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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핵 전문가 “북 핵 의심시설 5~10개 있지만 확인 어려워...위성분석 신중해야”


지난 5월 30일 북한 평양 인근 원로리 일대의 핵무기 생산 의심 시설을 촬영한 위성 사진. 사진제공=Middlebury Institute of International Studies at Monterey / Planet.
지난 5월 30일 북한 평양 인근 원로리 일대의 핵무기 생산 의심 시설을 촬영한 위성 사진. 사진제공=Middlebury Institute of International Studies at Monterey / Planet.

북한에 5~10개 사이의 핵 활동 의심 시설이 있지만 뚜렷한 증거가 없어 잠재적 “표적 명단”에만 올라있다고 데이비드 올브라이트 과학국제안보연구소(ISIS) 소장이 밝혔습니다. 신빙성이 떨어지는 위성사진 분석에 매달리는 동안 북한은 대기권 재진입 등 핵심 핵 역량을 진전시키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라크 대량살상무기 사찰과 2012년 미-북 간 2.29 합의에 참여했던 올브라이트 소장을 백성원 기자가 인터뷰했습니다.

기자) 북한과 중동 국가들의 핵 개발 의심 시설을 오랫동안 추적해 오셨습니다. 북한의 비밀 시설 가운데 실체가 어느 정도 파악된 곳이 있습니까?

데이비드 올브라이트 과학국제안보연구소(ISIS) 소장.
데이비드 올브라이트 과학국제안보연구소(ISIS) 소장.

올브라이트 소장) 우리는 의심 시설 명단을 갖고 있습니다. 북한 내에 5~10개 정도가 있죠. 모두 핵무기 생산과 관련된 곳입니다. 하지만 어떤 시설도 그런 사실을 확인할 길이 없기 때문에 발표하지 않고 있습니다.

기자) 최근 CNN이 북한 평양시 만경대구역 원로리 일대에서 핵시설 가동 정황이 포착됐다고 보도했는데요. 엇갈린 분석이 나오고 있습니다만, 혹시 그런 비밀 시설 중 하나로 볼 수 있을까요?

올브라이트 소장) 원래 안킷 판다(미국 과학자연맹 선임연구원)가 출간할 서적에 이곳을 소개한 것인데, 아마도 미 국방정보국(DIA) 등으로부터 얻은 정보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 확신을 갖기 위해서는 복수의 정보기관이 일치된 결론을 내려야 합니다. 하지만 (민간 위성 업체) ‘플래닛 랩스’가 포착한 조악한 사진만 놓고 보면 그런 증거를 전혀 발견할 수 없습니다.

기자) 어떤 구체적인 증거가 필요한 겁니까?

올브라이트 소장) 플루토늄을 생산한다면 굴뚝이 보여야 합니다. 또 핵폭발을 일으키는 고성능 폭약을 적재할 벙커를 갖추고 있어야 합니다.

기자) 올리 하이노넨 전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차장도 같은 지적을 했습니다. 핵 관련 시설이라면 배기 굴뚝이 선명히 보여야 한다고요.

올브라이트 소장) 금속 플루토늄을 녹여 주형을 떠서 반구형 등으로 만드는 작업 등을 해야 하는데, 글러브박스와 같은 특수 시설이 필요합니다. 이 과정에서 배기가스를 여과 장치를 통해 배출해야 하고요. 하지만 (CNN이 공개한) 위성사진에서는 그런 활동이 이뤄지고 있다는 증거를 볼 수 없습니다. 북한을 다룰 때 늘 부딪히는 문제입니다. 정보 조각들을 하나씩 맞춰 뭔가 이해해보려 하지만, 막상 제시되는 정보에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겁니다.

기자) 많은 관심을 끌었던 보도였지만 회의적인 목소리가 더 커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올브라이트 소장) 사실 (보도에 나오는) “핵무기를 생산하는 곳”이라는 말뜻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핵무기를 만들려면 여러 부품을 차례로 완성해 나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 과정의 후반부로 가면 모든 부품을 하나로 맞추는 조립동에 이르게 되고요.

기자) 한 시설에서 모든 게 이뤄지는 게 아닌데 너무 단정적이라는 뜻인가요?

올브라이트 소장) 핵무기 제조에는 각각의 다른 단계가 필요하고, 많은 경우 각 단계는 다른 장소에서 이뤄집니다. 가령 무기급 우라늄 부품을 만드는 작업은 특정 장소에서 이뤄지고 이후 (다른 곳에 있는) 조립 시설로 넘어갑니다. 플루토늄 관련 부품이라면 작업은 또 다른 장소에서 진행되고요. 게다가 하위 부품 조립 장소도 따로 있을 겁니다. 이렇게 핵무기 제조 공정의 후반부로 갈수록 점점 핵 관련 정황이 잘 드러나지 않게 됩니다. 하지만 마지막 단계라 하더라도 고성능 폭약을 적재할 벙커, 일종의 무기고가 필요합니다. 자칫 폭발 사고가 일어날 경우 모든 것을 파괴하고 플루토늄이 유출될 수 있으니까요. 따라서 원로리 일대에서 어떻게 핵무기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누군가 “여기가 핵무기 생산시설이다”라고 정보를 줬을 수 있지만, 나는 어떤 증거도 볼 수 없습니다. 그저 보안벽과 지도부 방문 기념비, 고층의 주거지 등이 있다는 예가 제시됐을 뿐입니다.

기자) 그렇다면 핵 관련 시설로 의심하고 계신다는 장소들에 관해서도 설명해 주십시오.

올브라이트 소장) 5~10개 정도를 명단에 올려놓고 지켜봤습니다. 핵무기 관련성이 의심되는 (공격의) “표적 명단(target list)”이라고 부르겠습니다. 하지만 이 시설들을 공개하지는 않고 있습니다. 핵무기 시설이라고 단정할 수 있는 특징들을 확신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실 정보기관 요원이 의심 국가의 시설에 대해 “핵과 관련이 있다”고 말하는 것은 매우 쉬운 일입니다. 어떤 확인 과정도 거치지 않은 채 그 나라에서 탈출한 사람의 말에만 근거한 경우도 있습니다. “표적 명단”이라면 미사일로 공격할 잠재적 목표물이 되는 겁니다. 안보상의 이유로, 혹은 해당 시설의 중요성 때문에 타격할 수 있다는 겁니다. 나중에 핵과 관련 없는 장소로 판명되더라도 일단 심각하게 훼손시키는 것이죠. 저는 1991년 걸프전 직후 이라크에 대한 무기사찰에 참여했습니다. 그때 사전에 작성했던 “표적 명단”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깨닫고 놀랐습니다.

기자) 북한의 의심 시설도 잠재적 공격 대상이 될 수 있을까요?

올브라이트 소장) 저는 “표적 명단”을 크게 신뢰하지 않습니다. 저희가 (2018년 북한의 비밀 핵 시설로 지목된) ‘강성(Kangsong)’에 대해 극도로 주의를 기울였던 것도 그런 이유 때문입니다. 당시 강성 시설에 대해 확신에 찬 주장을 했던 그룹도 이번 원로리 관련 분석을 내놓은 곳(미들베리 국제학연구소)이었습니다. 하지만 강성에 대해선 저희가 세 나라의 확인을 거쳐 처음 알렸습니다. 그중에서 미국이 강성 농축 시설에 대해 가장 과장된 견해를 갖고 있었습니다. 반면, 미국의 가까운 동맹국인 한 나라는 그곳에 농축 시설이 있다는 사실을 전혀 믿지 않았습니다. 다른 한 나라는 농축 시설이라는 사실을 인정한다면서도, 미국이 주장하는 규모의 절반 정도라고 밝혔습니다. 현지에 왜 2층짜리 건물이 있는가, 왜 교통량이 그렇게 많은가, 이런 의문이 제기됐습니다. 핵무기 관련 시설에는 원래 차량이 자주 드나들지 않으니까요. 그리고 네 번째 나라는 강성의 핵 시설 여부를 판단하지 못했습니다. 탈북자를 통해 최초로 해당 정보를 얻은 나라인데도 말입니다. 이후엔 관련 논의가 어떻게 됐는지 모르겠습니다. 강성이 실제 핵 시설일 수도 있지만, 완전히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기자) 의심 시설에서 차량이나 컨테이너가 발견되면 핵 관련 활동 정황으로 진단하는 분석도 많았는데요. 오히려 그 반대라는 말씀이군요.

올브라이트 소장) 가령 핵무기 조립 시설이라고 하면, 플루토늄이나 무기급 우라늄 폭탄 등을 특수 보호 용기에 담아 화물차량 등으로 옮겨야 하는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엄청난 폭발력을 가진 물질을 컨테이너에 싣거나, 이런 컨테이너를 시설의 한 가운데 놔두는 일은 없을 겁니다. 그런데 가령 원로리 위성사진에는 이런 물질을 적재하는 지하시설이 있다는 증거도 안 보입니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지하 터널 입구가 있다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다른 시설들에선 터널 입구가 발견되는데 말이죠.

기자) 정보 당국을 통해 얻은 핵 시설 정보라도 추가 확인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로도 들립니다. 하이노넨 전 IAEA 사무총장도 정보당국의 귀띔에 의존해선 안 된다고 했습니다.

올브라이트 소장) 맞습니다. 그 정보가 사실일 수도 있지만 확신할 수는 없다는 겁니다. 저희는 공식적인 접촉을 통해 두 개의 확실한 성명을 확보한 뒤에야 ‘강성’ 시설에 대해 알렸습니다. 유출된 정보를 가지고 사실을 확인한 게 아니라 공식 만남을 통해 정부가 알고 있는 정보를 정식으로 전달받은 겁니다. 유출된 정보의 경우에는 진위를 확인할 길이 없습니다. 원로리 사진으로는 핵 시설이 맞는지 전혀 검증할 수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사진에 나오는 울타리나 기념비는 북한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것들이고요.

기자) 그렇다면 핵 시설에 대한 최초 정보는 이후 어떤 경로와 방법을 통해 검증할 수 있습니까?

올브라이트 소장) 예를 들어 우리는 이란의 나탄즈 핵 시설에 대해 2002년 처음 알게 됐습니다. 탈출한 사람들 그룹으로부터 그곳에 핵 활동 정황이 있다는 정보를 들었는데, 구체적으로는 핵연료 공장이 가동되고 있다는 설명이었습니다. 우리는 당시 상업용 위성을 이용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조직 중 하나였는데, 이를 이용해 해당 시설을 발견했습니다. 이후 어떤 시설인지 분석을 시작했는데 핵연료 공장이라는 정보는 잘못된 것이었습니다. 대신 외부에 전혀 알려지지 않은 비밀 원심분리기 시설이라는 사실을 알아냈죠. 그리고는 정부 내 소식통으로부터 이를 거듭 확인했습니다. 우리는 당시 이 사실을 CNN에 알렸지만, CNN은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며 독립적으로 확인 작업을 거쳤습니다. 하지만 최근엔 이런 높은 검증 기준을 보기 힘들어졌습니다.

기자) 이렇게 불확실한 비밀 핵 시설에 대한 논쟁보다 당장 해결이 시급한 북한 핵 문제를 묻는다면 어떤 것부터 꼽으시겠습니까?

올브라이트 소장) 매우 큰 주제인데요. 북한은 그대로 방치했을 때 항상 핵무기 기술을 진전 시켜 왔습니다. 따라서 북한과 유용한 관여와 협상을 하지 않는 것은 미국에 그리 이롭지 않습니다. 저는 북한이 현재 미국 본토를 공격할 핵무기 역량을 계속 진전시키고 있다고 의심하고 있습니다. 결국은 대기권 재진입체를 개발해 이를 미사일과 결합하는 문제입니다. 실험을 통해 시행착오를 거쳐야 하는 과정인데, 그렇다고 반드시 시험 발사를 해야만 얻을 수 있는 기술은 아닙니다. 물론 발사를 통해 재진입 역량을 시험해 보는 것이 가장 신뢰할 만한 방법이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도 상당한 기술을 확보할 수 있는 수단이 있습니다. 북한이 최근까지 그런 작업을 계속해왔고, 어느 순간 미사일을 쏘아 올려 재진입체를 성공적으로 낙하시킬 수 있다는 겁니다. 이것이 제가 우려하는 상황입니다. 우리가 다른 문제에 신경 쓰고 있는 동안 북한은 계속 기술을 진전시켜 막상 그들과 협상을 시작했을 때 그런 기술을 되돌리기 더 어려워지는 상황 말입니다.

데이비드 올브라이트 과학국제안보연구소(ISIS) 소장으로부터 북한 핵 관련 정보의 신빙성과 검증의 한계에 대해 들어봤습니다. 인터뷰에 백성원 기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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