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로 간 아이들' 포스터 일부분.
'폴란드로 간 아이들' 포스터 일부분.

매주 금요일 북한관련 화제성 소식을 전해 드리는 `뉴스 풍경'입니다. 625한국전쟁 당시 북한에서 동유럽국가 폴란드로 보내진 북한 고아들과 폴란드 선생님들과의 특별한 인연을 담은 다큐멘타리가 미국에서 상영됐습니다. 영화 ‘폴란드로 간 아이들’, 장양희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라디오
[뉴스풍경 오디오]

[영화장면 : 송이의 노래] “우리 서로 헤어져도 울지 말자…가시 길을 걸어가도…”

평안북도가 고향인 스물 두살 처녀, 이송 씨가 춤을 추며 부르는 노래는 폴란드 남서부 작은 마을 프와코비체의 기찻길을 따라 흐릅니다. 

70여년 전 이 길을 따라 폴란드에 도착한 1500명의 북한 고아들을 맞이한 사람들은 독일 나치 정권에서 홀로코스트의 처참한 비극을 경험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영화장면 : 유제프 보로비에츠, 프와코비체 양육원 원장]

추상미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폴란드로 간 아이들’은 1951년 김일성에 의해 폴란드로 보내지고 천리마 운동의 인력동원을 목적으로 1959년 북한으로 돌아간 전쟁고아들과 폴란드 양육원 선생님들과의 특별한 인연을 다뤘습니다. 

한국 전쟁을 경험하지 않았던 추 감독에게 당시 상황이 영향을 끼치는 과정은 이렇습니다.

[영화장면: 추상미 감독 나레이션] “아이가 죽는 악몽을 꿨다. 그러면서 동시에 산후 우울증이 찾아왔죠. 그러던 어느 날 영상을 보게 되었다. 북한 꽃제비 소녀, 피골이 상접한…산천을 헤맸다. 눈물이 흘렀어요.그러다 출판사 들렀다가 북한 전쟁고아에 대한 시화를 알게된… 폴란드 아이들과 인연은 이렇게 시작됐다. “

추 감독은 폴란드 라디오 브로츠와프 지국 언론인 욜란타 크리소바타에 의해 처음 북한고아 이야기가 세상에 알려진 2007년 작 다큐멘터리 영화 ‘김귀덕’, 그리고 북한 고아와 관련한 논문을 쓴 폴란드 브로츠와프대학 이해성 교수를 통해 당시 일들을 상세히 알게 됩니다. 

추 감독 자신, 꽃제비 소녀, 폴란드 교사들, 그리고 북한 전쟁고아들. 

개인적인 어려움으로 시작된 여정이 전쟁역사의 희생자들을 통해 역사를 재조명할 기회를 갖게 했습니다.

추 감독이 폴란드로 떠날 수밖에 없었던 것은 90세의 나이가 되어서도 아이들을 떠올리며 눈물을 흘릴 수 있는 폴란드의 선생님들에 대한 질문 때문이었습니다.

[영화장면 : 추상미 감독 나레이션] “이상했어요, 왜 이상했냐면, 70년도 지난 일이고, 그런데 아이들을 회상하면서 눈물을 흘리는 감정…. 궁금했다. 아이들과 유대관계가 있었을까..”

추 감독은 결국 자신과 이들의 이야기를 담게 될 영화 ‘그루터기’ 제작을 결정하고 1년이 넘게 시나리오를 썼는데요, 다큐멘터리 ‘폴란드로 간 아이들’은 영화 ‘그루터기’ 제작에 필요한 자료를 찾고 증인들을 만나는 여정을 담고 있습니다.

추 감독은 영화 ‘그루터기’에 출연할 배우들을 찾기 위한 오디션을 열었고 그 장면도 ‘폴란드로 간 아이들’ 영화에 담겼습니다.

자강도 출생인 20대 여성 장유정 씨, 19세 탈북자 한은혜, 온유 그리고 다른 탈북청년들.

[영화장면 : 추상미 감독과 탈북청년] “옥순이 역에 지원한 송이를 만났다.”

송이와의 인연도 오디션을 통해 맺게 된 것인데요, 추 감독은 송이에게 특별한 제안을 합니다. 

[영화장면 : 추상미 감독과 탈북청년] “폴란드 리서치 가는데, 나랑 같이 가자. 사진찍고 헌팅하러 가는데 폴란드에..”

남북한 출신의 세대가 다른 두 여성은 폴란드에서 북한 고아들과 폴란드 선생님들 간의 8년간의 여정을 그대로 만날 수 있었습니다.

특별히 선생님들의 북한 고아들에 대한 구체적인 묘사 장면은 이들에게 당시 일이 어떤 의미였는지를 보여줍니다.

고령의 폴란드 선생님을 만나고 당시 고아들이 생활했던 양육원 등을 돌아보며 추 감독과 송이는 매우 특별한 시간을 갖게 됩니다. 

[영화장면 중 : 송이] “누나는 혁이가 보고싶어…울음”

무엇보다 두 사람은 자신의 상처뿐만 아니라 역사 속에 잊힌 북한 고아와 폴란드 선생님 등 모두의 상처를 마주하고 치유도 경험하게 됩니다.

탈북민 송이의 치유과정과 남한과 북한 여성의 관계의 변화를 담고 있는 것도 영화의 중요한 부분입니다.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 않던 송이가 폴란드 선생님의 눈물을 보며 함께 울었고, 시간이 흐르며 마음을 열어가는 과정은 감독과 배우로서가 아닌 남한과 북한 사람 간의 작은 통일이라고 추 감독은 말합니다.

폴란드 선생님들이 고아들에게 진정한 사랑을 베풀게 된 배경도 소개합니다.

[녹취: 추상미 감독] 지병이 있으신데, 눈물을 흘리면서 아이들을 그리워하시는데, 북한 고아들이 기차역에 도착했을 때, 내 유년 시절의 일부 같았습니다.. 선생님들이 겪었던 한국 전쟁보다 더 참혹했었고요, 시체 무더기를 밟고 학교에 가야 하는.. 그 상처가 매개돼서 자신의 일부로 보고.. 선행을 베푼 것이 아니구나, 참혹했던 유년 시절을 회복하고 구원한 경험이었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영화는 폴란드 선생님과 북한 고아들에게 일어났던 일들이 현재의 한반도에도 일어나기를 바라는 감독의 심경을 보여줍니다.

1994년 ‘롤리타’라는 연극으로 연기자가 된 추상미 씨는 연극과 뮤지컬, 그리고 TV 드라마와 영화 등에 출연했습니다.

‘폴란드로 간 아이들’은 지난해 한국에서 개봉됐고 한국의 주요 언론들이 소개하며 시선을 끌었습니다.

추 감독에 따르면 폴란드로 간 북한 고아들 이야기가 한국 사회에 처음 알려진 건 2013년 한국을 방문한 당시 브로니스와프 코모로프스키 폴란드 대통령의 증언이었습니다.

잊힌 이야기,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를 듣고 추상미 감독은 미국 여정을 시작했습니다.

추 감독은 ‘핵과, 인권유린’으로 점철되는 북한에 대한 획일화된 시각에 조금이라도 변화를 주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인권의 본질은 사랑이며 본질로 돌아가는데, 영화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며 역사를 재조명할 기회가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녹취: 추상미 감독] “현재의 북한의 고통과 현실이 한국전쟁으로 기인한 것이라, 미국은 지금 그 고통과 연결돼 있다는 거다. 그런 역사 인식을 가지고 바라봐야 한다. 갑자기 엽기적인 정권이 뚝 떨어진 것이 아니라, 지금 볼 때 이상한 그런 것이 근원이 어딘가를 봤을 때 이게 미국과 연결되어 있는 거죠. 북한의 상처가, 공포가. 그런 인식들이 미국에 생겨날 때, 단지 비난만 할 것이 아니라..”

한반도의 분단은 체제와 영토만이 아니라 영혼을 갈랐고 상처를 만들었으며 탈북민들이 그 상처를 대표한다고 말하는 추 감독은 탈북민과 북한 주민에게도 메시지를 전합니다.

탈북민들에게는 통일 후 남한과 북한의 다리 역할이 되어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북한 주민들에게는 폴란드 선생님의 눈물 어린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녹취: 추상미 감독] “65년이 지났는데, 전쟁 고아들을 그리워하면서 눈물을 흘리면서…. 그 아이들을 만나면 내가 사랑한다고 말해주세요.’라고 하셨어요. 저에게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메시지였죠. 통일이 되어야 하는 개인적인 갈망이 생겼어요. 이분의 메시지를 전해야겠다…. 아직도 사랑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미국 내 상영회는 그루터기 제작 비용을 마련하기 위한 일정이기도 한데요, 6백만 달러의 예산마련에 한인사회도 힘을 보태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뉴저지, 아틀란타, 워싱턴 디씨와 뉴욕 등 미 동부 상영회를 마친 ‘폴란드로 간 아이들’은 오는 5월 서부에서의 일정을 앞두고 있습니다. 

VOA 뉴스 장양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