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8년 2월 한국을 방문한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이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만나 악수하고 있다.
지난 2018년 2월 한국을 방문한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이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만나 악수하고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이 문재인 한국 대통령의 최근 북한 미사일 발사 관련 발언을 거칠게 비난하는 담화를 내놨습니다. 한국 정부는 담화의 표현에 깊은 유감을 표시하면서도 남북 대화를 위한 노력은 유지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은 30일 대외 관영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발표한 담화에서 북한의 최근 단거리 탄도미사일 발사에 대한 우려를 제기하고 미국과 남북한 모두의 대화 노력을 촉구한 문재인 대통령에 대해 “미국산 앵무새”라고 맹비난했습니다.

김 부부장은 선전선동부 부부장이라고 이례적으로 자신의 소속을 밝힌 이번 담화에서 지난 26일 ‘서해수호의 날’ 기념식에 참석한 문 대통령이 북한의 단거리 탄도미사일 시험발사에 대해 우려를 표한 데 대해 “뻔뻔스러움의 극치”라고 주장했습니다.

김 부부장은 “남녘땅에서 나오는 잡다한 소리들에 접할 때마다 아연해짐을 금할 수 없다”면서 “특히 ‘남조선 집권자’가 사람들 앞에서 마이크를 잡고 우리에 대해 뭐라고 할 때가 더욱 그렇다”고 불쾌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냈습니다.

김 부부장은 특히 문 대통령이 지난해 7월 국방과학연구소(ADD)에서 한 발언과 서해수호의 날 기념사를 비교하면서 “극명하게 모순된 연설”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같은 국방과학연구소에서 진행한 탄도미사일 발사 시험을 놓고 자기들이 한 것은 한반도 평화와 대화를 위한 것이고 북한이

한 것은 남녘 동포들의 우려를 자아내고 대화 분위기에 어려움을 주는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라니 그 철면피함에 경악을 금할 수 없다”고 쏘아붙였습니다. 그러면서, “이런 행태가 북한의 자위권을 유엔 결의 위반 또는 국제사회에 대한 위협이라며 걸고 드는 미국의 강도 같은 주장과 빼닮아 ‘미국산 앵무새’나 다름없다”고 비난했습니다. 김 부부장의 이번 담화는 문 대통령을 직접 겨냥한 데다 북한이 조 바이든 미 행정부의 탄도미사일 발사 대응에 전방위적으로 반발하는 가운데 나온 겁니다.

김 부부장은 앞서 지난 16일 미-한 연합훈련과 관련한 담화를 내 “3년 전의 봄날은 다시 돌아오기 어려울 것"이라며 남북 군사합의서 파기와 대남 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정리 등 남북관계 파국 가능성을 경고한 바 있습니다.

한국 정부는 이번 담화에 강한 유감을 표했습니다.

통일부 당국자는 “일부 표현이 대화와 협력의 상대방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이나 기본적인 예의를 벗어났다고 판단된다”며 “어떤 순간에도 서로를 향한 언행에 있어 최소한의 예법은 지켜져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 당국자는 그러나 “남북 대화의 흐름을 만들기 위한 노력은 일관되게 유지해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김형석 전 한국 통일부 차관은 백두혈통의 일원인 김 부부장의 담화는 사실상 김정은 위원장의 의중을 담은 것이라며 문 대통령에 대한 거친 표현은 북한 내부 사정의 어려움과 지도자의 다급함을 반영한 것으로 풀이했습니다.

[녹취: 김형석 전 차관] “김정은 위원장 시대 와서 하나의 특징인데, 너무 속도감 있게 하고 너무 직설적으로 하고 너무 자극적으로 해요. 이게 왜 이럴까 제가 보기엔 북한이 급해서 그런 게 아닌가 싶어요. 막다른 골목으로 몰리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한국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조한범 박사도 경제난이 가중되고 있지만 미-북, 남북 관계에서 원하는 돌파구가 마련되지 않는 데 대한 불안감이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미-한 연합훈련 이후 명분만 주어지면 곧바로 담화로 대응하는 양상이라고 분석했습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김 부부장의 담화에 바이든 행정부 대북정책 최종 검토 단계로서 이번 주 열리는 미-한-일 안보실장 회의에서 한국 정부가 북한의 입장을 대변하라는 압박이 들어있다고 말했습니다.

박 교수는 또 담화에서 자위권을 명분으로 한 추가 무력시위를 시사함으로써 사실상 미국에게도 태도 변화를 압박하는 메시지를 보낸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녹취: 박원곤 교수] “첫번째는 한국 정부를 압박해서 좀 더 적극적으로 바이든 정부의 대북정책이 북한에 호의적인 방향으로 가도록 하는 것이고요, 두번째는 이런 담화 공세를 통해서 미국에 직접적으로 압박을 가하는 것도 있는 거죠. 국방력 강화를 명분으로 계속 군사적 도발을 할 가능성을 열어놓음으로써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정책에 영향을 주겠다는 의도도 있어 보입니다.”

북한이 이번 담화를 통해 임기 말의 문재인 정부와 더는 관계 개선 의지가 없음을 보여줬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문 대통령을 겨냥한 김 부부장의 담화로 남북 정상간 친분을 바탕으로 관계 회복의 계기를 찾아보려던 문재인 정부의 구상도 한층 어려워질 전망입니다.

김 부부장은 지난해 6월에도 문 대통령을 맹비난하는 담화를 냈고 북한은 같은 달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하는 극단적인 조치를 취한 바 있습니다.

조한범 박사는 김 부부장이 지난 16일 담화에서 경고했던 남북 군사합의서 파기, 대남 대화·교류 관련 기구 정리 등을 행동으로 옮길 가능성이 커졌다고 진단했습니다.

조 박사는 북한의 대남 압박이 지속될 경우 한국 정부의 화해 정책도 한계에 이를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조 박사는 북한은 전술핵무기 개발을 공식화했고 이는 한국을 겨냥한 무기체계이기 때문에 북한의 이 같은 행태가 반복되면 한국 내 여론이 한층 나빠질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녹취: 박원곤 교수] “노동당 8차 대회에서 전술핵 개발을 지시했고 이번에 쏜 이스칸데르급 미사일 여기에도 핵탄두 탑재를 시도하고 있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핵 문제 패러다임이 한국을 대상으로 하는 것을 명백히 보여줬고요, 이 상황에서 김여정을 포함한 대남공세를 지속한다면 한국 정부도 끝까지 인내하긴 어렵습니다. 국내정치도 있기 때문에.”

한편 김 부부장은 이번 담화에서 당 선전선동부 부부장 직책을 맡고 있음을 처음 공개했습니다.

김 부부장은 당초 2019년 말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에서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으로 옮긴 것으로 알려졌지만 공식 확인된 건 아니었습니다.

서울에서 VOA뉴스 김환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