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 한인 북송사업으로 북한에 건너갔다 탈북한 에이코 가와사키 씨가 VOA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재일 한인 북송사업으로 북한에 건너갔다 탈북한 에이코 가와사키 씨가 VOA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유엔 북한인권 조사위원회(COI)가 납치 행위로 규정한 일본 내 한인 북송사업이 시작된 지 내년으로 60주년이 됩니다. ‘VOA’는 오늘과 내일 두 차례에 걸쳐 이 사업 피해자들의 사연을 전해 드립니다. 오늘은 북송 사업과 관련해 세 건의 법적 절차를 제기 중인 에이코 가와사키 씨의 이야기를 일본 도쿄에서 김영권 기자가 보도합니다. 

지난 14일 도쿄에 있는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 본부 앞.

한 여인이 확성기를 들고 건물을 향해 북송 재일 한인들을 돌려보내라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여인의 이름은 에이코 가와사키. 

[녹취: 에이코 씨] “저의 이름은 가와사키 에이코라고 합니다. 17살 때 북한으로 갔습니다. 43년을 북한에서 살다가 2003년에 탈북해서 2004년에 일본으로 돌아왔습니다.”

에이코 씨는 1959년부터 1984년까지 재일 한인 북송사업으로 북한에 건너간 9만 3천 340명 중 한 명입니다. 

일본 국적을 취득하고 이름도 일본식으로 개명한 에이코 씨는 북한을 ‘지상낙원’이라고 속여 재일 한인들을 사실상 유인 납치한 북한 정부를 상대로 3건의 법적 절차를 밟고 있습니다.

[녹취: 에이코 씨] “3단계예요. (일본변호사연합회에 제출한) 인권구제 신청서가 첫 번째, 두 번째는 금년도 2월에 네덜란드 헤이그에 갔었어요. 헤이그의 국제형사재판소(ICC)에 내 개인의 이름으로 김정은과 조총련의 허종만(의장)을 제소했어요. 이것은 수락됐어요. 그러나 언제 재판이 어떻게 진행될지는 미정이에요. 그리고 (세 번째가) 이 재판이에요”

에이코 씨가 말한 재판은 지난 8월 에이코 씨를 비롯해 북한에서 돌아온 5명이 도쿄지방재판소에 북한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을 말합니다.

북한 정부가 북한을 지상낙원으로 속여 재일 한인 가족을 귀국하도록 유인한 뒤 굶주리게 했을 뿐 아니라 신분 차별, 이동의 자유 등 가장 기본적인 인권까지 침해했기 때문에 소송을 제기했다는 설명입니다.

북한 정부는 지난 1959년 일본 정부와 ‘재일 한인 북송에 관한 협정’을 체결한 뒤 일본 내 친북단체인 조총련을 통해 대대적인 북송사업을 했습니다. 

유엔 북한인권 조사위원회(COI)는 최종 보고서에서 북송 사업을 납치로 분류해 규모와 과정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보고서는 특히 이 사업이 일본적십자사의 지원 속에 이뤄졌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에이코 씨는 일본변호사연합회에 인권구제 신청서를 제출한 이유도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녹취: 에이코 씨] “일본 정부, 북한 정부, 조총련, 일본적십자사, 북한적십자사, 그리고 국제적십자사 이 6개 기관이 힘을 합해 귀국사업이란 게 이뤄졌어요.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인권구제 신청서를 냈을 때 대상을 6곳으로 했어요.”

일본변호사연합회는 옛 조총련 간부와 북한에서 돌아온 북송사업 피해자 등 11명이 제출한 신청서를 접수한 뒤 인권 침해에 해당된다고 보고 추가 조사를 하고 있습니다. 

에이코 씨는 이를 통해 2가지 요구를 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에이코 씨] “요구 조건은 두 가지예요. 첫째는 귀국사업이 잘못이었다는 것을 매 기관마다, 일본 정부는 일본 정부대로, 적십자사는 적십자대로, 각 자기 단위에서 성명을 발표하든지 기자회견을 하던지 그 어떤 방법으로라도 국제사회에 대고 잘못이었다는 것을 발표하라는 것! 두 번째는 귀국선을 타고 간 9만 3천 340명 본인과 배우자 및 2세, 3세까지를 일본만이라도 좋으니까 출입의 자유를 북한 정부가 인정하게 해 달라는 것.”

일본 정부는 그러나 이 사안에 대해 우려한다고 밝히면서도 구체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피해자들의 소송을 후원하는 있는 ‘북조선 귀국자의 생명과 인권을 지키는 모임’의 사에키 히로아키 대표는 ‘VOA’에, 북송 사업을 납치로 보지 않는 인식이 일본 주류사회에 팽배해 있다고 지적합니다.

일본 정치인들과 언론은 피해자들이 자진해서 북한에 갔다는 인식과 당시 일부 조총련 간부들이 일본 공산당과 연대해 국내에서 사회주의 혁명 활동을 했기 때문에 귀국자들에게 동정심이 없다는 겁니다. 

사에키 대표는 그러나 유엔도 이를 납치로 인정했고 피해자들이 속아서 갔기 때문에 북송사업 피해자와 일본인 납북 문제는 동등하게 다뤄져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지난 15일 개최한 납치 관련 대규모 국제회의에서 북송사업 문제는 제기하지 않았습니다. 

에이코 씨는 그러나 사이키 씨와 도이 가나에 휴먼 라이츠 워치 일본지국장 등 자신들을 돕는 일본인들이 있어 소송 과정이 외롭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가나에 지국장은 앞서 성명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재일 한인 북송사업 피해자들의 송환을 북한 정부에 공개적으로 제기해야 한다고 촉구했었습니다. 

에이코 씨는 지금도 북한에서 “째포”로 불리며 차별을 받고 있을 귀국자들을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고 말했습니다. 

17살에 사회주의를 몸소 배우고 체험하겠다며 홀로 북송선에 올랐다가 수 십 년 간 그런 차별을 자신이 직접 받았기 때문입니다.

[녹취: 에이코 씨] “김일성이가 오라오라 했거든요. 오시오 우리는 다 맞을 준비가 됐습니다 하고. 조총련도 그렇게 선전하고 우리를 (북한으로) 내 보냈죠. 그런데 북한 땅에 발을 딱 들여 넣고 보니까 북한 사람들하고 귀국자들 사이에는 계급적 차이가 딱 선이 그어져 있는 거에요.”

북한은 6·25 한국전쟁 이후 노동·기술력 보강을 위해 재일 한인 귀국사업을 적극적으로 펼쳤지만, 주민들의 사상오염 등을 우려해 초기에 격리 조치 등 다양한 차별정책을 펼쳤다고 옛 조총련 간부들과 탈북민들은 지적합니다.

[녹취: 에이코 씨] “아무리 작은 단위라도 단위장은 귀국자가 될 수 없었고. 사무원도, (정식) 학교 교원도 못 하고, 경찰도, 군대도 못 가고, 귀국자들은 다만 자기 노동력을 사회적으로는 아예 딱 제한돼서.”

유엔 북한인권 조사위원회도 최종 보고서에서 귀국 피해자들이 북한을 떠날 권리, 자유롭게 이동할 권리를 박탈당하고 신분 차별까지 받고 있다고 지적했었습니다.

에이코 씨는 1990년대 `고난의 행군' 때 수많은 사람이 굶어 죽어가는데 핵·미사일을 개발하고 금수산기념궁전을 짓는 북한 정권을 보면서 북한에 대한 모든 미련을 버리고 탈출을 결심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에이코 씨] “김일성이 죽자 김정일은 백성들을 다 버렸어요. 아시다시피 핵,미사일, 그 다음에 한 가지 뭐 했는가? 자기 아버지 무덤을 만들었어요. 대대적으로 공사를 시작했거든요. 그 금수산태양궁전이 원래 뭐였어요? 금수산의사당! 북한의 국회였어요. 한 개 나라의 국회를 아비의 무덤으로 만드는 경우가 세상에 어디 있어요? 그걸 보고 아 더 이상 이 나라에 있을 필요가 없다.”

우여곡절 끝에 일본으로 돌아온 지 14년째. 에이코 씨 처럼 북한을 탈출해 일본에 돌아온 재일 한인 가족들이 200여 명에 달하지만, 대부분 북한의 가족과 다시 생이별한 상황입니다. 이제 70대 할머니가 됐지만, 에이코 씨가 북한 정부를 상대로 한 투쟁을 멈출 수 없다고 말하는 이유입니다. 
 
[녹취: 에이코 씨] “우선은 북한 정권이 일본에서 간 사람들에 대해 차원이 다른 인권 침해를 가했다는 것을 세상이 알길 바라는 것, 이 문제를 계속 추진해서 북한 전체의 인권 문제도 앞으로 전진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도쿄에서 VOA 뉴스 김영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