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15일 평양에서 열린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3차 전원회의에서 발언했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15일 평양에서 열린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3차 전원회의에서 발언했다.

한반도 주요 뉴스의 배경과 의미를 살펴보는 ‘쉬운 뉴스 흥미로운 소식: 뉴스 동서남북’ 입니다. 집권 10년 차에 접어든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최악의 위기 상황에 처했습니다. 국제적 고립이 계속되는데다 마지막 보루인 식량 사정마저 계속 악화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최원기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지난 15일 평양에서 열린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식량난을 공개적으로 언급했습니다. 북한 관영 `조선중앙방송'입니다.

[녹취: 중방] “지난해 태풍 피해로 알곡 생산이 계획에 미달돼 현재 인민들의 식량 형편이 긴장해지고 있습니다.”

김정은 위원장이 노동당 고위급 회의에서 식량난을 공식적으로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이는 그만큼 식량난이 심각하다는 뜻으로, 올해 북한이 김정은 정권 출범 이후 최악의 식량난을 겪을 수 있다고 한국의 북한농업 전문가인 권태진 GS&J 인스티튜트 동북아연구원장은 말했습니다.
[녹취: 권태진 박사] “올해 식량 상황은 제가 보기에는 김정은 정권 출범 이후 가장 나쁜 한 해가 될 거라고 보는데요. 일단은 작년 작황이 좋지 않았던 것이 핵심이고...”

북한의 한 해 식량 필요량은 대략 575만t이지만 지난해 곡물생산량은 전년에 비해 24만 t 감소한 440만 t에 그친 것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올해 식량 부족분은 135만t에 이를 전망이며, 이는 북한이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수준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입니다

식량난뿐 아니라 북한경제를 떠받치는 에너지, 물가, 외화, 장마당, 광공업, 공장과 기업소 상황도 날로 악화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유엔 안보리의 고강도 대북 제재는 2017년부터 시작됐지만 북한이 처음부터 경제난을 겪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처음 3년간은 제재에 잘 버티고 경제도 비교적 안정세를 보였습니다. 

무엇보다 북한은 제재가 시작될 당시 25-58억 달러 규모의 외환보유고를 갖고 있었습니다. 또 제재 이전인 2016년의 경우 북-중 무역고는 65억 달러에 달했습니다. 

이런 가운데 전국적으로 400여 개에 이르는 장마당과 시장에서는 주로 달러화와 위안화로 거래가 이뤄져 제재의 충격파에도 불구하고 그다지 큰 영향을 받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2020년 들어 경제 상황이 위기 국면으로 치닫기 시작했음을 각종 지표는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해 1월 중국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사태가 발생하자 김정은 위원장은 북-중 국경을 봉쇄했습니다. 

북한경제의 생명줄인 북-중 국경이 차단되자 우선적으로 장마당이 큰 타격을 입었습니다. 그동안 중국산 원부자재와 소비재는 트럭에 실려 평안남도 평성과 함경북도 청진의 도매시장으로 운반된 뒤 북한 전역의 400여 개 종합시장과 장마당으로 팔려 나갔습니다.

그런데 국경이 갑자기 차단되면서 밀가루와 식용유같은 생활필수품이 들어오지 않자 장마당 물가가 급등했습니다.

한국 국가정보원은 1kg 당 6천원 대였던 설탕 가격이 2만7천원으로 올랐고, 1만6천원이던 조미료는 7만5천원으로 4배 이상 급등했다고 밝혔습니다.

과거 유엔 안보리 산하 대북제재위원회 전문가패널 위원으로 활동했던 윌리엄 뉴콤 씨는 북한의 자체적인 국경 봉쇄가 안보리의 무력 봉쇄 조치에 버금가는 효과를 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뉴콤 전 위원] “Now what’s going on looks like a self-imposed blockade enforced by North Korea’s own armed forces.”

북-중 국경이 철저히 봉쇄되면서 북-중 무역도 급격히 줄어들었습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전년도에 25억 1천만 달러였던 북-중 무역 규모는 2020년에는 5억 3천만 달러로 무려 80.7%감소했습니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지난해 가을부터 중국으로부터의 수입이 큰 폭으로 줄어든 겁니다.

북한은 지난해 9월 중국에서 1천 900만 달러어치의 물품을 수입했습니다. 그러나 10월에는 26만 달러, 그리고 11월에는 14만 8천 달러로 뚝 떨어졌습니다.

미국의 북한경제 전문가인 윌리엄 브라운 조지타운대 교수는 북한의 외화가 고갈된 것같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윌리엄 브라운 교수]“They are not exporting anything, so probably, they don’t have cash…”

실제로 지난해 가을부터 외화난이 본격화 됐습니다. 과거 북한의 환율은 1달러에 8천원 선이었습니다. 

그러나 지난해 10월 6천500원으로 20% 가량 폭락한 데 이어 이달 초 또다시 16%나 하락했습니다.

미국의 북한경제 전문가인 그레이스 오 조지아주립대 교수는 북한 당국이 강력한 외환 통제에 나선 것같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그레이스 오 교수] ”There is some sort of artificial controlling of currency value, government...”

이런 가운데 일반 주민들은 코로나 방역을 이유로 당국이 장마당 장사를 제한하고 물가가 오르는 것에 불만을 표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또 20-30대 젊은 장마당 세대는 당국이 ‘비사회주의’, ‘반사회주의’를 없앤다며 남한의 `한류'와 청년들의 머리와 옷차림까지 단속하는 데도 불만인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함경북도 청진 출신으로 2019년 탈북해 한국에 거주하는 장혁 씨입니다. 

[녹취: 장혁 씨] “저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리더가 뭔가 바꾸길 원했거든요. 그런데 10년을 지켜보니 그대로인 거예요. 김정은이 뭔가 탈출구를 못 찾고 있어요. 그렇다고 미래지향적이지도 않아요.”

한국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조한범 박사는 계속되는 경제난으로 김정은 위원장의 정치적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조한범 박사] ”김정은 위원장이 집권한 2012년에 인민의 허리띠를 졸라매게 하지 않겠다고 공언을 했거든요, 그런데 다시 고난의 행군을 한다는 것은...일반 인민들로서는 김정은 위원장에게 환호를 보내기 어려운 상황이죠.”  

북한의 대외관계에서도 `진퇴양난'의 상황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미국 바이든 행정부는 4월 30일 대북정책 검토를 마치고 새로운 대북 접근법을 내놨습니다. 목표는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이며 이를 위해 ‘세심하게 조율된 실용적 접근’을 한다는 내용입니다.

전문가들은 단계적이고 실용적인 접근을 강조한 바이든 정부의 새 정책이 북한에 나쁘지 않다고 평가합니다. 다만, 북한이 줄곧 요구해온 적대시 정책 철회나 제재 해제같은 유인책은 포함하고 있지 않습니다. 

따라서 북한 입장에서는 미국과 대화에 나설지 아니면 대결을 선택해야 할지 어려운 상황입니다.

북한 수뇌부의 고민은 17일 평양에서 열린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그대로 드러났습니다. 김정은 위원장은 이 자리에서 “대화와 대결에 모두 준비돼 있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한국 통일연구원 홍민 박사는 이 발언이 미국과의 대화에 무게를 싣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홍민 박사] “특히 이제 하노이 정상회담 이후에 계속적으로 유지해왔던, 대북 적대시 정책이 철회돼야만 대화 테이블에 나오겠다는 전제조건을 발언하지 않았다는 것, 이게 일단은 상당히 대화 쪽에 무게를 싣고 있지 않느냐는 추측이 가능한 부분이라고 보여지고요.”

김정은 위원장은 또 “대결에는 더욱 빈틈없이 준비돼 있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북한이 먼저 판을 깨기가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만일 북한이 미사일 발사같은 도발을 할 경우 이 문제가 유엔 안보리에 회부되는 것은 물론 바이든 행정부와의 대화와 협상의 기회가 사라질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북한이 바라는 대북 제재 해제도 멀어질 수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집권 후 최악의 정치적, 경제적 위기 상황에 처한 김정은 위원장이 이 국면을 어떻게 헤쳐갈지 주목하고 있습니다.

VOA뉴스 최원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