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 참전용사인 미 해병대 출신 스티븐 옴스테드 예비역 중장(오른쪽)과 조지 쇼델 전 상사가 장진호 전투 기념비를 둘러보고 있다.
한국전 참전용사인 미 해병대 출신 스티븐 옴스테드 예비역 중장(오른쪽)과 조지 쇼델 전 상사가 장진호 전투 기념비를 둘러보고 있다.

치열했던 장진호 전투에 참전했던 87살의 노병이 한국전 발발 68주년을 맞아 버지니아에 있는 장진호 전투 기념비를 찾았습니다. 19살 이등병으로 원산에 투입된 뒤 40여년 동안의 군 생활을 마치고 3성 장군으로 예편한 스티브 옴스테드 장군인데요. 이국 땅에 묻고 온 전우들과 참혹했던 전쟁의 기억을 떠올렸습니다. 미 국방부 부차관보 등을 지낸 옴스테드 장군을 김영남 기자가 만나봤습니다. 

버지니아 콴티코에 위치한 해병대 박물관. 

백발의 노병은 전장에 누워있는 전우들을 기억하기 위해 26일 장진호 전투 기념비를 찾았습니다. 

[녹취: 옴스테드 장군] “Frankly, I must have missed some classes in high schools or college, I didn’t know much about Korea, I knew where Korea was, but I didn’t know much about it at all, but I think it was turning point of my life, be part of the organizations that got called up to help our fellow people who we didn’t really know that well, but we knew we had to do it and we should do it, and we did do it.”

1950년 10월 알지도 못하는 나라의 국민을 도우라는 명령을 받고 원산에 투입됐던 19살 청년. 미 해병대 이등병으로 한국전쟁에 참전한 뒤 3성 장군으로 예편한 스티븐 옴스테드 장군입니다. 

후퇴는 없고 공격만 하면 된다는 지시에 장진호 인근에서 전투 준비를 하던 이등병을 기다리고 있던 적군은 엄청난 규모의 중공군이었습니다. 

한국 전쟁 참전용사 출신인 스티븐 옴스테드 미 해병대 전 중장(오른쪽)이 26일 버지니아에 위치한 해병대 박물관의 장진호 전투 기념비 앞에서 VOA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한국 전쟁 참전용사 출신인 스티븐 옴스테드 미 해병대 전 중장(오른쪽)이 26일 버지니아에 위치한 해병대 박물관의 장진호 전투 기념비 앞에서 VOA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녹취: 옴스테드 장군] “My unit was engaged in North Korea in Wonsan chasing guerillas, we didn’t have much chance …we were just assigned to the unit right away. Most of the first division Marine was already up north where we call the reservoir, our unit had to go up and join them...” 

생사의 고비를 넘으면서도 참을 수 없이 괴로웠던 건 영하 30도 아래로 떨어지는 추위. 옴스테드 장군은 몸과 장비를 움직일 수 없게 만들 정도로 살을 에는 추위를 생생히 기억합니다.

미 해병 1사단은 미 10군단과 함께 동해안을 따라 북진했습니다. 중공군의 개입 후에는 장진호에서 중공군 포위망을 뚫고 흥남 철수를 성공시켰습니다. 

중공군 12만 명의 공격을 미 해병 1만2천여명이 막아낸 뒤 흥남으로의 퇴로를 만들었지만 미군의 피해 역시 매우 컸습니다. 

살아남은 전우들과 그 날 밤 올려다본 하늘엔 큰 별이 떠 있었습니다. 8각 모양의 장진호 기념비 위에 올려진 ‘고토리의 별(함경남도 장진군 고토리)’은 그래서 달았다고 했습니다. 

[녹취: 옴스테드 장군] “We were very fortunate, and the monument that we are standing in front of now tries to depict what we call star of Kotori. And for about three or four day period, we were having snow storm, and our air support was very modes not at all they couldn’t see it. The night we were moving South, we were just outside of Kotori, 1 in the morning, the clouds cleared, and that was tremendous moral builder. Wow, now bring those planes back.” 

옴스테드 장군은 장진호 전투 중 3~4일 동안의 눈보라가 그치고 구름이 개기 시작한 그날 새벽을 떠올렸습니다. 밝은 별이 뜬 뒤 공군의 도움으로 중공군의 포위망을 뚫었던 순간입니다. 

팔각모양의 장진호 기념비 위에 '고토리의 별' 장식이 올려져 있다.
팔각모양의 장진호 기념비 위에 '고토리의 별' 장식이 올려져 있다.

그 날을 기념하기 위한 ‘고토리의 별’은 그래서 기념비 뿐 아니라 전우들의 가슴에도 평생 달려있습니다. 

미국의 장진호 참전용사 모임의 이름인 ‘초신 퓨(Chosin Few)’. 장진의 일본어 표현인 초신, 그리고 살아남은 소수의 병사를 의미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68년이 지나 그 날을 기억하는 이들은 더욱 줄었습니다. 옴스테드 장군이 “살아남아 운이 좋았다”고 했던 전우들입니다.

[녹취: 옴스테드 장군] “I don’t know, I suspect that there are so few of us that are left. It is one thing. And there were so few of us when we actually came out too. Chosin Few was first formed in 1953, we had about 5,000 people and as George says it is 1,100 and 1,500 people left now. The organization is shrinking as we talk, but we are all lucky to be here.” 

옴스테드 장군은 장진호 기념비 건너편에 있는 작은 벤치에 앉았습니다. 세 명이 겨우 앉을 수 있는 크기입니다. 10년 후에는 장진호 참전용사 모두 이 벤치에 다 앉을 수 있게 될 것이라고 걱정합니다. 

그래서 옴스테드 장군에게 ‘잊혀진 전쟁’은 듣기 불편한 표현입니다. 잊혀진 전쟁이 아니라 잊혀진 승리라는 겁니다. 

[녹취: 옴스테드 장군] “That bothers me the phrase forgotten war. First of all, it was forgotten victory, if you want to put it that way, and you know we are getting older. Everybody is in 90s or late 80s, which is well beyond the anticipated lifespan of most people. I am afraid that in 10 years from now you will be able to get everybody from Chosin Few from one spot here, one bench.” 

옴스테드 장군은 미국은 한국전쟁을 통해 한국이라는 친구이자 성공적인 경제 파트너를 갖게 됐다며 이는 양국 관계에 가장 강력한 힘이라고 강조했습니다. 

1950년 당시 20살이 채 안 된 미군들에게 한국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어보면 그게 누구냐고 되물었을 테지만 전쟁을 통해 지금과 같은 관계를 맺게 됐다는 겁니다. 

옴스테드 장군은 한국 사람들을 친구라고 불렀습니다. 지금까지도 크리스마스 때가 되면 편지를 주고 받는다고 말했습니다.

옴스테드 장군(왼쪽)과 쇼델 전 상사가 문재인 한국 대통령이 식수한 나무 옆을 지나 장진호 기념비로 향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7월 기념비 근처에 산사나무 한 그루를 기념 식수했다.
옴스테드 장군(왼쪽)과 쇼델 전 상사가 문재인 한국 대통령이 식수한 나무 옆을 지나 장진호 기념비로 향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7월 기념비 근처에 산사나무 한 그루를 기념 식수했다.

미-북 정상회담과 미-한 군사훈련 유예 결정 등 정치적 사안에 대해서는 말하고 싶지 않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미국 대통령이 북한 지도자와 만난 건 훌륭한 일이고 만남을 통해 작은 문제가 재앙으로 이어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옴스테드 장군] “The basic thing about the president of the United States getting together with the leader of North Korea, I think it was wonderful. When you are face to face with a guy, you can settle some little minor things that could have blown up and be disasters. So I think that two leaders together I am interested to see what we are going to do in months and years to come.” 

옴스테드 장군은 북한에서 전투 당시 봤던 대규모 미군 공동 묘지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들의 유해가 미국으로 돌아오는 건 자신의 마음을 따뜻하게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들을 집으로 돌아올 수 있게 북한이 허락한 것은 훌륭한 일이라고 거듭 강조했습니다. 

[녹취: 옴스테드 장군] “That warms my heart. I, George, and guys who were up in the North, there were some mass graves up there, and my post active duty services evaluated around the world where we have our soldiers fallen and just to hear that North Koreans are going to allow us to bring some of those boys home that is wonderful.” 

옴스테드 장군에게 한국전쟁 참전은 유엔이 불법 침략으로 규정한 데 따른 대응이었습니다. 그는 미국과 다른 나라들의 참전 결정을 “고귀한 행동”으로 불렀습니다. 

하지만 68년 전으로 돌아가 한국전쟁에 다시 참전해야 한다면 같은 선택을 하겠느냐고 묻자 “난 당시 하사관이 지시한 대로 한 것뿐”이라며 웃기만 했습니다. 

[녹취: 옴스테드 장군] “What? Me? I did what sergeant told me to do.” 

전쟁에 대한 옴스테드 장군의 기억은 끝으로 흥남 철수 당시 남쪽으로 피신한 10만 명의 민간인에게 닿았습니다. 그러면서 이들을 훌륭한 시민으로 만든 한국 정부가 훌륭한 일을 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옴스테드 장군] “When we evacuated from Heungnam, we took approximately 100,000 civilians with us. And I think that the government of South Korea did wonderful job …them so that they can be good citizens down South. My hats off to whoever made that decision, and the control and program that they have after we got everybody down south.” 

또 당시 민간인의 철수 결정을 내린 사람과 이들을 한국에서 돌봐준 이들 모두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콴티코 해병대 박물관 내 장진호 전투의 방의 모습.
콴티코 해병대 박물관 내 장진호 전투의 방의 모습.

​​야외에서 인터뷰를 마친 87살의 노병은 몸을 식히자며 해병대 박물관 안에 있는 한국전쟁 기념관 안으로 들어섰습니다.

기념관 안에 있는 ‘장진호 전투의 방’은 그 해 겨울을 기억하기 위해 다른 전시관보다 쌀쌀한 온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VOA 뉴스 김영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