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민 이한별(맨 왼쪽)씨와 주찬양(맨 오른쪽)씨가 28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유엔인권 최고대표사무소 보고서 발표 자리에서 북한에서의 경험을 증언했다.
탈북민 이한별(맨 왼쪽)씨와 주찬양(맨 오른쪽)씨가 28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유엔인권 최고대표사무소 보고서 발표 자리에서 북한에서의 경험을 증언했다.

북한 정부가 주민들을 보호할 의무를 지키지 못하고 있다고, 유엔이 지적했습니다. 주민들은 국가배급제도가 붕괴된 뒤 시장에 의존하고 있지만 금품 갈취 등 인권 침해에 직면해 있고, 노동권과 이동의 자유 등도 뇌물을 줄 수 있는 개인의 능력에 따라 결정된다고 밝혔습니다. 서울에서 이연철 특파원이 보도합니다.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는 28일, 북한이 적합한 생활수준을 누릴 자국민의 권리를 침해한다고 판단할 만한 합당한 근거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콜린지 인권관] “The report finds that there are reasonable ground to believe that...”

다니얼 콜린지 유엔 인권관은 이날 서울의 프레스센터에서 탈북민 214명과 면담한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한 ‘권리의 대가’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발표하면서 이같이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1990년대 중반 국가배급체계의 붕괴와 뒤이은 처참한 기근 이후 지금까지도 북한의 식량 불안정이 심각하다고 지적했습니다. 

전체 인구의 43%가 넘는 1천90만 명가량이 식량 불안정을 겪고, 1천만 명가량이 안전한 식수에 접근하지 못하며, 인구의 16%가 기본 위생 시설에 접근할 수 없어 질병위 위험이 크다는 겁니다.

특히 도시와 지방 간 격차도 여전하고, 북동 지역 주민들은 지리와 지형, 기후 조건 때문에 식량 불안정에 더욱 취약하다고 밝혔습니다.

보고서는 북한에서는 국가배급제도가 붕괴된 후 전국에 걸쳐 소규모 장마당이 출현해 그 공백을 메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현재 공식 허가를 받고 운영되는 시장이 약 400여개, 상인 수가 60만 명가량으로 파악된다고 소개했습니다.

지난 2010년 북한을 탈출해 2011년 한국에 정착한 탈북민 주찬양 씨는 이날 보고서를 발표하는 자리에서, 북한 주민들이 이제는 시장을 통해 생존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주찬양] “북한 사람들은 오래 전부터 조선노동당에 기대서는 못 살아도 장마당에 기대서는 살 수 있다며 장사를 목숨 걸고 했고, 하고 있습니다.”

주 씨는 북한 주민들이 장사를 하는 이유는 단 하나, 먹고 살기 위해서라고 말했습니다. 

콜린지 인권관은 하지만 북한 당국은 장마당 활동이 안전하고 확실한 환경 아래서 이뤄지도록 만드는 대신 법률적으로 애매한 회색지대에 놓이게 만들었다고 지적했습니다.

[녹취: 콜린지 인권관] “The report finds that the State rather than ensuring this activity can take place...”

이에 따라 사람들이 장마당 활동에 관여했다는 이유로 자의적 체포와 기소, 수감의 위험에 노출된다는 겁니다.

보고서는 북한 국가 공무원이 상업 활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을 위협하고 취약계층으로부터 돈을 갈취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아울러 북한에서는 주민들이 기본적인 권리를 행사하기 위해서는 상응하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보고서는 밝혔습니다.

국내외 여행과 국외 일자리 찾기, 국외 연락, 국외 물건 반입, 국내 상행위 등 주민들이 적합한 생활수준을 누리려 취하는 행위가 사실상 모두 범죄화되며, 이에 따라 국가 공무원의 갈취 대상이 되기 쉽다고 지적했습니다. 

함경남도 흥남 출신 탈북민인 이한별 북한인권증진센터 소장은 결국 북한 전체에 부패가 만연하는 결과로 이어졌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이한별 소장] “생계형 범죄가 증가하자 안전원과 군인 등 나라 전체가 자기보다 권력이 낮은 사람들을 착취하는 부패 현상이 증가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소장은 보위부 지도원들과 안전원들은 항상 주민들을 감시하면서 조금이라도 불법을 저지르는 사람들을 색출해 돈을 갈취했다고 말했습니다.

보고서는 노동권과 이동의 자유, 자유권 등도 공무원과 브로커에서 돈을 낼 수 있는지에 따라 행사 여부가 결정됐다고 밝혔습니다.

예를 들어, 국가제도를 벗어나 비공식 부문에서 일을 하려면 공무원에게 뇌물을 줘야 한다며, 이 때문에 생계를 꾸려 나가기도 힘든 사람들이 금전적 부담까지 지는 결과를 낳았다고 말했습니다.

이동의 자유와 관련해선, 국내외 이동으로 또 다시 체포와 처벌 위험에 노출되며, 이를 피하기 위해 뇌물을 줄 수밖에 없는 상황에 몰린다고 밝혔습니다.

아울러 안전한 이동을 위해 브로커를 고용하는데, 그 비용을 지불할 수 있는 이들만 자국을 떠날 권리를 누릴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또 여성들이 강제결혼이나 성매매 산업 등으로 인신매매를 당할 위험이 크다고 덧붙였습니다.

보고서는 아울러 북한에서는 구금되거나 처벌 받는 과정에서도 심각한 인권 침해를 당할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특히 뇌물을 지불할 능력이 있느냐에 따라 석방 여부가 결정되고, 구금 시 어떤 환경이나 어떤 대우를 받는지도 뇌물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콜린지 인권관은 북한 주민들이 국가배급제도에 기대지 않고 적합한 생활수준을 누리려고 노력할 때 국가가 법적 정책적 제도적 개혁을 통해 이를 용이하게 돕지 못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북한은 하루빨리 전면적인 법적 제도적 개혁을 시행해야 한다고 촉구했습니다.

[녹취: 콜린저 인권관] “It also recommends legislative changes so people can’t not be prosecuted...” 

합법적인 시장 활동에 참여한다는 이유로 처벌을 받지 않도록 하고 국내외를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권리를 존중하는 등 과감한 개혁을 권고한다는 겁니다.

콜린지 인권관은 북한 당국이 법치주의를 확립하고 적법 절차와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서울에서 VOA 뉴스 이연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