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싱가포르 카펠라 호텔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단독 정상회담에 이어 확대 정상회담이 열렸다. 미국에서는 마이크 폼페오 국무장관과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존 켈리 비서실장이, 북한에서는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과 ...
12일 싱가포르 카펠라 호텔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단독 정상회담에 이어 확대 정상회담이 열렸다. 미국에서는 마이크 폼페오 국무장관과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존 켈리 비서실장이, 북한에서는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과 ...

지난 12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만나 회담한 뒤 4개 항의 공동성명을 발표했습니다. 과거 양국 간 이뤄졌던 합의들과 비교해 내용면에서 비슷하지만 구체적이지 못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요,기존 합의들은 어떤 내용을 담았고, 이후 어떤 과정을 거쳐왔는지 박형주 기자가 살펴봤습니다.

미국과 북한이 핵 문제와 관련해 체결한 주요 합의는 크게 네 번.

1994년 제네바 합의, 2005년 9.19 공동성명, 2012년 2.29합의 그리고 이번 6.12 '싱가포르 공동성명'입니다.

세부 내용은 다르지만 큰 틀에서 모두 '북한의 비핵화'와 '미-북 관계 정상화' 등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번 '싱가포르 공동성명'은 '미-북 간 새로운 관계 수립',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그리고 '미군 유해 송환' 등 모두 4개 항으로 구성됐습니다.

기존 합의들과 달리 양국 정상이 회담 뒤 서명했다는 점에서 무게감이 크지만, 내용이 구체적이지 않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입니다.

또 '비핵화' 관련 부문이 항상 1항으로 제시됐던 과거와 달리3항에 등장한 것도 특징입니다.

1994년 클린턴 행정부와 북한 김정일 정권이 합의한 '제네바 합의'는 북한의 핵개발 시설 폐기와 그에 따른 경수로, 중유 제공이 골자입니다. 또 양국 관계 정상화와 한반도 평화와 완전을 위해 노력한다는 목표도 포함됐습니다.

'미군 유해 송환' 부분을 제외하면 이번 '싱가포르 공동성명'에서 명시한 '관계 정상화, 한반도 평화, 비핵화' 모두 기존'제네바 합의'에 담겨있던 약속들입니다.

특히 제네바 합의의 경우 모든 항 마다 세부 조항을 둬 서로가 해야 할 일을 구체적, 단계적으로 규정했습니다. 무엇보다 경수로 건설 진척 상황에 국제기구의 사찰과 검증, 핵 설비 폐기, 핵연료 국외 반출 시기를 연동하는 '행동 대 행동' 원칙도 제시했습니다.

나아가 '정치적, 경제적 관계의 완전 정상화를 추구한다'로 표현된 2항에서는 경제 관련 제한 완화, 상호 연락사무소 개설, 대사급 외교 관계 수립 등 구체적인 목표도 명시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계 정상화'와 '한반도 평화' 부문은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했습니다. 핵 관련 조항을 이행하는데 차질을 빚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2000년 10월 클린턴 행정부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특사로 백악관을 찾은 조명록 차수와 함께 발표한 '미-북 공동 코뮈니케'를 계기로 관계 급진전의 계기가 잠시 마련되기도 했습니다.

'코뮈니케'에는 양국이 상호 적대 의사가 없음을 선언하고,외교관계 정상화, 경제협력은 물론 종전 논의를 위한 4자회담을 추진한다는 내용이 포함됐습니다. 제네바합의에 명시된 비핵화 의지도 재확인했습니다.

또 북한이 미군 유해 발굴에 협조해준 것에 대해 미국이 감사를 표명하는 내용도 포함됐습니다. 이번 싱가포르 공동성명4항에 담긴 '미군 유해 송환' 작업은 1990년대부터 이미 진행됐지만, 미-북 관계에 따라 부침을 거듭했습니다.

'코뮈니케' 채택과 함께 빌 클린턴 당시 대통령의 방북과 양국 수교도 추진됐습니다.

하지만 수교협상이 난항을 겪고, 임기 말 클린턴 대통령의 방북에 대한 반대 여론도 많아 결국 성사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대북 강경 기조의 부시 정부가 들어서면서 '코뮈니케'는 사문화 됐습니다.

또 2002년 고농축우라늄 개발 의혹 속에 북한이 핵동결 해제 선언을 하고, 급기야 2003년 제네바 합의는 파기됐습니다.

이후 2005년 6자회담에서 지난한 협상 끝에 9.19 공동성명이 타결됐습니다.

6개국은 '한반도의 검증 가능한 비핵화를 평화적으로 달성한다'데 만장일치로 뜻을 모았습니다.

또 북한의 모든 핵무기 파기, 핵 계획 포기와 더불어 핵확산금지조약(NPT)와 국제원자력기구(IAEA)로의 복귀를 명시했습니다.

이와 함께 미-북, 북일 관계 정상화, 대북 에너지 지원, 한반도 평화체제 협상 개시 등도 약속했습니다. 미국이 북한을 침공하지 않겠다는 내용도 포함됐습니다.

9.19 공동성명 역시 '미군 유해 송환'을 제외한 '싱가포르 공동성명'의 내용을 모두 포함하고 있고, '비핵화'와 관련된 부분도 구체적입니다.

하지만 합의 직후 북한과 거래한 마카오의 방코델타아시아 은행이 미국의 제재를 받게 되고, 북한은 다음해 10월 첫 핵실험을 강행했습니다.

이후 6자회담 참가국들은 북한의 핵실험 위기를 돌파하고9.19 공동성명의 불씨를 살리기 위해 다시 협상 끝에 2007년 2.13 합의를 이뤘습니다.

이 합의는 북핵 폐기를 위한 단계적 조치가 구체적으로 명시됐고, 북한이 이를 제대로 이행하면 상응하는 조치를 취하는 것이 골자였습니다.

합의에 따라 이듬해 6월 북한은 영변 원자로 냉각탑을 폭파했고, 10월 미국은 북한을 테러지원국에서 제외시켰습니다.

하지만 핵신고 검증방법을 두고 당사국들 간 이견을 좁히지 못했고, 북한이 검증 의정서 작성도 거부하면서 결국 그 해12월 6자회담은 중단됐습니다.

다음해 북한은 연이어 미사일 발사와 2차 핵실험을 실시하며9.19 공동성명, 2.13 합의도 사실상 사문화됐습니다.

2011년 7월 미-북 고위급대화가 다시 시작됐고 다음해 2월 결과물인 2.29 합의가 도출됐습니다.

이 합의에는 북한이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 영변 우라늄농축활동을 임시 중단하고, 미국은 24만톤에 달하는 대북 식량지원에 나서겠다는 새로운 내용이 포함됐습니다.

하지만 북한이 합의 발표 2주만에 로켓발사 계획을 밝히고,실제로 두 달 뒤 장거리 로켓 은하 3호를 쏘아올리면서 합의는 다시 수포로 돌아갔습니다.

이처럼 지난 25년 동안 미국과 북한은 핵 문제를 놓고 여러 차례 대화에 나섰고, '합의'와 '파기'를 반복해 왔습니다.

이번 '싱가포르 공동성명'에는 당초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 즉 CVID가 명시될 것이라는 일각의 기대와 달리 "'4.27 판문점 선언'을 재확인하고, 북한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위해 노력하기로 약속한다"에 그쳐 미흡하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동시에 양국 정상이 직접 만나 서명한 합의인 만큼 이행 의지를 기대할 수 있고, 추후 예정된 고위급 협상을 통해 더 구체적인 합의들이 도출될 수 있다는 전망도 있습니다.

VOA 뉴스 박형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