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서울의 외교부 건물.
한국 서울의 외교부 건물.

미국과 한국 두 나라가 남북관계 관련 사안들을 조율하기 위해 만들었던 미-한 워킹그룹이 출범 2년여 만에 폐지됩니다. 북한은 미-한 워킹그룹을 대미 굴종의 사례로 비난해왔지만 이번 폐지가 북한을 대화로 끌어내는 데에는 제한적 역할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옵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한국 외교부는 “21일 미-한 북 핵 수석대표 협의 때 기존 미-한 워킹그룹의 운영 현황을 점검하고, 이를 종료하는 방향으로 검토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습니다.

최종건 외교부 제1 차관은 22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 출석해 “미-한 워킹그룹이 미-한 간 대북정책 전반에 대한 의견 조율을 하는 중요한 플랫폼이었지만 남북관계 개선에 장애물이 된다는 비판이 분명히 있었던 것도 사실”이라며 이같이 말했습니다.

[녹취: 최종건 1차관] “우리에게 중요한 편의를 제공하기도 했지만 또 한편으론 그것이 불편했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기존 한-미 워킹그룹을 종료하기로 양측이 공감하고 동의하여 이렇게 공개하게 된 것이고요.”

미-한 워킹그룹은 2018년 11월 비핵화와 남북 협력, 대북 제재 문제 등을 수시로 조율하기 위한 협의체로 출범했습니다.

남북이 그 해 세 차례의 정상회담을 바탕으로 각종 협력사업에 속도를 내려고 하면서 일각에서 불거진 미국과의 ‘엇박자’ 우려를 잠재우기 위한 조치였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작동되는 과정에서는 남북 간 교류협력을 가로막는 장애물로 작용했다는 비판이 한국 여권 내 일각과 일부 시민단체들 사이에서 지속적으로 제기됐습니다.

일례로 한국 정부가 독감치료제 타미플루의 대북 지원에 남북한이 합의했지만 워킹그룹에서 이를 운반할 트럭의 제재 위반 여부를 따지다 시간을 끌면서 결국 지원이 무산된 사례가 있습니다.

미-한 양측이 워킹그룹 폐지에 합의한 배경에는 이런 문제 의식이 작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한국 외교부에선 워킹그룹 덕분에 미국과 제재 면제에 대해 보다 효율적으로 논의할 수 있었다는 순기능도 강조해 왔습니다.

미국은 제재를 국무부, 재무부, 상무부, 의회 등에서 다루고 있는데 한국 정부가 이들과 개별 협의를 할 경우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최 1차관은 “워킹그룹이 사라졌지만 양국간 대북정책 관련된 포괄적인 조율은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최 1차관은 워킹그룹의 대안으로 한국 외교부 국장급인 한반도교섭본부 평화기획단장과 북핵기획단장 그리고 카운터파트인 미국 측의 국무부 부차관보급인 대북정책특별부대표 간의 정책대화를 제시했습니다.

최 1차관은 “워킹그룹이라고 하면 제재처럼만 느껴졌기 때문에 이것을 넓혀서 포괄적으로 하자는 것”이라며 “여러 가지 실무정책 등을 제재와 관여를 다 포함해서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북한은 그동안 미-한 워킹그룹을 친미사대의 대표적 사례로 지목하며 비난했습니다.

같은 민족인 남북한 간의 문제에 자꾸 외세를 끌어들인다는 논리였습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은 지난해 6월 남북연락사무소 폭파를 감행한 직후 워킹그룹을 ‘친미 사대의 올가미’로 표현하며 남북관계 파탄 배경의 하나로 지목했습니다.

이처럼 남북교류의 걸림돌로 인식됐던 워킹그룹의 폐지는 교착 상태에 빠진 미-북 대화 재개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옵니다.

한국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조한범 박사는 북한이 지속적으로 불만을 제기했고 폐지를 원했기 때문에 미-한 양측의 이번 합의는 북한에 대화 의지를 보이는 가시적 조치로서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하지만 워킹그룹 폐지가 북한에게 주는 실질적인 의미는 그리 크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옵니다.

그간 남북교류가 이뤄지지 못한 것은 워킹그룹이라는 채널의 문제라기보다는 미국의 엄격한 대북 제재 입장 때문이라는 설명입니다.

김형석 전 한국 통일부 차관입니다.

[녹취: 김형석 전 차관] “북한을 대화트랙으로 유도하기 위한 명분 차원에선 의미가 있지만 지금 북한이 명분 보다는 실질적인 이익이 될 수 있는 그런 조치를 희망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차원에서 본다면 북한을 대화 트랙으로 끌어들이는 데는 한계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한편 성 김 미 국무부 대북특별대표와 함께 방한 중인 정박 대북정책특별부대표는 22일 오전 임갑수 한국 외교부 평화외교기획단장과 만나 워킹그룹 폐지에 따라 앞으로 두 나라가 남북협력사업 등을 어떻게 조율할지 논의했습니다.

양측은 이 자리에서 워킹그룹을 대체하는 국장급 협의체를 꾸려 정례화하는 방향으로 의견을 모은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서울에서 VOA뉴스 김환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