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지난달 9일 평양 4.29 문화회관에서 열린 7차 노동당 대회에서 대의원들의 발언을 듣고 있다. (자료사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2016년 5월 열린 7차 노동당 대회에서 대의원들의 발언을 듣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한국 청와대가 종전 선언과 평화협정 체제 전환에 대해 언급하면서 한반도 평화협정이 새삼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평화협정은 북한 정권이 정전협정 직후부터 수십 년간 주장해온 사안이지만, 과거 언급을 보면 말을 자주 바꿔 일관성이 없다는 지적입니다. 김영권 기자가 보도합니다.

지난 18일 한국의 언론 단체인 관훈클럽이 주최한 간담회.

평화협정 체결을 지지해온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이 한국전쟁 종전과 관련해 북한 정권이 남북협상에서 미군 철수를 요구한 적이 없다고 말합니다.

[녹취:이종석 전 장관] “종전을 얘기하면 주한미군 철수로 가지 않겠는가? 그렇게 생각하는 분들이 많은데요. 이거는 정말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단 한 번도 북한이 우리한테 협상장에서 주한미군 철수를 얘기한 적이 없습니다. 북한이 주한미군을 갖다가 만약에 적대 정책, 북미 관계가 정상화되면 용인할 것이다라는 것은 저는 그걸 믿어도 좋다.”

이 발언은 트럼프 대통령이 17일 한국과 북한이 종전협정에 이르는 것을 논의하고 있다며 축복을 빈다고 말한 뒤 나왔습니다.

하지만 이 전 장관의 주장은 김정은 위원장이 지난 7차 당대회 보고에서 강조한 발언과 배치됩니다.

[녹취:김정은 위원장] “미국은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고 남조선에서 침략 군대와 전쟁 장비들을 모두 철수시켜야 합니다.”

김 위원장의 이 발언은 남북협상이 아니라 북한 내 주요 정치행사에서 나왔지만, 북한 정권의 말 바꾸기는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라고 미 전문가들은 지적합니다.

에반스 리비어 전 국무부 동아태 담당 수석 부차관보는 VOA에 재임 시절 북한 관리들은 미-북 대화에서 한국 전쟁의 공식적인 종전은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 철회, 이에 따른 미-한 상호방위조약 폐기와 주한미군 철수로 연결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리비어 전 수석 부차관보] “We hear this very often. From North Korea, we’ve heard many times

미군 철수는 과거 1차 남북 정상회담에서도 나왔었습니다.

당시 정상회담의 산파 역할을 했던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은 자서전인 ‘피스메이커’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주한미군 주둔의 필요에 동의했다고 말했습니다. 김 위원장은 그러면서 왜 미군 철수를 계속 주장하는지를 묻는 김 전 대통령의 질문에 “우리 인민의 감정을 달래기 위한 것이니 이해해 주기 바란다”고 말했다고 임 전 장관은 전했습니다.

이후에도 북한은 지속적으로 주한미군 철수를 촉구했습니다.

전문가들은 이런 북한 수뇌부의 태도가 매우 이중적이라고 지적합니다.

미 랜드연구소의 브루스 베넷 선임연구원은 VOA에 북한 정권은 평화협정을 통해 주한미군의 주둔 근거를 무력화하고 동맹 와해, 미군을 철수시켜 궁극적으로 한국에 대한 무력 통일을 이루려는 목표를 포기한 적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녹취:베넷 선임연구원] “if he wants peace, he would start changing the way he indoctrinates his people……”

베넷 선임연구원은 그러면서 김정은이 평화협정에 진정성을 보이려면 먼저 북한 주민들에게 미국이 ‘철천지원수’이자 ‘전쟁광’이라는 거짓 선전과 세뇌부터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 때문에 북한이 평화에 대해 진정성을 보이려면 영변의 핵시설 뿐 아니라 대표적인 반미 선전 시설인 신천박물관까지 닫아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습니다.

북한이 ‘평화’의 의미를 미국·한국과 다르게 해석하는 것도 문제로 지적됩니다.

정영태 한국 북한연구소장은 과거 언론(중앙일보) 기고에서 ‘평화’에 대한 사전적 개념과 정치적 개념을 북한 정권이 다른 게 해석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북한 조선말 사전에는 ‘평화’가 전쟁, 폭력충돌 등이 없는 평온한 상태’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김일성 저작집에는 “평화는 제국주의자들을 쓸어버리지 않고서는 진정한 평화에 대하여 생각할 수 없다”며 ‘미 제국주의’ 배격이 곧 ‘평화’로 치부되고 있다는 겁니다.

미국에서는 북한이 비핵화와 평화협정을 상황에 따라 분리·병행하는 것도 걸림돌이란 지적이 꾸준히 제기됐었습니다.

존 커비 전 국무부 대변인은 지난 2016년 1월 ‘월스트리트저널’ 신문에 북한의 4차 핵실험 전 북한측 요구로 평화협정 논의를 시작하기로 미북이 비밀리에 합의했지만, 논의에 핵 협상을 포함해야 한다는 미국의 요구를 북한이 거부해 협상이 결렬됐다고 밝혔었습니다.

많은 미 전문가들은 북한의 비핵화를 결의한 9·19 공동성명 제4항에 당사국들이 한반도의 영구적 평화체제를 논의하기로 합의한 사실을 지적하며 평화협정이 비핵화의 틀 안에서 다뤄져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미국외교협회(CFR)의 스콧 스나이더 선임연구원은 당시 논란이 불거졌을 때 VOA에 미국과 북한 사이에 평화협정에 대해 큰 간극이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녹취:스나이더 선임연구원] “I think there is still a gap, a pretty significant gap between the US and DPRK. They would…”

미국은 북한이 비핵화에 대해 진지하게 논의할 수 있다는 전제로 평화협정에 대해 논의할 수 있다는 입장이지만, 김정은은 이를 별개로 보기 때문에 절충이 쉽지 않아 보인다는 겁니다.

실제로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지난 2016년 4월 ‘조선중앙방송’ 사회자와의 문답에서 비핵화와 평화협정 병행을 있을 수 없다고 강조했었습니다.

[녹취:외무성 대변인] “그 무슨 6자회담이니 비핵화와 평화협정 체결의 병행 추진이니 하는 소리들이 나오고 있다. 도저히 대화에 대해 생각할 분위기가 못 된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능히 알 수 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에 관한 청와대 고위관계자의 최근 발언은 북한이 비핵화와 평화협정을 동시에 추진할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어 주목됩니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18일 트럼프 대통령이 말한 종전 문제 논의에 대해 ‘남북 간 합의를 거쳐 북미 단계에서 종전선언을 마무리하는 것이냐’는 질문에 “여러분이 상식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직접 당사자 간에 합의가 이뤄져야 한다”며 “우선 남북 간 어떤 형식으로든 합의가 이뤄지길 기대한다”고 덧붙였습니다.

VOA 뉴스 김영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