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독립운동가 도산 안창호 씨의 장녀 수전 안 커디 여사가 지난 2003년 5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개관한 한국인 이민 역사 박물관을 방문했다.
한국의 독립운동가 도산 안창호 씨의 장녀 수전 안 커디 여사가 지난 2003년 5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개관한 한국인 이민 역사 박물관을 방문했다.

미국에서 5월은 ‘아시아 태평양계 미국인 문화유산의 달’입니다. 이를 맞아 미 국방부가 미 해군의 첫 아시아계 여성 장교이자 첫 여성 포병장교인 안수산을 집중 조명했습니다. 독립운동가인 아버지의 영향을 받은 안 여사가 아시아계 미국인 여성들이 나아갈 길을 닦는데 기여했다고 평가했습니다. 안소영 기자입니다.

미 국방부가 ‘아시아 태평양계 미국인 문화유산의 달’인 5월을 맞아 한국 독립운동의 선구자 도산 안창호 선생의 장녀인 안수산을 소개하는 글과 동영상을 웹사이트에 올렸습니다.

[녹취: 국방부 동영상]”During the World War 2, some 350,000 women served in the US armed forces with roughly 25%, serving the Navy. While all of these women

deserve to be remembered, Today, we are highlighting the remarkable story of Susan Ahn Cuddy, who was the first American female Asian officer in the U.S Navy and the first female gunnery officer.”

2차 세계전쟁 중에 약 35만 명의 여성이 미군에 복무했고 이 가운데 25% 정도가 해군에 복무했다는 겁니다.

이어 당연히 이 모든 여군들을 기억해야 하지만 특히 이번엔 미 해군의 첫 번째 아시아계 여성 장교이자 첫 미 여성 포병장교인 수잔 안 커디의 주목할 만한 이야기를 집중 조명한다고 설명했습니다.

국방부는 미국은 인종간 불화의 역사를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항상 다양성과 개성으로 그런 장벽을 무너뜨려 왔다며, 이런 측면에서 차별과 불평등을 극복하고 역경을 이겨낸 아시아계 미군 여성 개척자를 조명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판단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이야기는 안수산의 아버지 도산 안창호 선생으로부터 시작된다고 소개했습니다.

[녹취: 국방부 웹사이트 동영상]”Cuddy was born on Jan. 16, 1915, in Los Angeles. She was the oldest of five born to Dosan Ahn Chang Ho and Helen Ahn, the first married Korean couple to immigrate to the US in 1902.”

1915년 미 서부 로스앤젤레스에서 태어난 안수산은 1902년 미국에 이민온 첫 한국인 부부 사이에서 태어난 5남매 중 장녀로, 당시 한국은 일본의 강제적 영향력에 직면했고 1910년에는 일본에 합병돼 많은 독립 운동가들이 미국으로 피신했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그 중 한 명이었던 안수산의 아버지 도산은 존경 받는 지도자였으며, 자신의 집을 다른 이민자들을 위한 지원센터로 만들기까지 했다고 소개했습니다.

한국의 독립을 위해 분주히 움직인 도산을 가족들이 마지막으로 본 것은 1926년으로, 반일운동으로 한국에서 체포된 도산은 결국 1938년 3월 투옥 중 숨졌다고 덧붙였습니다.

국방부는 안수산과 그의 형제들이 이 같은 아버지의 정신적 유산을 물려 받았다면서, 지난 2015년 안 여사의 ‘LA 타임스’ 와의 인터뷰 내용을 전했습니다.

아버지 도산은 자신에게 ‘숙녀’(Lady)가 돼야 한다고 강요하지 않음으로써 자신의 인생 방향을 정하는데 큰 도움이 됐다는 내용입니다.

안수산은 아버지의 철학을 늘 실행에 옮겼고, 2차 세계전쟁에서 이 같은 아버지의 정신적 유산은 더욱 빛을 발했다고 국방부는 평가했습니다.

일본의 진주만 공격으로 미국 내 반일 감정이 급증하던 가운데 안수산은 항상 한국의 유산을 잊지 말고 좋은 미국인이 되라던 아버지의 뜻을 기리고 아버지를 감옥에 가둔 일본과 싸우고 싶어 1942년 초, 당시 아시아계 여성으로서는 하기 어려운 해군 입대 결정을 내렸다는 겁니다.

하지만 안수산은 아시아계 여성이라는 이유로 탈락의 고배를 마셔야 했다고 전했습니다.

하지만 좌절하지 않았고, 재도전 끝에 27살이던 1942년 겨울, 마침내 최초의 아시아계 여성 해군이 됐다고 국방부는 소개했습니다.

특히 해군 합류 후 능력을 인정 받아 장교가 되면서 미 해군 첫 아시아계 여성 장교가 됐고, 1943년에는 포병 훈련 교관으로 활동하며 미 여성 첫 포병장교가 되기도 했다고 국방부는 소개했습니다.

또한 한국어 구사 능력을 바탕으로 해군 정보국에서 비밀 정보분석요원으로도 근무하는 동안 아시아계라는 이유로 동료들로부터 의심을 받기도 했지만, 결국 그 곳에서도 가치와 능력을 인정받았다고 국방부는 덧붙였습니다.

1946년 전역한 안수산은 해군 정보기관에서 함께 근무한 암호해독가 프란시스 커디 씨와 결혼했지만, 당시 타인종간 결혼을 불법화한 버지니아 주 법 때문에 워싱턴 D.C.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결국 캘리포니아로 이주했습니다.

안수산은 ‘LA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결혼을 반대한 어머니와 5년 동안 연락을 할 수 없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1947년부터는 국가안보국(NSA)에서 300여 명의 러시아 전문가를 지휘하는 부서장으로 일하며 여러 프로젝트를 비밀리에 수행했고, 냉전 중 싱크탱크를 운영하기도 했습니다.

1959년 가족이 있는 로스앤젤레스로 이주한 후에는 가족의 식당 운영을 도우면서도 증가하는 한국인 이민자 사회를 지원하며 한국의 역사와 뿌리를 보존하기 위한 활동을 활발히 벌였다고 국방부는 전했습니다.

국방부는 지난 2015년 6월 24일, 100세를 일기로 자택에서 생을 마감한 안수산은 세상을 떠나기 마지막 몇 주 전까지도 달력에 일정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고 소개했습니다.

그러면서 안수산의 선구자적인 정신과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태도는 군대 내에서 여성들과 아시아계 미국인의 문을 열어 주는데 이바지 했다고 평가하면서, 5월 ‘아시아 태평양계 미국인 문화 유산의 달’을 맞아 안 여사와 그의 모든 노고에 경의를 표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안수산은 2003년 캘리포니아 주 의회가 선정하는 ‘올해의 여성상’을 받았고, 2006년에는 워싱턴 D.C의 아시안 아메리칸 저스티스 센터로부터 ‘미국인 용기상’을 받았습니다.

한편 캐슬린 힉스 미 국방부 부장관은 3일 자신의 트위터에 ‘아시아 태평양계 미국인 문화 유산의 달의 중심에 장벽을 허문 선구적인 여성들이 있었다며, 안수산이 바로 그런 여성들 중 한 명이라고 평가하는 글을 올렸습니다.

VOA 뉴스 안소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