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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민 글로리아 김 씨가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다. (제공:글로리아 김)

12월 18일은 이주 노동자들의 권리를 보호하는 ‘세계 이주민의 날’입니다. 미국에도 400여 명으로 추산되는 탈북민들이 거주하면서 ‘아메리칸 드림’을 일구고 있는데요, VOA는 두 차례에 걸쳐 꿈을 이룬 탈북민 장년들과 꿈을 향해 나아가는 탈북 청년들의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오늘은 첫번째 순서로 경제학자 갈렙 조씨와 원예사업가 글로리아 김 씨의 사연입니다. 조은정 기자가 보도합니다. 

미국 노동부 산하 통계청에서 경제학자로 물가지수와 고용률을 연구하는 30대 중반의 갈렙 조 씨는 요즘 일과 학업을 병행하느라 여념이 없습니다. 이번 가을학기부터 버지니아의 조지 메이슨 대학에서 경제학 박사 과정을 시작했고 지금은 기말 고사를 치르는 중입니다. 

[녹취: 갈렙 조] “현재로서는 전혀 불가능하지만 기회가 돼서 북한의 경제 개혁이나 경제 재건을 할 때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면, 그런 일에 동참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고요. 그것이 제가 미국에서 사는 탈북 난민 1세로서 정체성을 갖고 고민하면서 찾은 비전이거든요.”

그는 2011년에 미국에 난민 자격으로 입국한 뒤 켄터키 주 루이빌에 처음 정착해 지역대학인 커뮤니티칼리지에서 영어 공부부터 시작했습니다. 이후 버지니아로 이주했고, 명문 조지 워싱턴 대학 경영학과로 편입했습니다. 

[녹취: 갈렙 조] “저는 사실 미국에 들어오고 처음에는 막연하게 돈을 많이 벌겠다. 정의되지 못한 아메리칸 드림이라고 볼 수 있었는데… 조지 워싱턴 대학으로 전학하게 됐어요. 그때부터 심각하게 정체성 고민을 많이 하게 되더라고요. 무슨 일을 하는 것이 가장 의미가 있을까 생각하다가, 비즈니스 보다는 앞으로 북한의 장래와 경제발전과 관련된 일을 해보고 싶어서 전공을 비즈니스에서 경제로 바꿨거든요.”

조 씨는 터프츠 대학에서 경제학 석사를 이수하고 세계은행에서 컨설턴트로도 활동했습니다. 미국 정부에서 경제학자로 활동하기 전에는 수 년간 다양한 일을 하며 학업을 이어갔습니다. 

[녹취: 갈렙 조] “저는 일을 계속했고, 정규직을 찾기 전까지는 끊임없이 했어요. 한 일이 정말 많아요. 빌딩에서 청소도 하고, 머리가게에서 가발도 팔고, 그리고 UPS 스토어에서 박스 포장도 하고, 고객 서비스도 하면서 한 3년 정도 그렇게 일했고요 조지 워싱턴대 다니면서 또 석사 과정 하면서 피자 딜리버리도 하고…”

일과 학업을 병행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언젠가 북한 경제에 이바지하겠다는 비전이었습니다. 

[녹취: 갈렙 조] “밖에 나와 있는 저로서는 사람이 일생 살아가면서 많은 것들을 해볼 수 있고 누릴 수 있는데, 북한 사람들은 못 누리는 구나. 또 나이가 들어서 돌아가시는 분들도 계시고. 빨리 북한에 어떤 변화가 와서 북한도 세계 경제의 한 성원으로서 보조를 맞춰 나가며 살다 보면 많은 국민들이 이런 권리를 향유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그게 안타깝고 답답하고.”

경제학 박사라는 새로운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갈렙 조 씨는 초심을 잃지 않겠다는 다짐을 밝혔습니다. 

100달러로 시작한 원예사업…이제는 꽃 도매업 사장

2007년 난민 지위를 받아 미국에 정착한 글로리아 김 씨는 현재 시카고에서 꽃 도매업을 하고 있습니다. 

시카고 탈북민 글로리아 김 씨가 다양한 꽃을 판매하고 있다. (제공:글로리아 김)

7년 전 미화 100달러로 장미 백송이를 사서 사업을 시작했지만, 이제는 에콰도르, 콜롬비아, 태국 등지의 농장에서 꽃을 직접 수입하고 있습니다. 

[녹취: 글로리아 김] “처음에 시작할 때, 도매상에 가서 장미 한 송이 1불이잖아요. 1불에 사다가 2불에 파는 거에요. 처음에 그게 100송이 장미가 지금은 이렇게 크게 불어난 거죠.”

김 씨는 시카고에 정착해 영어 공부를 하며 쓰레기 봉투 공장, 고기 가공 공장, 사무직 등 다양한 일을 경험했습니다. 어느 정도 생활에 안정을 찾았을 때 소규모 자본으로 시작할 수 있는 원예사업을 접하게 됐습니다.  

[녹취: 글로리아 김] “사업을 시작할 때 제일 힘들었던 건 정보가 너무 없는 거에요. 예를 들어 꽃을 가져와야 되는데, 어디서 어떻게 더 좋은 것으로 더 싸게 가져올지. 이송 회사들을 어떻게 찾아야 할지. 꽃 종류는 많은데 꽃에 대한 지식도 공부해야 하는 거에요. 정말 암담하죠.”

김 씨는 무조건 발로 뛰었고, 미국 사람들이 운영하는 꽃 도매업체들을 계속 찾아가서 한참 서서 보면서 천천히 사업을 익혀 나갔다고 설명했습니다. 김 씨는 앞으로 더 크게 이루고 싶은 꿈이 있습니다. 

[녹취: 글로리아 김] “꼭 해보고 싶은 거는 아직까지 미국 시장에 꽃 소매 프랜차이즈가 없어요. 저 같은 경우에는 도매도 해보고, 그 사이에 돈을 많이 버는 것 보다는 많이 배웠어요. 유통하는 사이에 소비자까지 가는 시간이 단축되고 거품도 뺏으면 좋겠다는 걸 보게 된 거죠. 소비자들이 원하는 가격에 저만의 품질을 해보고 싶은 거죠.”

시카고 탈북민 글로리아 김 씨가 꽃 도매업체를 운영하고 있다. (제공:글로리아 김)

김 씨가 성공으로 쉼 없이 달려갈 수 있었던 원동력은 북한에 두고 온 동포들이었습니다. 

[녹취: 글로리아 김] “제가 북한을 떠났을 때, 저희 부모님도 그렇고 많은 사람들이 죽었어요. 300만 명이라 하는데. 그런데 저는 살았어요. 내가 산 이유에 대해서 계속 질문이 많았어요. 그 많은 사람들이 죽었는데 나는 왜 살았을까. 내가 어떤 자리에 있던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아가는 게 내 몫이라고 생각했어요.”

글로리아 김 씨와 갈렙 조 씨는 모두 미국이 치열한 경쟁 사회라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목표를 가지고 흔들리지 않으며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강조하는 이들의 ‘아메리칸 드림’은 아직도 진행 중입니다. 

[녹취: 글로리아 김] “우리는 바닥부터 시작하는 건데, 어차피 시작하는 인생이니까 지나온 건 묻어버리고 앞을 보며 열심히 사는 것 밖에 없어요. 힘들던, 어렵던, 아프던, 누군가가 그립던 그건 훗 문제에요. 중요하지 않죠 현재 상황에서. 현실을 직시하고 최선을 다해 앞을 내다보며 열심히 사는 것 밖에 없어요.”

VOA 뉴스 조은정입니다

‘세계 이주민의 날’을 맞아 탈북민들의 ‘아메리칸 드림’을 전해드리는 기획, 내일은 두 번째 순서로 미국 내 탈북 청년들의 꿈을 향한 도전을 소개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