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참석한 가운데 노동당 정치국 확대회의를 열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문제 등을 집중 논의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9일 전했다.
북한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참석한 가운데 노동당 정치국 확대회의를 열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문제 등을 집중 논의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9일 전했다.

한반도 주요 뉴스의 배경과 의미를 살펴보는 ‘쉬운 뉴스 흥미로운 소식: 뉴스 동서남북’ 입니다. 북한 노동당 2인자인 조직지도부 총책임자가 공개 해임됐습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민심 이반을 의식한 내부단속용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습니다. 최원기 기자가 전해 드립니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지난달 말 정치국 확대회의를 열고 이만건 노동당 조직지도부장과 박태덕 당부위원장을 해임했습니다. 북한 관영 `조선중앙방송'입니다.

[녹취: 중방] ”당 중앙위원회는 이만건, 박태덕 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을 현직에서 해임했습니다.”

눈길을 끄는 건 노동당 간부 인사를 총괄하는 조직지도부 리만건 부장의 해임입니다. 당 우위를 내세우는 북한에서 당 조직지도부는 핵심 권력기관이고, 이 때문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1973년 조직지도부장을 맡은 이후 2011년 사망할 때까지 이 직책을 놓지 않았습니다. 

또 최근에는 김정은 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이 조직지도부로 자리를 옮긴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런데 이 막강한 조직지도부의 총책임자가 공개적으로 해임된 겁니다.

북한 관영 `노동신문'은 리만건의 해임 사유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습니다. ‘우리 당 골간 육성의 중임을 맡은 당 간부 양성 기지에서 부정부패가 발생했다’고 언급한 것이 전부입니다.

이에 따라 리만건이 김일성고급당학교에서 발생한 부정부패 사건과 직접 관련이 있거나, 이 사건에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한국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조한범 박사입니다.

[녹취: 조한범 박사]”김일성 고급당학교로 추정이 되는데, 당의 최고위 기관에 비리가 발생하고, 김정은 위원장이 공개적으로 얘기한 것은 유례가 없는 일인데, 일단 저는 총책임을 물은 게 아닌가 보고 있습니다.”

이번 해임이 ‘김여정 작품’이라는 분석도 있습니다. 올해 75살인 리만건은 원래 군수공업 전문가로, 주로 당 군수공업부에서 핵과 미사일 개발을 담당해 왔습니다. 그러다 핵실험과 미사일 시험발사 성공에 힘입어 2016년 5월 당 정치국 위원이 됐습니다. 이어 지난해 4월 최룡해가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으로 자리를 옮기자 당 조직지도부장이 됐습니다. 

그로부터 8개월 뒤, 그동안 당 선전선동부에서 활동했던 김여정도 지난해 12월 노동당 전원회의를 계기로 조직지도부로 자리를 옮긴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와 관련해 김여정이 나이가 많은데다 전문성도 떨어지는 리만건을 탐탁하게 여기지 않았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김일성고급당학교에서 비리가 발생하자 김여정이 이를 김정은 위원장에게 직보해 리만건을 해임시켰을 것이라고 탈북자 출신인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은 말했습니다.

[녹취: 안찬일 소장]”누가 리만건을 날리는 것을 연출할 수 있겠냐 하는 것인데, 김정은 빼고 김여정 밖에 없기 때문에 김여정이 모든 연출 총괄을 한 것으로 저는 봅니다. “

실제로 김여정은 3월3일 자신의 명의로 담화를 내고 한국 청와대를 거칠게 비난했습니다. 이는 김여정이 최고 지도자의 단순한 비서 역할을 벗어나 대남 분야와 노동당 요직을 맡고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한국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조성렬 자문연구위원입니다.

[녹취: 조성렬 연구위원] “앞으로 김여정이 김정은 위원장의 하나의 측근 또는 비서 역할을 넘어서 공식적인 당내 지위를 갖고 활동하겠다는 신호탄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리만건과 박태덕이 공개적으로 해임된 것도 주목할만한 대목입니다.

북한이 조직지도부장과 농업 책임자 같은 당 고위 인사를 비리 혐의로 공개적으로 해임한 것은 7년 만입니다. 북한에서는 2013년 12월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을 해임, 처형한 이래 공개적인 해임은 없었습니다. 

따라서 김 위원장이 고위 당 간부를 공개적으로 해임하고 같은 날 인민군 화력타격 훈련을 현지 지도하는 모습을 공개한 것은 내부  민심 이반을 수습하려는 의도라고 조한범 박사는 말했습니다.

[녹취: 조한범 박사] ”북한 내부 민심이 상당히 흉흉합니다. 조류독감, 아프리카돼지열병도 창궐하고, 코로나19로 장마당도 동요하고, 민심 동요를 방지하기 위해 책임을 핵심 간부에 돌린다는 추정이 충분히 가능하죠.” 

이번에 해임된 박태덕은 황해북도 도당 책임비서 출신으로 농업 담당 부위원장으로 일해왔습니다.

박태덕이 해임된 이유는 분명치 않습니다. 관측통들은 식량 가격 오름세가 해임의 배경이 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합니다. 

일본의 북한 전문매체인 `아시아 프레스'에 따르면 지난해 연말 kg 당 4천1백원 선이던 쌀값은 2월초에 5천670원으로 30% 이상 올랐습니다. 또 1천700원이었던 옥수수(강냉이)는 1천900원까지 올랐습니다.

이에 따라 장마당 식량에 의존하는 주민들이 큰 어려움을 겪었을 가능성이 크고, 민심이 흉흉해지자 농업 책임자인 박태덕을 해임한 것이라고 안찬일 소장은 말했습니다.

[녹취: 안찬일 소장] ”국경 봉쇄, 코로나 전염병으로 물가가 오르는데, 특히 북한은 부식보다는 쌀과 옥수수가 중요한데, 국경이 차단되니까 물가가 오를 수밖에 없는데..”

과거 북한은 `고난의 행군' 시절인 1997년 식량난이 악화되자 농업 책임자였던 서관히 농업담당 비서를 처형한 바 있습니다.

부정부패 문제도 이번 정치국 확대회의에서 비중있게 다뤄졌습니다. 김정은 위원장은 이 자리에서 ‘특세와 특권’ ’행세식 행동’ ‘반인민적, 반사회주의적 현상 타파’ 같은 표현을 써가며 부정부패 척결을 강조했습니다.

전문가들은 북한의 부정부패 상황이 지난 몇 년 간 더 악화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북한의 부정부패는 1990년대 후반 ‘고난의 행군’ 시절 사회 전반에 만연됐는데 이 것이 대북 제재와 전염병 사태로 한층 악화됐다는 겁니다. 

탈북자들에 따르면 노동당과 내각, 군부 간부들은 장마당 상인과 돈주들과 ‘먹이사슬’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당 간부의 월급은  5천-1만원에 불과합니다. 이 돈으로는 장마당에서 쌀을 1-2kg 밖에 살 수 없습니다. 따라서 당 간부와 보위부원, 검찰, 안전원, 군 장교들은 생활을 위해서 상인과 돈주들에게 뇌물이나 뒷돈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문제는 국제사회의 고강도 제재가 4년째 계속되면서 북한의 외화벌이 돈줄이 끊겼다는 겁니다. 특히 석탄을 비롯해 중국에 대한 수출이 90%가량 줄어들면서 돈주들도 큰 손해를 보거나 빚을 떠안게 됐습니다. 이 때문에 북한에서는 돈주 대신 ‘빚주’라는 말도 생겨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렇듯 상인들과 돈주들이 장사를 못하면서 자연히 당 간부들도 사정이 나빠질 수밖에 없다고 북한 경제 전문가인 한국 서울대학교 김병연 교수는 지적했습니다.

[녹취: 김병연] ”중간 관료들은 뇌물을 통해서 즉, 무역이나 외화벌이꾼을 통해서 돈을 받거나, 또 일반 주민이 뇌물을 주곤 했는데 그런데 무역이나 외화벌이가 어렵게 되면서 뇌물도 줄고, 그런 사람들도 어려움에 봉착한 것으로 보입니다.”

업친데 덥친격으로 북한 당국은 1월 말 코로나 전염병을 막는다며 북-중 국경을 차단했고, 이로 인해 중국에서 들어오던 물자 흐름도 끊어졌습니다. 북-중 무역은 북한 경제를 지탱하는 생명줄이었는데 이것이 끊어진 겁니다. 이 때문에 장마당 물가는 일제히 올랐습니다.

이런 배경으로 미뤄볼 때 북한 수뇌부가 아무리 부정부패 척결을 외쳐도 부패는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조한범 박사는 말했습니다.

[녹취:조한범 박사] ”북한 말 중에 ‘뇌물은 인간의 도리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뇌물이 없으면 안돌아 갑니다. 북한 간부와 인민들도 각자도생할 수밖에 없고 그럴러면 부정부패가 필수거든요. 김 위원장이 아무리 처벌해도 부정부패는 뿌리뽑기가 불가능합니다.”

북한이 정치국 확대회의에서 리만건 조직지도부장과 박태덕 당 부위원장을 공개 해임한 것은 민심수습용 인사로 보입니다.

김정은 위원장이 경제난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전염병, 그리고 민심 이반 사태를 어떻게 헤쳐나갈지 주목됩니다.

VOA뉴스 최원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