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내 한국전쟁 참전용사들이 6.25전쟁 발발 69주년을 맞아 한국대사관이 마련한 오찬 행사에 참석한 후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미국 내 한국전쟁 참전용사들이 6.25전쟁 발발 69주년을 맞아 한국대사관이 마련한 오찬 행사에 참석한 후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매주 금요일 북한 관련 화제성 소식을 전해 드리는 `뉴스 풍경'입니다. 미국 내 한국전쟁 참전용사들이 6.25전쟁 발발 69주년을 맞아 한국대사관이 마련한 오찬 행사에 참석했습니다. 참전용사들에게 전장에서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합니다. 장양희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라디오
[뉴스 풍경 오디오] 한국전 참전용사들 “한국전은 기억될 전쟁”

광부였던 아버지가 광산 사고로 숨지고, 어머니마저 잃고 누이와 형, 남동생과 홀로 남겨진 미국인 소년의 당시 나이는 겨우 8살이었습니다. 

헤어질 것이 두려워 고아원 시설을 피했던 4남매는 서로 의지하며 고향인 웨스트 버지니아에서 일하며 살아 나갔습니다. 

여덟 살 미국인 소년의 이름은 제임스 N 부쳐. 누이와 형제를 도우며 살던 소년은 17살 청년이 되자 미 육군에 입대하게 됩니다. 

그가 파병된 곳은 태어나 이름도 한번 들어본 적 없는 한국이란 나라였습니다. 

제 7사단 17연대 폭스소대에서 복무했던 제임스 부쳐 중사는 1952년 10월 강원도 철원군의 제인 러셀 전투와, 이듬해 4월 연천군에서 벌어진 포크 챱 전투에 투입됐습니다. 

두 전투에서 총 2만 여명의 유엔군이 전사했고, 3천여명의 미군 사상자가 발생했습니다. 

부쳐 중사는 제대 후 학업에 매진했고, 임상심리학 박사가 됐습니다. 

현재 미네소타대학교 임상심리학부 학장인 제임스 N. 부쳐 박사에게 한국전쟁은 잊을 수 없는 경험이었습니다. 

그는 교육자이자 참전용사로서 자신이 경험한 한국전쟁을 “Korea: Traces of a forgotten war--한국: 잊혀진 전쟁의 흔적”이란 제목의 책으로 남겼습니다. 

혹독했던 날씨는 물론 참담했던 당시 상황과 심경들을 기록한 이 책은 첫 장에서 “집으로 돌아오지 못한 17연대 전우들의 기억에 대해... 그대들의 위대한 희생은 살아남은 자들에 의해 잊혀지지 않았다”고 적고 있습니다. 

한국전쟁 기념일인 25일, 주미 한국대사관저에서 마련된 한국전 69주년 기념 참전용사 오찬 행사에 참석한 백발의 부쳐 박사의 눈에는 눈물이 고였습니다.

[녹취: 제임스 부쳐] “Well, there's not a day that goes by that I don't think about my friends that I lost in Korea. My my buddies, and so I think about it a lot about Korea and the experience there. And I think I did the right thing by going even though it was not easy…”

한국에서 잃어버린 친구를 하루라도 생각하지 않는 날이 없고, 살아남은 자신과 친구들은 한국에 대한 이야기를 아주 많이 한다는 설명입니다. 

부쳐 박사는 전쟁에서 싸운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옳은 일이었다고 말했습니다. 

한국전쟁이 자신의 삶을 바꿔 놨다고 말하는 부쳐 박사. 

[녹취: 제임스 부쳐] “It changed my my life. I was I was very young at the time and what I learned was leading leadership…”

당시 매우 어렸지만 전쟁을 통해 자신은 지도력을 이끌어내는 것과, 해야 할 일에 대해 경험하게 됐다고 말합니다. 

아내와 함께 참석한 사무엘 필더 씨는 한국전쟁 당시 포병으로 근무했다고 말했습니다. 

필더 씨는 당시 상황이 매우 열악하고 더러웠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필더 씨도 전장에서 잃어버린 전우를 떠올렸습니다. 빈센트와 리처드라는 이름의 쌍둥이 형제였습니다. 

전쟁포로로 잡혔던 두 형제의 아버지가 평생을 아들의 유해를 찾기 위해 부심하다 숨졌다고 말하는 노병 필더 씨는 무표정한 얼굴입니다. 

지팡이를 집고 한국전을 회고하는 신경외과 의사 제임스 조론 박사. 

18세 청년으로 한국에 간 1951년 초, 일병이었던 자신은 당시 전투 상황이 열악하다고 느꼈다고 말합니다.

2차 세계대전 때 쓰다 남은 장비와 탄약이 한국에 옮겨졌고, 모든 게 얼어붙는 추위 속에서 오래된 장비들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매우 힘들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제임스 조론] “It was cold, freezing, you know, and many times the ammunition didn't even work. It was so old. They brought it over from the islands, following World War Two, they brought all that over…”

조론 박사는 그러나 전쟁 후 한국은 경제강국이 됐고 한국인은 매우 뛰어나다면서, 한국의 전후 발전상은 매우 의미가 있다고 강조합니다. 

무엇보다 한국전에 참전한 병사들은 나라를 위해 봉사할 기회를 가졌다는 것을 가장 감사하게 여긴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고 조론 박사는 말합니다. 

[녹취: 제임스 조론] “the main thing is that if you speak to any American veteran of the Korean War, they are most grateful that they had the..”

조론 박사는 그래서 `잊혀진 전쟁’이라는 단어를 `기억의 전쟁’으로 바꾸려고 한다면서, 워싱턴에 ‘추모의 벽'을 세우는 것에 큰 의미를 뒀습니다. 

[녹취: 제임스 조론] “It's been a privilege for us to be here today… And now we're trying to change the words Forgotten War, to the war of remembrance. And so we're going to build that wall before it's over…”

추모의 벽은 살아 남은 자의 의무이며 권리라는 것입니다. 

이날 오찬 행사는 조윤제 주미대사 부부가 마련했습니다.

조윤제 대사는 이날 연설에서 “오늘은 국제사회가 침략에 맞서 싸우고 가치를 지키려던 순간”이었다며, 참전용사들의 희생이 수 십 년 동안 전 세계 민주주의를 위해 싸운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참전용사들의 빛나는 모범이 역사를 통해 울려 퍼질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주미대사관 국방무관인 표세우 장군은 VOA에, 한국을 방문하는 참전용사들은 참전의 의미를 깨닫고 오히려 고맙다는 인사를 한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표세우 국방무관] “한국을 방문해서 더 발전된 한국을 보고 특히 더 성숙한 민주주의 발전된 경제사회를 것을 한국을 보고서는 이제는 그 분들이 아, 내가 참전했던 그리고 그 때 땀과 피가 큰 의미가 있구나 하는 것을 깨닫는 순간 고맙다는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이제는 그만 한국 사람들이 나한테 그만 감사하단 말을 해라. 뭐 이제부터는 내가 한국민들에게 감사의 말을 하고 싶다…”

표세우 장군은 참전용사들과 가족들은 미-한 동맹의 근간을 이어가는 힘이자 상징이라고 강조했습니다. 

표 무관은 평균 80세인 고령의 참전용사들의 남은 시간 동안 많은 감사를 드리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한편 워싱턴의 한국전 참전 기념공원에서는 25일 한국전 전사자 추모 행사가 열렸습니다. 

행사에는 한국전 참전용사와 22개 참전국과 지원국 대표, 마크 내퍼 미 국무부 동아태 부차관보, 월터 샤프 전 주한미군사령관, 유미 호건 메릴랜드 주지사 부인 등 200여명이 참석했습니다. 

VOA 뉴스 장양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