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선엽 장군과 연합군 지휘관들이 1951년 7월 10일 휴전회담을 위해 개성으로 가기에 앞서 기념촬영을 했다. 왼쪽부터 알리 버크 해군 제독, L.C. 크레이기 공군 소장, 백 장군(당시 소장), C. 터너 조이 해군 중장, 매튜 B. 리지웨이 유엔군사령관, 핸리 I. 호디스 육군 소장.
백선엽 장군과 연합군 지휘관들이 1951년 7월 10일 휴전회담을 위해 개성으로 가기에 앞서 기념촬영을 했다. 왼쪽부터 알리 버크 해군 제독, L.C. 크레이기 공군 소장, 백 장군(당시 소장), C. 터너 조이 해군 중장, 매튜 B. 리지웨이 유엔군사령관, 핸리 I. 호디스 육군 소장.

지난주 100세를 일기로 타계한 백선엽 장군이 미-한 동맹의 충실한 친구였다고, 미 국방부 고위 관리가 말했습니다. 미국 민간단체들 사이에서는 백선엽 장군에 대한 추모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김카니 기자가 보도합니다.

데이비드 헬비 미 국방부 인도태평양 차관보 대행은 “백선엽 장군의 타계는 위대한 미한 양국군 장병들에게 큰 손실”이라고 밝혔습니다.

데이비드 헬비 미 국방부 인도·태평양안보차관보 대행.

헬비 차관보 대행은 15일 한미동맹재단에 전달된 영상메시지를 통해, “백선엽 장군은 동맹의 충실한 친구이자 대한민국에 헌신한 위대한 인물이었다”며 이같이 애도했습니다.

또 “백 장군의 특성은 그가 만들고자 노력했던 대한민국에 잘 반영되어 있다”며, “그것은 바로 용기와 회복성, 그리고 역경을 극복하는 불굴의 정신”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여러분과 함께 슬퍼하지만, 우리가 앞으로 같이 갈 것이라는 것을 알고 위로를 받는다”고 말했습니다.

민간단체인 미 외교협회(CFR)는 15일 자체 블로그에 올린 ‘백선엽 장군을 기억하며’라는 글을 통해, 한국전쟁 당시 다부동 전투 승리를 이끌었던 백 장군의 노력 등으로 오늘날의 자유민주주의 한국이 존재할 수 있었다고 소개했습니다.

▶ CFR 블로그 '백선엽 장군을 기억하며' 바로 가기

한국전쟁이 1950년 6월 25일 발발하고 3일 만에 서울이 함락되는 등 한국이 위기에 처했을 때 백선엽 장군이 이끌었던 한국 국군 1사단이 미 27연대의 지원을 받아 최후의 방어선이었던 낙동강 전선을 두 달 동안 방어할 수 있었다는 겁니다.

CFR은 다부통 전투의 승리가 없었더라면 이후 수도 서울을 되찾기 위한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이 불가능했을 것이고 한국은 전쟁에서 패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또 백 장군이 한국군의 첫 4성 장군이 됐으며, 전후에는 외교관으로서 미한 방위비분담금 초기 협상에도 깊이 관여했었다고 소개했습니다.

아울러 한국 역사가의 말을 인용해, 한국전쟁은 미국이 아시아에서 자유 사회를 수호하는데 성공한 유일한 냉전시대의 분쟁이었고, 이는 백 장군의 영웅적인 노력으로 가능했다고 밝혔습니다.

백선엽 장군에 대한 추모는 미국에서 지속됩니다. 주한미군 전우회는 타계한 백선엽 장군에 대한 화상 웨비나 헌화를 17일 실시합니다.

이 웨비나에는 마크 내퍼 국무부 부차관보, 월터 샤프 전 미한연합사 사령관, 캐슬린 스티븐스 전 주한 미국대사 등이 참여해 백선엽 장군에 조문을 하고 장군과 얽힌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눌 예정입니다.

VOA 뉴스 김카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