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삼성그룹의 이건희 회장이 지난 2008년 4월 서울에서 기자회견을 했다.
한국 삼성그룹의 이건희 회장이 지난 2008년 4월 서울에서 기자회견을 했다.

미국 언론들은 지난 25일 별세한 한국의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관련 소식을 주요 뉴스로 다뤘습니다. 한국의 일개 가전기업에 불과했던 삼성을 세계적인 일류 기업으로 키운 장본인으로 평가했습니다. 김영교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지난 25일 숙환으로 별세한 한국의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과거 남북 경협을 시도한 적이 있습니다.

2000년 첫 남북정상회담 직후 삼성전자는 이건희 회장의 지시에 따라 북한에 165만 제곱미터 규모의 전자복합단지 조성을 계획했습니다.

10년간 5억 달러를 투자해 컬러TV와 전화기, 오디오 같은 전자제품 생산시설을 세울 계획이었지만, 남북관계 경색과 북한의 연이은 핵실험 등으로 전자복합단지는 결국 무산됐습니다.

미국 언론들은 이건희 회장의 별세 소식을 긴급 타전하고, 생애 업적을 조명했습니다.

‘워싱턴 포스트’ 신문은 삼성을 세계적인 기술 대기업으로 만든 이건희 회장이 78세를 일기로 숨졌다는 제목으로 기사를 내보냈습니다.

이 신문은 30년간 이어진 이건희 회장의 지도 하에 삼성전자는 작은 TV 제조회사에서 세계 최대 규모의 스마트폰과 디스플레이, 메모리 칩 회사가 됐다고 전했습니다.

신문은 이건희 회장이 1987년 아버지로부터 기업을 승계 받은 뒤 삼성이 싸구려 모조품 가전기구를 만든다는 평가를 떨쳐내기 위해 품질을 개선시키기 위한 동력을 일으키기 시작했다고 보도했습니다.

그러면서 이건희 회장이 “죽느냐 사느냐의 갈림길에 서 있다”면서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라”고 한 1993년 ‘신경영’ 선언과, 1995년 삼성 직원 2 천 명을 모아놓고 5천만 달러 규모의 휴대전화와 팩스 기기를 불태우며 ‘품질 우선’을 강조한 사건도 소개했습니다.

또 이건희 회장이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을 유치하기 위해 국제올림픽위원회 IOC를 설득하는 움직임에도 깊이 관여했다는 사실을 전했습니다.

‘뉴욕타임스’ 신문도 이건희 회장을 삼성을 글로벌 대기업으로 키운 장본인으로 소개했습니다.

신문은 이 회장이 1987년 부친인 이병철 씨가 별세한 후 삼성그룹의 총수 자리를 물려받았을 당시, 삼성은 서구에서 싸구려 TV와 저품질의 전자레인지를 파는 기업으로 알려져 있었다고 전했습니다.

이건희 회장은 그랬던 삼성을 세계적인 기술기업으로 키우기 위해 가차 없는 노력을 기울였다고 `뉴욕타임스’는 보도했습니다.

1990년대 초 삼성은 메모리 칩 분야에서 일본과 미국 경쟁사들을 능가하는 선두주자가 됐고, 또 2000년대 들어 휴대전화기가 중요한 통신 수단이 되면서 삼성전자는 중고가 휴대전화 시장을 장악했다는 겁니다.

‘뉴욕타임스’는 오늘날 삼성전자는 한국 경제의 주춧돌이라고 평가하면서, 전 세계에서 연구와 개발에 가장 많은 투자를 하는 기업 중 하나라고 전했습니다.

신문은 또 이건희 회장이 회사 내 전문직 경영인들의 수와 역할을  늘려 가긴 했지만, 이 회장 본인은 삼성그룹을 끌고 가는 ‘사상가’의 역할을 이어갔다고 말했습니다.

이건희 회장이 계속해서 삼성그룹의 큰 전략적 방향을 이끌어 왔다는 겁니다.

‘뉴욕타임스’는 이건희 회장이 아버지 이병철 씨를 닮아 먼 미래에 대한 계획을 세우는 것을 중요시 여겼다고 전했습니다.

삼성전자의 실적이 좋은 시기에도 끊임없는 위기감을 직원들에게 각인시켰다는 겁니다.

경제 전문지 ‘월스트리트저널’ 신문도 이건희 회장이 지난 30여 년 간 삼성을 세계적인 브랜드로 탈바꿈시켰다고 전했습니다.

이 신문은 이건희 회장이 2류 전자부품 제조사였던 삼성을 모든 기대치를 뛰어넘어 TV와 스마트폰, 메모리 칩 분야 전 세계 1위 기업으로 올려놓았다고 평가했습니다.

VOA뉴스 김영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