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독립운동가 도산 안창호 씨의 장녀 수전 안 커디 여사가 지난 2003년 5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개관한 한국인 이민 역사 박물관을 방문했다.
한국의 독립운동가 도산 안창호 씨의 장녀 수전 안 커디 여사가 지난 2003년 5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개관한 한국인 이민 역사 박물관을 방문했다.

미 국무부가 운영하는 공공외교 웹사이트 ‘쉐어 아메리카’가 한국의 독립운동가 도산 안창호 씨의 장녀 ‘수전 안 커디’ 여사를 ‘미국의 영웅’이자 ‘선구자’로 소개했습니다. 커디 여사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아시아계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미 해군에 입대해 포격술 장교를 지냈습니다. 조은정 기자가 보도합니다.

‘수전 안 커디, 아시아계 미국인 선구자’라는 제목의 글과 영상이 이달 초 ‘쉐어 아메리카’에 게재됐습니다.

‘쉐어 아메리카’는 국무부가 전 세계를 대상으로 미국의 외교 정책을 알리는 웹사이트로, 종교자유, 법치주의, 경제적 번영, 인간 존엄, 주권과 같이 미국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 웹사이트는 미국의 주목할 만한 여성들도 소개하고 있는데 여기에 커디 여사가 포함된 것입니다.

‘쉐어 아메리카’는 커디 여사가 미 해군에 입대한 첫 아시아계 여성, 해군 역사상 첫 여성 장교, 미군 최초의 여성 포격술 장교였다고 소개했습니다.

또 독립운동가 안창호와 헬렌 안(이혜련)의 장녀였다고 전했습니다. 안창호 선생은 구한말 미국, 한반도, 중국 상하이를 무대로 활발하게 독립운동을 했습니다.

한국 이름 안수산으로도 알려진 커디 여사는 1915년 로스앤젤레스에서 태어나 2차 세계대전 당시인 1942년 미 해군에 입대했습니다.

지난 2016년 커디 여사를 ‘이름없는 영웅’으로 선정한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지에 따르면, 처음 미 해군에 지원했을 때에는 아시아계라는 이유로 탈락했습니다.

하지만 다시 도전해 합격했고, 중위가 됐으며 포격술 장교가 됐습니다. 타임지는 커디 여사가 거듭 미군에 입대하려 한 이유를 아버지의 독립 운동의 영향에서 찾았습니다.

도산 안창호 선생의 집안은 계속해서 한반도 독립을 위해 노력했으며, 안창호 선생이 1937년 서울에서 일제 순사들에게 잡혀 고문 당하고 사망한 사건이 발생하자 커디 여사와 형제 자매들은 미국이 일본을 패망시키도록 돕기로 맹세했다는 것입니다.

1946년 해군을 제대한 뒤에는 국가안보국(NSA)에서 정보요원으로 활동하며, 러시아 정보를 수집하는 요원들 300명을 이끌었습니다.

‘쉐어 아메리카’는 커디 여사가 수 십년 간 국가에 봉사했으며, 은퇴한 뒤에는 재미 한인 사회를 위해 헌신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커디 여사를 선구자이자, 용감한 장교, 공동체 지도자, 한국계 미국인, 미국의 영웅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도 2018년 5월 ‘아시아 태평양계 미국인 문화유산의 달’을 맞아 발표한 포고문에서, 인도 출신의 여류 우주비행사 칼파나 촐라와 함께 수전 안 커디 여사의 삶을 비중있게 소개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커디 여사가 “한반도에서 최초로 미국으로 이민 온 부부의 딸로서, 가장 큰 시련에 직면했을 때에도 강한 직업 윤리와 애국심, 소명에 대한 확고한 헌신을 통해 나라에 기여했다”고 평가했습니다.

커디 여사는 2015년 6월 10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2006년에는 아시안 아메리칸 저스티스 센터가 커디 여사에게 ‘미국인 용기상’을 수여했고, 2015년에는 LA 카운티 정부는 3월 10일을 ‘수전 안 커디의 날’로 선포했습니다.

VOA 뉴스 조은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