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지난 2008년 6월 비핵화 의지를 과시하기 위해 영변 핵시설의 냉각탑을 폭파했다.
지난 2008년 6월 27일 북한이 비핵화 의지를 과시하기 위해 영변 핵시설의 냉각탑을 폭파했다.

매주 월요일 한반도 주요 뉴스의 배경과 의미를 살펴보는 ‘쉬운 뉴스 흥미로운 소식: 뉴스 동서남북’ 입니다. 2차 미-북 정상회담이 임박한 가운데 영변 핵 시설이 정상회담의 성패를 가를 핵심 요소로 떠올랐습니다. 최원기 기자가 전해 드립니다.

2차 미-북 정상회담이 코 앞에 다가온 가운데 핵 협상 실무 책임자인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와 김혁철 북한 국무위원회 대미특별대표가 다시 협상에 나섭니다.

전문가들은 두 대표가 ‘하노이 공동성명’과 함께 영변 핵 시설과 상응 조치를 집중 논의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한국의 민간 연구기관인 아산정책연구원 신범철 안보통일센터장입니다.

[녹취: 신범철 ] "앞서 비건 대표도 영변 핵 시설의 중요성과 협상을 시사한 바 있기 때문에 2차 북-미 정상회담이 개최되면 영변 핵 시설이 핵심 의제가 되겠죠.” 

평안북도 영변에 있는 원자력연구소는 북한의 대표적인 핵 시설입니다. 이 곳에는 핵무기의 원료인 플루토늄을 생산하는 5MW 원자로와 재처리 시설, 핵 연료봉 생산 시설, 그리고 고농축 우라늄(HEU) 생산을 위한 수 천 개의 원심분리기 등 15개의 핵 시설과 건물 390개가 빼곡히 들어 있습니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북한 핵 능력의 50%가 영변에 집중됐다고 신범철 박사는 말했습니다.

[녹취: 신범철] ”과거에는 영변이 북한 핵 능력의 전부였던 시기도 있었고 그러다가 70-80%가 됐다가, 지금은 전체의 50%도 안될 것이다, 왜냐면 영변에는 플루토늄 외에도 농축 우라늄 방식의 핵 개발을 해왔고, 영변 핵 시설이 전부가 아닐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그 걸 고려하면 영변은 50% 정도의 가치가 있을 것이다.” 

따라서 영변 핵 시설을 동결, 검증, 폐기할 수만 있다면 미국이 목표로 하는 완전한 비핵화를 위한 중대한 진전으로 볼 수 있습니다.

북한은 이미 영변 핵 시설을 폐기할 용의를 밝혔습니다.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해 9월 평양에서 한국의 문재인 대통령을 만나 ‘미국의 상응 조치에 따라’ 영변 핵 시설을 영구 폐기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입니다.

[녹취: 문재인] “북한은 동창리 엔진시험장과 미사일 발사대를 유관국 전문가의 참여 하에 영구 폐쇄하기로 했으며, 미국의 상응 조치에 따라 영변 핵 시설의 영구 폐기와 같은 추가 조치도 하기로 했습니다.”

문제는 북한이 언급한 영변 핵 시설 폐기가 조건부라는 겁니다. 북한은 미국이 제재 완화 등 상응 조치를 취할 때 영변 핵 시설을 폐기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또 북한이 말하는 영변 핵 시설 폐기가 핵 신고와 검증과 사찰을 포함한 것인지 아니면 풍계리 핵실험장처럼 자체적으로 폐기하겠다는 것인지도 불분명합니다.

과거 부시 행정부에서 핵 협상을 담당했던 크리스토퍼 힐 전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는 북한이 자체적으로 영변 핵 시설을 폐기하겠다면 큰 의미가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녹취: 힐] “These are self-selected measures that I don’t think speak to the issue of denuclearization. “

미국은 영변 핵 시설에 대한 사찰과 검증이 꼭 필요하다는 입장입니다. 검증과 사찰을 하지 않으면 북한이 얼마나 핵을 갖고 있으며 얼마나 폐기했는지 알 수 없는 ‘깜깜이 비핵화’가 된다는 겁니다. 

또 검증을 하지 않고 비핵화를 하면 자칫 북한의 핵 보유를 용인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지적입니다.

특히 미국이 주목하는 것은 영변 핵 시설 내 플루토늄과 농축 우라늄 시료 채취입니다. 원자폭탄의 원료인 플루토늄과 농축 우라늄 시료를 채취, 분석해 이를 북한이 제출한 핵 신고 자료와 대조해 보는 겁니다. 그래야 북한이 그동안 얼마나 핵 물질을 생산했으며, 이 중 얼마를 핵실험과 핵무기를 만드는데 사용했는지 알 수 있다는 겁니다. 다시 신범철 박사입니다.

[녹취: 신범철] ”이미 2008년 6자회담에서도 미국은 시료 채취와 의심 시설 방문을 요구한 반면 북한은 단순 참관만을 주장했는데, 이번에도 미국은 시료 채취와 의심 시설 방문을 통해 북한의 무기급 핵 물질의 총량을 추적할 수 있는 검증을 요구할 것입니다.”

전문가들은 미국의 비건 대표와 북한의 김혁철 대표가 영변 핵 시설 폐기와 상응 조치를 놓고 크게 두 가지 거래를 할 공산이 있다고 말합니다.

하나는 언론이 작은 거래, 즉 ‘스몰 딜(Small Deal)’이라고 부르는 것으로 이는 북한과 미국이 낮은 수준의 비핵화 조치와 낮은 수준의 상응 조치를 맞바꾸는 겁니다. 예를 들어 북한이 영변 핵 시설 동결 정도를 하고 미국은 그 대가로 대북 인도적 지원이나 연락사무소 설치를 허용하는 겁니다. 

이는 미국이나 북한 모두 별 손해를 보지 않는 거래입니다. 그러나 이런 합의에 그칠 경우 비핵화를 진전시킬 수 없는데다 북한으로서는 자신이 바라는 제재를 풀 수 없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 래리 닉시 한미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여러 여건을 감안할 때 미-북 양국이 작은 거래를 이루는 데 그칠 공산이 크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닉시]”More likely there is a small deal…”

두 번째는 큰 거래, ‘빅 딜(Big Deal)’이라고 불리는 것으로 말 그대로 미국과 북한이 통 큰 거래를 하는 겁니다. 이 경우 북한은 영변 핵 시설에 대한 철저한 신고와 검증, 폐기를 수용하고 미국은 그에 상응해 제재를 완화하는 겁니다. 

이 때 미국은 금강산 관광이나 개성공단에 대해 제재 면제 등을 해줄 가능성이 있다고 신범철 박사는 말합니다.

[녹취: 신범철]”영변 핵 시설 만으로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을 주는 것은 좀 이르다, 다만 북한이 영변 핵 시설을 포함해 전체적인 비핵화 로드맵에 합의하면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을 제공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럼 단계적 조치와 시간표가 합의되면 빅 딜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

미국과 북한이 큰 거래나 작은 거래도 아닌 ‘나쁜 거래’를 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북한이 제대로 된 비핵화 조치를 하지 않는데도 미국이 경제제재를 완화하는 겁니다. 

예를 들어, 북한이 영변 핵 시설에 대한 철저한 신고, 검증이 아니라 핵 시설 동결이나 참관 수준의 검증을 제안하고 여기에 시범적으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포기하겠다고 제안하는 겁니다. 이에 대해 미국이 금강산 관광이나 개성공단 재개를 허용한다면 이는 나쁜 거래에 해당된다고 신범철 박사는 말합니다.

[녹취: 신범철]”미국의 제재 완화를 받아내기 위해 북한이 철저한 영변 핵 시설 신고, 검증, 폐기를 안하고 대신 미국이 중시하는 ICBM을 포기하면서 개성공단, 금강산 관광 같은 제재의 핵심 부분을 받아내는 거죠.”

전문가들은 북한이 영변 핵 시설 폐기를 여러 단계로 나눠서 협상에 임할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과거 사례를 보면 북한은 자신의 카드를 잘게 쪼개 최대한 양보를 받아내거나 시간을 지연시키곤 했는데, 이번에도 그럴 수 있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 검증과 폐기의 대상을 영변과 영변 외부 시설로 분리할 수 있습니다. 핵 신고와 검증도 여러 단계로 나누고, 핵 폐기의 대상도 플루토늄과 고농축 우라늄 (HEU)같은 핵 물질, 핵 프로그램, 핵무기 등으로 세분화 할 수 있습니다. 다시 신범철 박사입니다.

[녹취: 신범철] ”영변 핵 시설도 플루토늄 시설과 농축 우라늄 시설을 분리해서, 이번에는 플루토늄만 신고, 파기하고, 이런 식으로 다음 단계에서 영변 농축 우라늄을 또 협상을 해야 하고, 잘게 쪼개서 하기 때문에..”

이 때문에 미국에서는 벌써부터 비핵화가 영변에 국한돼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핵 과학자인 데이비드 올브라이트 과학국제문제연구소장은 북한 전역의 모든 플루토늄과 고농축 우라늄 (HEU)을 폐기해야 하며, 영변 핵시설에 국한돼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녹취: 올브라이트 전 소장] “Step by step approach...It’s just part of their nuclear weapons production complex and they can’t sell if off piecemeal.”

영변 핵 시설을 검증, 폐기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미국은 지난 30년 간 여러 차례에 걸쳐 영변 비핵화를 시도했지만 모두 실패했습니다.

지난 1990년대 초 북한은 영변 핵 시설 내 5MW 원자로에서 원자폭탄의 원료인 플루토늄을 추출했습니다. 그러자 당시 미 클린턴 행정부는 1994년 10월 제네바 합의를 통해 영변 핵 시설을 동결하고 그 대가로 북한에 경수로를 제공하기로 했습니다.
 
그 후 핵 동결이 유지되던 중 2002년 부시 행정부는 북한이 비밀리에 우라늄 농축을 하고 있다며 제네바 합의를 파기했습니다. 그러자 북한은 영변 핵 시설을 재가동했습니다.

2006년 10월 북한이 1차 핵실험을 감행하자 당시 부시 행정부는 6자회담을 통해 영변 핵시설 동결과 폐기 내용을 담은 9.19 공동성명을 마련했습니다. 또 북한은 2008년 영변 핵시설 가동 기록을 담은 1만8천쪽 분량의 자료를 미국에 넘겨주고 영변 원자로의 냉각탑도 폭파시켰습니다.

그러나 이후 북한이 검증을 거부하고 핵실험을 하면서 9.19 공동성명은 사문화 됐습니다.

오바마 행정부 시절인 2012년 미국과 북한은 핵실험과 영변 우라늄 농축 활동을 중단한다는 내용을 담은 2.29 합의를 체결했습니다. 그러나 이 역시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로 무산됐습니다. 

미국의 비건 대표와 북한의 김혁철 대표가 30년에 걸친 실패를 극복하고 영변 비핵화를 이뤄낼지 주목됩니다.

VOA뉴스 최원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