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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동서남북] 북한 '비사회주의와의 투쟁' 강화..."간부 층에도 '한류' 확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달 10일 평양에서 열린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달 10일 평양에서 열린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한반도 주요 뉴스의 배경과 의미를 살펴보는 ‘쉬운 뉴스 흥미로운 소식: 뉴스 동서남북’ 입니다. 북한 수뇌부가 자본주의와 한국의 음악과 드라마 등 ‘비사회주의와의 투쟁’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의 대중문화를 지칭하는 `한류'는 이제 북한의 일반 주민뿐 아니라 당 간부에까지 확산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최원기 기자가 전해 드립니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1월부터 연일 주재하는 회의에서 경제난 극복과 함께 강조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바로, 북한사회에서 ‘반사회주의와 비사회주의’ 풍조를 몰아내라는 것입니다.

지난 2월 8-11일 평양에서 열린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김 위원장이 강조한 내용입니다. 북한 관영 `조선중앙방송'입니다.

[녹취: 중방] ”총비서께서는 우리 혁명은 반사회주의 비사회주의와의 투쟁을 어느 때보다 요구하고 있다고 하시면서 우리의 사상과 일심단결을 저해하는 악성 종양을 단호하게 수술해버릴 혁명적 의지와 결심을 천명하시었습니다.”

특히 김정은 위원장은 “반사회주의, 비사회주의적 행위를 비호, 조장하는 대상을 일꾼(간부) 대열에서 단호히 제거할 것"이라며 중앙부터 도, 시, 군에 이르는 연합지휘부를 조직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전문가들은 북한 수뇌부의 이런 ‘비사회주의와의 투쟁’과 관련해 몇 가지를 추정해 볼 수 있다고 말합니다.

하나는 북한이 말하는 ‘비사회주의 행태’가 상당히 커지고 정치 문제가 됐다는 겁니다.

북한은 과거에도 자본주의 행태나 남한의 노래나 드라마를 보는 행위, 그리고 부정부패를 ‘비사회주의’로 간주해 처벌하곤 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 김정은 위원장이 직접 나서서 ‘비사회주의와의 투쟁’을 강조하는 것은 이것이 정치적 문제가 됐으며, 자력갱생 흐름과도 관계가 있는 것같다고 미 해군분석센터 켄 고스 국장은 말했습니다.

[녹취: 켄 고스 국장] ”Level and intensity tied in self-sufficiency…..”

또 다른 것은 일반 주민뿐 아니라 간부들 사이에서도 비사회주의 행태가 확산되고 있다는 겁니다.

김 위원장은 당 전원회의에서 “반사회주의, 비사회주의적 행위를 비호, 조장시키는 대상을 일꾼(간부) 대열에서 단호히 제거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이는 비사회주의 행위가 당 간부들까지 확산됐다는 얘기라고 한국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조한범 박사는 말했습니다.

[녹취: 조한범 박사] ”자본주의 사회에서 정보가 돈이듯, 장마당이나 간부들 모두 정보에 민감합니다. 반동사상문화라고 간부가 예외가 아니고 오히려 간부층에 더 확산돼 있는 거죠.”

2012년 집권한 김정은 위원장은 종전의 엄격한 통제와 사상에 치우친 문화 강요에서 탈피해 북한의 대중문화를 끌어 올리려는 시도를 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그 해 7월 등장한 북한의 걸그룹 ‘모란봉 악단’이었습니다. 어깨가 드러난 옷과 화려한 액세서리, 그리고 짙은 화장을 하고 레이저 조명 아래 전자악기를 연주하는 모란봉 악단은 그야말로 파격적이었습니다.

모란봉 악단 공연에는 미국 디즈니 만화영화 주인공들이 등장하는가 하면 미국 영화 ‘록키’의 장면과 주제곡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체제선전이라는 뚜렷한 목적을 가진 북한사회에서 모란봉 악단이 한국의 자유분방한 대중문화를 대체하기엔 한계가 있었습니다.

그 결과 모란봉 악단은 2015년 4월부터 화려한 의상 대신 군복을 입고 공연을 하고 있습니다. 또 서방의 음악 대신 북한의 체제를 찬양하는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

북한 내부 사정에 밝은 한국 동아대 강동완 교수는 지금처럼 자력갱생을 강조하는 상황에서는 모란봉 악단이 어울리지 않기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강동완 교수] ”지금은 비사회주의를 단속하고 자력갱생에 올인해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모란봉 악단보다 공훈합창단처럼 웅장한 공연이 필요한 상황인 거죠.”

김정은 정권은 2015년을 기해 남한의 노래나 드라마 등 이른바 비사회주의 행태 척결에 나섰습니다.

그 해 북한은 형법을 개정해 남한 노래를 듣기만 해도 10년 이하의 노동교화형에 처했습니다. 과거 1년 이하의 노동단련형에 처했던 것에 비해 처벌이 10배나 강화된 것입니다.

김정은 위원장은 2017년 12월 열린 노동당 세포위원장 대회에서 ‘비사회주의 현상 섬멸’을 지시하기도 했습니다.

이어 2020년 12월에는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를 열어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을 제정했습니다. 북한 관영매체들은 이 법이 반사회주의 사상문화의 유입과 유포 행위를 막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북한에 한류 유입이 본격화 된 것은 2000년대부터입니다.

특히 남한의 노래와 드라마는 북한의 20-30대 젊은 장마당 세대를 중심으로 사회 전반에 폭넓게 퍼졌습니다.

함경북도 라진에 살다가 2014년 한국으로 망명한 탈북민 윤설미 씨가 유튜브에서 자신이 북한에 있을 때 본 한국 드라마를 설명하는 장면입니다.

[녹취: 윤설미] ”저는 중학교 때부터 대한민국 드라마를 봤는데, 처음으로 본 것은 ‘가을동화’였습니다. ‘가을동화’ ‘천국의 계단’,’장군의 아들’, ‘올인’, 1990년대 후반에 유명했던 드라마인데...”

과거에는 카세트 테이프와 ‘알판’이라고 불리는 CD와 DVD를 통해 남한의 드라마와 노래가 북한에 유입됐습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동식 메모리 저장장치(USB)와 마이크로SD카드, MP5, 노트텔에 담겨 한류가 북한사회에 널리, 깊숙히 확산되고 있습니다.

요즘에는 한국의 여성 걸그룹과 남성 아이돌 그룹도 북한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다시 탈북민 윤설미 씨입니다.

[녹취: 윤설미] “동방신기는 북한에서도 엄청 유명했는데, 내가 동방신기를 들을 때 댄스에 놀랐어…”

전문가들은 남한의 한류가 확산되는 가장 큰 이유는 북한 매체가 재미가 없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북한의 노래와 드라마는 체제선전을 목적으로 100% 노동당 선전선동부가 만들기 때문에 남한의 뛰어난 노래나 드라마와 경쟁할 수가 없다는 겁니다.

워싱턴의 인권단체인 북한인권위원회(HRNK) 그레그 스칼라튜 사무총장입니다.

[녹취: 스칼라튜 사무총장]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바탕으로 해야 한류 열풍같은 게 일어날 수 있는데 북한은 정반대이기 때문에 북한 문화작품이 재미가 있을 수 없습니다. 이유는 단순한 것이지요”

북한 당국은 이번에 비사회주의 단속을 위해 중앙과 도·시·군에 이르는 ‘연합지휘부’를 조직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북한은 지난 2004년부터 ‘109 상무조’를 운영해왔습니다. 북한 주민들이 ‘백공구 상무’라고 부르는 이 조직은 국가안전보위부와 인민보안성이 주축이 된 기구로 주민들의 TV와 음악, 비디오 등을 검열, 감시해왔습니다.

그런데 이 조직이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기 새로 ‘연합지휘부’를 조직했다는 겁니다.

전문가들은 단속을 강화해도 한국 노래와 드라마를 뿌리뽑을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다시 한국 동아대 강동완 교수입니다.

[녹취: 강동완 교수] “이미 북한 주민에게 남한 영상물인 CD나 DVD는 돈이 되는 상품인데다, 간부들과 오랜 커넥션이 있어서 단속만 한다고 될 일이 아니고, 완전히 발본색원하기는 어렵다고 봐야겠죠.”

지난 20년간 계속된 남한의 노래와 드라마 유입은 북한사회에 적잖은 변화를 가져온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북한 주민들과 간부들은 이를 통해 남한을 비롯한 외부 세계를 새롭게 인식하고 있습니다.

최악의 경제난에 더해 주민들은 물론 간부들에까지 스며들고 있는 남한 등 외부 문화에 대한 관심을 북한 수뇌부가 어떻게 해결해 나갈지 주목됩니다.

VOA뉴스 최원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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