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평양의 중앙은행 건물 (자료사진)
북한 평양의 중앙은행 건물 (자료사진)

투명한 통계는 경제발전의 관문이지만, 북한은 부실한 국정운영이 드러나는 정치적 위험 때문에 통계 공개를 꺼리고 있다고 미 전문가들이 진단했습니다. 투명한 통계가 없는 한 국제 지원과 투자 유치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지적입니다. 김영권 기자가 보도합니다.

지난 2009년에서 2013년까지 유엔개발계획(UNDP) 평양사무소장을 지낸 제롬 소바쥬 씨는 재임 당시 한 도의 보건 업무를 책임지는 국장과 나눈 대화를 잊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녹취: 소바쥬 전 소장] “I said, how much money do you have? How do you do? He admitted he had no idea. He doesn’t know whether he can buy something or pay people or hire or get better equipment.” 

보건국장에게 예산 규모와 집행에 관해 물었지만, 구매나 급여 지불, 고용 계획 등에 대해 아무 것도 알지 못했다는 겁니다. 

소바쥬 전 소장은 북한 정부의 모든 부처는 섬처럼 각각 고립된 채 공조가 거의 없다며, 이들이 중앙통계국에 자료를 제공해도 아무런 우대가 없기 때문에 정확한 자료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북한이 이렇게 세계 최악의 통계국으로 남아 있는 이유는 “두려움” 때문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녹취: 소바쥬 전 소장] “Problem is the fear factor. People are too afraid of reporting the statistics. So for example, production of food statistics are really you know it. You have to be very careful what you can say…”

식량 생산 규모가 얼마인지, 마을 인구가 얼마나 사망하는지, 왜 그런지 등 중앙정부에 보고하는 모든 통계가 성과와 처벌에 직결되기 때문에 관리들이 정확한 보고를 매우 두려워한다는 겁니다. 

브래들리 뱁슨 전 세계은행 고문은 사실에 기초한 국제사회의 통계 논리와 달리 북한은 정치적 논리가 항상 최우선이라고 지적합니다.

[녹취: 뱁슨 전 고문] “They don't really want to disclose the reality of what they're doing with their money how much they have and where it is.”

북한은 정권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는 모든 요소를 차단하기 때문에 정부 예산을 어떻게 집행하고 규모는 얼마인지, 돈이 어디에 있는지 등 국정의 실상을 공개하길 원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한국 국책연구기관의 한 전문가도 VOA에, 과거 동독 등 옛 공산 국가들도 국민통제를 위해 통계를 비공개로 일관했다며, 통계로 국정의 민낯을 보이는 것은 김 씨 정권의 최고존엄에 치명적이란 딜레마가 존재한다고 말했습니다.

뱁슨 전 고문은 의식이 깨인 경제 담당 관리들은 통계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다며, 그러나 정치적 위험 때문에 국제사회에 정보를 제공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1997년 `고난의 행군’ 시절 국제통화기금(IMF) 대표단의 첫 평양 방문을 떠올렸습니다.

[녹취: 뱁슨 전 고문] “The bottom line of that discussion was that they were very interested in the technical assistance and the money but they were very unwilling to open the books and they didn't want.

북한은 당시 논의에서 국제 금융기구들의 기술 지원과 자금에 적극적인 관심을 보였지만, 지원을 받는 데 필요한 국가통계를 공개하는 것을 매우 꺼려 결국 후속 회동이 무산됐다는 겁니다. 

이후 북한은 현재까지도 국제 금융기구들의 개발 지원을 받기 위한 첫 관문인 IMF에 가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유엔의 193개 회원국 가운데 인구 수 만 명의 안도라 같은 소국들을 제외하면 북한은 쿠바와 함께 189개국이 가입한 IMF의 변방에 계속 머물러 있는 겁니다.
익명을 요구한 IMF 관계자는 VOA에, “통계는 당사국의 경제적 취약성과 위험 등 경제 상황을 정확히 이해해 보다 나은 정책 구현에 기여한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국가의 투명성은 정부의 정책에 대한 신뢰로 연결돼 외국의 투자 유치에도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습니다.

북한의 IMF 가입은 지난해 평양을 방문했던 문재인 한국 대통령이 유엔총회 참석 차 뉴욕을 방문해 행한 연설에서 북한이 가입에 의지가 있다고 말하면서 다시 관심을 끌었습니다.

[녹취: 문재인 대통령] “북한 측에서도 IMF나 세계은행이라든지 여러 국제기구에 가입함으로써 개방적인 개혁으로 나설 뜻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하지만 케네스 강 IMF 아시아·태평양 담당 부국장은 지난 4월 워싱턴에서 열린 세계은행·IMF 춘계총회 언론브리핑에서 북한 당국으로부터 교류와 접촉에 관해 어떤 통보도 받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케네스 강 국장] “we have not received any communication from North Korean authorities regarding possible engagement, you know, with the IMF. As you know, North Korea is not a member of the IMF, and therefore, we cannot provide financial assistance.”

강 국장은 이어 북한은 IMF 회원국이 아니기 때문에 북한에 금융 지원을 할 수 없다며, 금융 지원이나 비금융 지원 등 IMF의 모든 관여는 주요 이사국의 시각에 크게 달려있다고 말했습니다.

뱁슨 전 고문은 IMF는 미국과 일본, 유럽연합이 핵심 주주국이기 때문에 북한 정부의 국제사회 편입 의지뿐 아니라 비핵화와 인권에 진전이 있어야 가입에 속도가 붙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경제국의 랜달 존스 일본·한국 담당관도 앞서 VOA에, 이런 핵심 사안에 진전이 이뤄지면, 북한의 IMF 가입에 빠른 진전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존스 담당관] “I think if we can make progress on the key issue, I think there will be a chance to have a rapid progress.”

존스 담당관은 “경제발전은 해외 원조보다 투자가 핵심”이라며, 투자자들은 위험을 낮추기 위해 통계의 투명성을 요구하기 때문에 서로 긴밀하게 직결돼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중국이 주도하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조차 투명성 부족과 투자 위험을 이유로 북한의 가입을 꺼리고 있기 때문에 북한의 통계 협력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는 지적도 나옵니다. 

소바쥬 전 UNDP 평양사무소장은 국가통계를 모른다는 것은 운전자가 5미터 앞의 도로 상황이 어떤지, 또 휘발유가 있는지 조차 모른 채 위험한 주행에 나서는 것과 같다고 지적합니다. 

[녹취: 소바쥬 전 소장] “Imagine you're driving a car and you don't know if you don't have any idea of what the road looks like. Five meters from you. You have no idea. And you don't even know if there's gas in the car.”

전반적인 국가의 상황을 투명하게 측정해야 정확한 진단을 내려 경제가 올바로 주행할 수 있기 때문에 김정은 위원장의 결단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하지만 북한 정부가 대북 제재의 강도를 측정하려는 국제사회에 국가통계를 내줄 가능성이 적기 때문에 북한의 IMF 협력 가능성은 여전히 불투명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습니다. 

VOA 뉴스 김영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