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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정면돌파’ 천명 불구 ‘신종 코로나’ 사태로 정치 셈법 복잡해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서부전선대연합부대의 포사격대항경기를 지도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지난 21일 보도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서부전선대연합부대의 포사격대항경기를 지도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지난 21일 보도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세계적 확산 속에서 미국이 방역 지원 의사를 밝힌 데 대해 북한은 분명한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한국의 전문가들은 북한이 미국의 대북 제재에 맞선 정면돌파 노선을 천명했지만 ‘신종 코로나’라는 새 변수가 등장하면서 정치적 셈법이 복잡해졌다고 보고 있습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북한을 대변하는 매체인 일본 내 조총련 기관지 ‘조선신보’는 지난 24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최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보낸 친서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과의 훌륭한 관계를 계속 유지해 보려고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습니다.

‘조선신보’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김 위원장과의 친분관계는 더 없이 귀중한 정치자산일 수 있다”며, 그러나 “김 위원장이 사적인 감정을 국사를 논하는 바탕으로 삼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이는 지난 22일 김 위원장의 여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이 담화에서 미-북 관계를 두 정상 간 개인적 친분에 따라 기대해서는 안 된다면서 ‘공정성’과 ‘균형’ 보장을 요구한 것과 같은 맥락으로 풀이됩니다.

북한은 이와 함께 트럼프 대통령이 친서를 통해 밝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방역 지원 의사에 대해선 이렇다 할 분명한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북한은 자국 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진자가 한 명도 없다면서도 엄청난 경제적 손실을 감수할 정도의 강력한 방역작업에 나서고 있다고 인정했습니다.

한국의 북한 전문가들은 북한이 지난해 말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미국의 제재에 맞선 정면돌파 노선을 천명한 가운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라는 새 변수를 만나 정치적 셈법이 복잡해졌다고 보고 있습니다.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북한이 정면돌파 노선을 채택했던 배경엔 오는 11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미국의 대북 협상 태도가 단기적으로 바뀔 가능성이 없다는 판단이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코로나바이러스라는 새 변수가 등장하면서 이를 계기로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시도할지 여부를 지켜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정치적 위기에 빠질 경우 미-북 관계도 지금의 교착 상태에서 유동적인 상황으로 변할 수 있다는 설명입니다.

동국대 북한학과 고유환 교수입니다.

[녹취: 고유환 교수]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국면에서 코로나 대응을 잘 못했다는 내부비판도 있고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모르는 상황 속에서 북한 변수는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고 친서를 보냈다고 봐야겠죠. 그런 과정에서 트럼프 요인에 의해서 뭔가 북-미 간 수요가 생길 수 있다는 거겠죠.”

고 교수는 북한이 자국 내 감염증 확진자가 없다고 밝힌 상황에서 당장 미국의 지원 의사에 호응할 가능성은 작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사태가 전 지구적인 위기 상황이기 때문에 미-북 간 대화가 비핵화 문제의 틀에서 벗어나 이뤄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박원곤 한동대 교수도 북한이 지난해 말 정면돌파 노선을 채택할 당시와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고 진단했습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로 북한의 경제적 내구성에 문제가 발생했고, 이 때문에 결국 외부 사회에 경제 지원 또는 방역 차원의 지원 요청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습니다.

김 위원장이 문재인 한국 대통령에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극복 노력을 위로하는 우호적인 친서를 보낸 것과 북한이 트럼프 대통령의 친서 내용을 공개한 행동도 미국이나 한국과의 최소한의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려는 의도라는 설명입니다.

박 교수는 다만 북한이 외부 지원을 요청하더라도 정면돌파 노선 포기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며, 오히려 대북 개별관광 같은 한국 측 제안을 수용하면서 미-한 동맹관계의 틈을 벌리고 대북 제재 분위기를 완화하는 기회로 활용할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녹취: 박원곤 교수] “정면돌파 노선 자체가 북한이 명확한 정의를 하기를 미국의 대북 제재 책동을 분쇄하겠다는 게 그들의 정의거든요. 오히려 인도적 구호나 방역 지원의 그 틈을 활용해서 대북 제재를 흩트려 놓겠다는 의도도 분명히 있다고 봅니다.”

한국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조한범 박사는 북한이 대북 제재가 유지되고 있는 가운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까지 겹쳐 한층 시간에 쫓기게 됐다고 분석했습니다.

조 박사는 북한이 트럼프 대통령의 친서에 대해 상황관리용일 뿐으로 판단하고 있다는 게 김 제1부부장의 담화나 `조선신보’ 기사에 담겨있다며, 그렇다고 조용히 있을 수만은 없는 게 북한의 딜레마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조한범 박사] “북한도 선을 넘자니 위험하고 가만히 있자니 트럼프 대통령이 쳐다보지 않고 그러니까 발사체 발사 같은 레드라인에 근접하는 행동으로 미국의 반응을 유도하는 거고요, 만약 여기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이 움직이지 않으면 수직적 핵고도화 즉, 핵실험이나 ICBM(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가 아닌 핵 물질 양을 늘리거나 동창리를 복구하거나 로켓 엔진을 개발하거나 이런 식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반응을 유도하는 전략으로 가겠죠.”

조 박사는 이 때문에 북한으로선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듯 수위를 조절한 도발을 지속하면서 존재감을 드러내려 할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서울에서 VOA뉴스 김환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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