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한국 경기도 서부전선에서 바라본 북한 군 초소. (자료사진)
한국 경기도 서부전선에서 바라본 북한 군 초소와 북한 군인. (자료사진)

한국군의 대북 확성기 방송 중단에 대해 휴전선을 넘어 한국에 망명한 전직 북한군 병사들은 아쉬움을 나타냈습니다. 열악한 병영 생활에 지친 북한의 신세대 병사들에게 낙이 없어졌다는 지적입니다. 인권단체들과 탈북민들은 북한 군인들이 정보와 인권 탄압의 사각지대에 놓인 “수감자”와 같다고 지적합니다. 김영권 기자가 보도합니다. 

[녹취: 김광석의 이등병의 편지] “집 떠나와 열차 타고 훈련소로 가는 날. 부모님께 큰절하고 대문 밖을 나설 때. 가슴 속에 무엇인가 아쉬움이 남지만, 풀 한 포기 친구 얼굴 모든 것이 새롭다…”

한국 가수 김광석의 노래 ‘이등병의 편지’를 듣고 계십니다.

이 노래는 북한에서 이등병 계급에 해당하는 ‘상등병의 편지’란 제목으로 군인들 사이에 인기가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한국 국군심리전단에 따르면 이 노래 등 100여 곡이 23일 중단된 한국군의 대북 확성기 방송을 통해 지난해 북한 군인들에게 송출됐습니다.

몇 년 전 휴전선을 통해 한국에 망명한 북한군 출신 정대한 씨는 24일 VOA에 한국 정부의 확성기 방송 중단 발표를 듣고 안타까웠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정대한 씨] “저는 그걸 듣고 온 친구들이 있기 때문에 아쉬운 생각이 듭니다. (한국에) 넘어온 동생들을 만나보면 자기는 그 방송을 듣고 왔는데 그 방송을 종료한다고 하니까 거기에 있는 친구들이 이제는 못 들을 것 같다고 생각을 하니 저도 좀 아쉽네요”

북한 정부가 아니라 장마당에 의존해 성장한 장마당 세대 군인들은 입대 전에 이미 한국 가요와 드라마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한국의 대북 확성기 방송에 친밀감이 컸다는 겁니다. 

실제로 지난해 11월 총상을 당한 채 한국에 망명해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았던 24살의 북한군 병사 오청성 씨도 한국 정부 합동 조사에서 망명 전 ‘드림하이’ 등 한국 드라마를 수시로 시청했다고 진술했었습니다. 

[녹취: 한국 드라마 ‘드림하이’ 주제곡] “난 꿈을 꾸죠. 힘들 때면 난 눈을 감고 꿈이 이뤄지는 그 순간을 계속 떠올리며 일어나죠…”

이 드라마는 북한의 중학생에 해당하는 한국의 고등학생들이 인기 스타를 꿈꾸며 서로 우정을 쌓으며 경쟁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북한군으로 복무 중 1979년 한국에 망명한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은 자신의 망명 당시에도 한국의 대북 확성기 방송이 북한 군인들에게 인기가 높았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안찬일 박사] “노래가 그때는 K팝은 없었고 찔레꽃이니 하는 흘러간 노래 70, 80 이런 노래를 북한 사람들이 좋아했죠”

안 소장은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으로 한국군의 대북 방송이 중단 됐을때에도 동료들이 많이 안타까워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안찬일 소장] “7·4 남북공동성명으로 방송을 중단하게 됩니다 하니까 우리 북한 군인들이 다 자기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처럼 많이 안타까워했습니다. 남한 방송을 못 듣게 되니까. 그런데 또 지금 그런 상황이. 저는 서울에서 그런 상황을 접하지만, 휴전선의 북한 군인들은 대단히 아쉬워할 겁니다.”

휴가도 없고 연애도 하지 못한 채 10년 이상을 열악한 군대에서 보내야 하는 북한 군인들에게 한국의 대북 확성기 방송은 가뭄의 단비 같은 존재란 겁니다. 

휴전선 인근 부대에서 복무하고 제대한 뒤 탈북한 최 모 씨는 과거 VOA에 자대 배치를 받은 뒤 한국 방송을 들었을 때는 많은 공포와 두려움이 있었지만, 1~2년이 지나면 대개 익숙해져 오히려 방송 시간을 기다리곤 했다고 말했습니다.

정대한 씨는 북한군이 이번 한국군의 확성기 방송 중단 이유를 병사들에게 왜곡해 선전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정대한 씨] “(방송이) 나오다가 안 나오고 하면 북한 당국에서는 악용을 하죠. 그냥 (한국군이) 방송을 종료했다고 하는 게 아니라 우리의 어쩌고저쩌고 핵보유국! 군인들에게 이렇게 선전하겠죠. 이제는 핵보유국이기 때문에 걔들도 그런데 겁을 먹고 확성기 방송을 종료했다고 교육할 것 같아요.”

정 씨는 또 남북관계가 개선된다고 해서 열악한 북한 군인들의 병영 환경이 변할 가능성도 거의 없다며 북한 군인들은 늘 정보와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국제사회에서는 북한의 인권 문제를 얘기하면 정치범수용소와 표현·이동의 자유 등 가장 보편적인 인권 문제를 지적하지만, 여러 고위 탈북민들은 군인에 대한 인권 문제가 가장 심각하다고 주장합니다.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는 지난 2010년 워싱턴에서 한 강연에서 군대가 북한 최악의 인권 탄압 장소라고 지적했었습니다.

[녹취: 황장엽 전 비서] “북한에서 (정권에 대항해) 일어날 수 있는 게 누구인가? 군대입니다. 아무리 세뇌 교육을 자꾸 해도 군대는 원한이 뼈에 사무쳐 있거든. 한창 공부할 나이에 10년, 13년씩 김정일을 위해 죽는 연습만 하다 끝나게 되면 또 탄광 등에 보내 또 그 생활을 하게 하거든. 일생을 망치게 한다고. 이 보다 더 큰 인권 유린이 없어요.”

한국의 민간단체인 북한인권정보센터는 지난 2월 북한군의 열악한 인권실태를 폭로한 보고서에서 군인을 ‘수감자’에 비유했습니다. 

이 단체의 이사장인 이재춘 전 러시아주재 한국대사는 “북한 군인들은 상관의 욕설과 구타는 물론 가혹한 훈련, 국가적 봉사 동원(강제노동)으로 나날이 몸이 허약해져 질병에 시달리거나 사망에 이르기도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런데도 군인들은 자신들을 보호하고 책임져야 할 “군 지도부나 김정은 정권이 아닌 남한과 미국에 대해 강한 적개심을 가진 게 현실”이란 겁니다. 

휴전선을 통해 망명한 정대한 씨는 최근 책으로 나온 이 보고서를 읽으면서 북한군에 복무했던 악몽이 떠올라 마음이 불편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정대한 씨] “되게 마음이 안 좋더라고요. 군복 입은 수감자! 정말 죄수 같은 취급을 받았다고 생각하니까 마음이 안 좋았죠. 책을 보니까 그때 기억이 다시 한번 떠오르고. 어찌 보면 그때 정말 짐승같이 취급 받았던, 잊고 있었던 기억들이 다시 한번 상기되는 순간이었던 것 같아요. 만감이 교차하더라고요.”

게다가 한국 군대를 여러 번 방문해 받은 남북 군대 환경의 큰 격차도 충격적이었다고 말합니다.

[녹취: 정대한 씨] “전투복이 두 벌이고 전투화가 두 켤레고 양말도 신을 수 있고. 속 내의도 집에서 갖다가 입을 수 있고. 그런 것들이 굉장히 충격적이었고. 내무반도 엄청 좋은 것을 보고 너무 충격적이었어요. 지금은 너무 당연해진 거죠”

남북한 군대는 병영 환경뿐 아니라 복무 기간과 월급에서도 비교조차 하기 힘들 정도로 큰 격차가 있습니다.

한국 육군 병사의 복무 기간은 21개월로 평균 10년인 북한군 병사와 몇 배의 차이가 있으며 북한군 상급병사에 해당하는 한국군 병장의 올해 월급은 미화로 거의 400달러(41만 원)에 육박합니다. 

북한군 상사 출신 탈북민 권 모 씨는 앞서 VOA에 몇 달러에 불과한 월급을 받는 북한군 직업 군인들이 월급 수천 달러를 받는 한국 직업 군인들의 실상을 듣는다면 믿지 못하거나 큰 충격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권 모 씨] “상상을 초월하는 거죠. 연봉이 7만 불이다 8만 불이다. 이렇게 하면 북한의 군인들이 위급이나 좌급이 자극을 안 받을 수 없다고 봅니다.”

유엔 북한인권 조사위원회(COI)는 앞서 최종보고서에서 이런 환경 때문에 북한 군대에 부정부패가 만연돼 있다고 지적했었습니다. 특히 일반 병사들에게 할당된 배급량을 부패한 고위 장교들이 사익을 위해 전용하면서 병사들이 영양실조와 어려움이 지속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보고서를 보면 죽지 않기 위해 주민들의 식량과 물품을 훔쳐야 했던 전직 북한군 출신 탈북민들의 증언들이 자세히 담겨 있습니다. 

유엔 북한인권 조사위원회 청문회에서 증언했던 김주일 씨입니다.

[녹취: 김주일 씨] “외출, 외박, 휴가도 거의 없이 10년 이상 군대에 복무해야 하고, 군대는 일부 간부 자녀들이나 힘 있는 자들의 전유물이고 일반 주민들의 자녀들은 단 한 번도 인생을 꽃피울 기회도 갖지 못한 채 인권 유린을 당하는 실상.”

북한인권위원회의 그레그 스칼라튜 사무총장은 휴전선 인근 북한 군인들에게 그나마 잠시 낙이 됐던 확성기 방송이 중단돼 매우 안타깝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군인 등 북한 주민들이 북한의 변화에 긍정적 기여를 할 수 있도록 정보 유입을 지속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녹취: 스칼라튜 총장] “북한이 현대 국가로 바뀌려면 북한 주민들의 역할이 상당히 중요합니다. 북한 주민들이 그런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바깥세계가 정보를 전달해야 하고 이런 대북 방송을, 물론 수단은 둘째치고, 방송을 줄이고 중단한다는 것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 없습니다.

VOA 뉴스 김영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