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 한인 북송사업으로 북한에 건너갔다 탈북한 에이코 가와사키 씨가 지난해 12월 도쿄의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 본부 앞에서 사과를 요구하는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재일 한인 북송사업으로 북한에 건너갔다 탈북한 에이코 가와사키 씨가 지난해 12월 도쿄의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 본부 앞에서 사과를 요구하는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일본 내 친한단체가 재일 한인에 대한 북송 사업 개시 60주년을 앞두고 북한과 일본 내 친북단체 (조총련)의 사죄를 촉구했습니다. 북한이 지상낙원이라는 선전은 허위였으며, 한인 북송은 ‘폭거’였다고 지적했습니다. 오택성 기자입니다.

재일본대한민국민단 중앙본부는 북송 사업 60주년을 앞두고 13일 도쿄에서 개최한 심포지엄에서 북한과 조총련의 사죄를 촉구했습니다.

이들은 결의문에서, 북한을 지상낙원이라고 허위선전해 진행된 북송 사업을 통해 9만 3천여 명이 북한에 보내져 심각한 인권 억압을 당했다며 이를 ‘폭거’로 규정했습니다.

특히 북송 사업을 주도한 조총련에 대해, 북한사회의 실태를 숨기고 일본 내 많은 한인들을 사지로 몰고 갔다고 비난했습니다.

일본 정부에 대해서는, 북송 지원의 인도적 책임을 인정하고 북송 한인들과 그 가족의 원상회복 실현에 힘써줄 것을 당부했습니다.

재일 한인 북송 사업은 북한과 일본 사이에 체결된 ‘재일 한인 북송에 관한 협정’에 따라 60년 전인 1959년부터 일본 내 조총련계 한인들이 북한에 보내진 사업입니다.

재일 한인들의 북송은 한국전쟁 이후 노동력이 필요한 북한 당국이 송환자들의 생활을 책임지겠다며 추진했고, 이에 일본 정부가 호응해 성사됐습니다.

이 사업은 1959년 12월 14일, 재일 한인 975명을 태운 배가 니가타 항을 출항한 것을 시작으로 이후 1984년까지 지속적으로 진행됐습니다.

25년 동안 180여 차례에 걸쳐 진행된 이 사업을 통해 약 9만 3천명이 북한으로 들어갔고, 이 중에는 남편을 따라 함께 간 일본인 부인 6천여 명도 포함돼 있습니다.

북송 수송선 가운데 가장 잘 알려진 것은 1971년부터 투입된 ‘만경봉 호’로, 재일 한인들에게는 끔찍한 북송 사업을 상징하는 배가 됐습니다.

북송됐다가 탈북한 재일 한인들은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북한으로 건너 갈 당시의 상황에 대해 증언했습니다.

일본에 거주하는 한인으로서 끔찍한 차별에 시달리며 경제적 어려움을 겪던 와중에 지상낙원인 북한에 가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는 말에 속아 넘어갔다는 겁니다.

지난 2016년 한국의 민간단체인 `통일아카데미’와의 인터뷰에 응한 탈북 재일 한인 이태경 씨의 증언입니다.

[녹취: 이태경] “잘 산다, 지상낙원이다, 마음껏 배울 수 있게 해준다, 치료해 준다. 이렇게 좋다고 하니까 그럼 가보자고 다들 한 마디 했지요.”

3살 때인 1963년 부모를 따라 북한에 갔다가 2002년에 탈북한 고정미 씨는 지난해 VOA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에서 일본에서 보다 훨씬 심각한 차별과 인권 유린에 시달렸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고정미] “일본에서 겪는 차별 고통보다 더 심한. 째포요 반쪽발이요. 그것부터 시작해서 사상이 나쁘다. 뭐 조금만 이상한 소리 하면 어디로 갔는지 정치범 수용소에 갔는지 죽었는지 행방불명 되고. 뭐 굉장하거든요. 그러니까 먹고 사는 비참한 생활은 둘째였어요.”

고 씨는 이후 탈북민 4명과 함께 지난해 도쿄지방재판소에 북한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며 손해배상액 4억엔, 미화 4 20만 달러를 청구했습니다.

유엔 북한인권 조사위원회(COI)는 2014년 최종보고서에서 북송 사업을 납치로 분류하고, 이 사업이 일본적십자사의 지원 속에 이뤄졌다고 밝혔습니다.

VOA뉴스 오택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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