습니다.

이어 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은파군 대청리 수재민들이 수해 지역을 방문해 구호물자를 푼 김 위원장에게 보내는 감사편지를 기고 형식으로 13일 실었습니다.

이들은 11일자로 작성된 편지에서 김 위원장이 대청땅을 두 번씩이나 찾아 특별배려를 돌려줬다며 농민된 도리를 다하는 것으로 보답하겠다고 충성을 다짐했습니다.

한국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조한범 선임연구위원은 북한의 장마 피해가 광범위하게 발생했지만 수해 실태나 복구 상황 등 관련 보도는 은파군에만 국한된 양상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조한범 선임연구위원] “피해는 북한 거의 전역에 발생했거든요. 근데 그래서 어디로 뭘 보내고 이런 게 전혀 없어요. 그냥 다 은파군만 당 중앙위원회 가족들이 뭘 보냈다 이런 얘기 말고 다른 얘기는 거의 안 나와요. 다른 쪽 강원도 쪽이 더 피해가 컸을 개연성이 있거든요, 강우량으로 보면. 근데 그쪽은 피해 상황이나 지원이나 이런 얘기들은 없어요. 그러니까 김정은 위원장의 애민행보로 상황을 무마시키려는 게 아니냐, 이런 추론이 가능한 거죠.”

앞서 여상기 한국 통일부 대변인은 10일 북한에서 최악의 홍수 피해가 발생한 2007년 8월과 올해 8월의 강우량을 수치로 비교하면서 올해가 더 심각한 수준이라고 밝혔습니다.

특히 강원도 평강군에서 지난 8월 1일부터 6일 사이 내린 비의 양이 약 854mm로. 북한 연평균 강우량 960mm에 거의 근접하는 수준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탈북민 출신인 조충희 굿파머스 연구소장은 은파군보다 더 생산량이 많은 평안남도 곡창지대 또한 홍수 피해가 심각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조충희 소장] “숙천, 평원, 문덕, 안주 이쪽 지역도 수로가 터져서 상당히 피해를 많이 봤고 그 다음에 증산, 대동, 온천 이쪽도 호우가 내리는 시기와 조수가 들어오는 시기가 겹쳐서 제방 터져서 짠물 피해를 많이 봤고 특히 증산, 온천 쪽이 많이 피해를 봤다는 것 같아요.”

통일연구원 홍민 북한연구실장은 북한의 수해 관련 보도가 은파군에 집중된 것은 당국 차원의 대응 여력이 턱없이 부족한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조충희 소장도 사실상 대부분 피해 지역은 당국 차원에서 방치될 수밖에 없는 게 북한의 현실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녹취: 조충희 소장] “사람만 나가가지고, 삽하고 곡괭이만 들고 나가서는 안되거든요. 하다못해 마대라도 있어서 거기에 흙을 담아서 날라야 되는데 마대도 제대로 없을 것이고 그 다음에 기본적으로 시멘트하고, 철근하고 목재하고 이런 게 나가야 되는데 종합병원 조그만 것 하나도 짓지 못해서 벌벌거리는 사람들이 그것을 하겠나요. 세월에 맡기는 수밖에 없을 거에요.”

홍민 실장은 곡창지대에 속한 은파군이 집중 부각되는 이유에 대해선 식량난을 방치하지 않겠다는 북한 당국의 의지를 보여주려는 때문이라고 분석했습니다.

홍 실장은 그러면서 모범사례를 앞세워 위기를 탈출하려는 전형적인 북한식 선전선동 방식이기도 하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홍민 실장] “특히 북한의 선전 방식이 ‘모범 창출’이잖아요. 그래서 어떻든 하나의 모델을 정해놓고 지도자가 방문해서 거기에 대해서 어떤 지시를 내리는 것을 하나의 샘플로 해서 전국적으로 따라하게 하는 선동 방식에 북한이 익숙하기 때문에 아무래도 그런 북한식 선전 방식에 따라서 움직이는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홍 실장은 북한 당국으로선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로 경제난이 심화된 상황에서 홍수 피해로 곡물 수확까지 망칠 경우 민심이 크게 흔들릴 것을 우려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서울에서 VOA뉴스 김환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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