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7년 2.13 합의 직후 베이징에서 북 핵 6자회담 각국 대표들이 기념촬영을 했다. 왼쪽부터 사사에 겐이치로 일본 외무성 아시아대양주국장, 천영우 한국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 우다웨이 중국 외교부 부부장, 크리스토퍼 힐 미국 ...
지난 2007년 2.13 합의 직후 베이징에서 북 핵 6자회담 각국 대표들이 기념촬영을 했다. 왼쪽부터 사사에 겐이치로 일본 외무성 아시아대양주국장, 천영우 한국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 우다웨이 중국 외교부 부부장, 크리스토퍼 힐 미국 ...

트럼프 행정부 관리들은 한국 정부 특사단의 남북 합의 발표에 대해 매우 신중한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북한 정권이 과거에 합의했던 것들을 대부분 어겼기 때문에 옛 행정부의 실수를 절대 반복하지 않겠다는 겁니다. 실제로 남북이 이번에 합의한 많은 것들은 과거와 비교해 새롭지 않으며 북한 정권이 즐겨 썼던 수법이란 지적도 나오고 있습니다. 김영권 기자와 함께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진행자) 트럼프 행정부가 한국 정부의 남북 합의 결과에 관해 아주 신중한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유가 뭘까요?

기자) 과거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겁니다. 백악관 고위관리는 6일 미국은 북한과 27년이나 대화했지만, 북한 정권이 합의를 모두 어겼다고 지적했습니다. 이 때문에 미국은 평양의 어떤 발표도 회의적 태도를 가질 수 밖에 없다는 겁니다. 

진행자) 과거 북한과 협상했던 전 행정부 관리들의 반응은 어떤가요?

기자) 같은 입장입니다. 애리 플라이셔 전 백악관 대변인은 7일 ‘트위터’에 “북한은 클린턴 대통령에게 거짓말을 했다. 부시 대통령에게도 거짓말을 했다. 오바마 대통령에게도 거짓말을 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 북한이 당신에게 거짓말을 할 테니 준비하라”고 경고했습니다. 부시 전 행정부에서 북 핵 협상을 주도했던 크리스토퍼 힐 전 국무부 차관보 역시 6일 VOA에 김정은 정권의 발언은 과거와 매우 비슷하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힐 전 차관보] “What is interesting is some of the…”

과거에도 같은 말들을 들었기 때문에 새삼스럽지 않다는 겁니다. 

진행자) 이번 합의를 근거로 북한 정권이 과거에 합의를 어떻게 어겼는지 자세히 살펴볼까요?

기자) 대표적인 게 체제 안전보장과 핵 보유를 계속 연관시키며 조건을 자주 바꾸는 겁니다. 북한은 지난 2005년 9·19 공동성명에서 “모든 핵무기와 현존하는 핵 계획을 포기”하는 데 합의했습니다. 미국이 핵무기나 재래식 무기로 북한을 공격하거나 침공할 의사가 없다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입니다. 또 핵확산금지조약인 NPT 체제 복귀도 약속했습니다. 하지만 다음 해 1차 핵실험을 강행해 합의를 깼습니다. 

진행자) NPT는 가입과 탈퇴 등 말 바꾸기도 많았던 것 같은데요.

기자) 그렇습니다. 북한은 1985년에 NPT에 첫 가입했었습니다. 그러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특별사찰에 반발해 1993년 일방적으로 탈퇴를 선언했습니다. 이후 유엔안보리의 중재로 탈퇴를 유보했지만, 2차 북 핵 위기가 발생한 뒤 2003년 다시 탈퇴를 선언했습니다. 2005년 9·19 공동성명에서 복귀를 약속했지만, 다시 파기했죠. 국제사회는 북한의 이런 행태가 NPT 발효 이후 유례가 없는 것이라며 핵확산 방지에 중대한 도전이라고 우려했었습니다. 

진행자) 그러다 2007년에 2·13 합의, 오바마 행정부 때 2·29 합의도 일방적으로 파기했죠. 

기자) 맞습니다. 이렇게 합의와 파기를 반복하면서 결국 핵무력 완성 준비를 해 왔다는 지적입니다. 로버트 아인혼 전 국무부 비확산·군축담당 특보는 북한이 이번에 “군사적 위협 해소”와 “체제 안전 보장” 카드를 꺼내든 걸 볼 때 과거처럼 시간을 벌기 위해 대화를 활용하려는 의도일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녹취: 아인혼 전 특보] “Concern has always been that North Korea would use talk to play for time. It would use talks to advance its nuclear and missile program”

군사적 위협 해소와 체제 안전 보장 조건을 명확히 밝히지 않으면서 대화가 재개됐을 때 말 바꾸기를 할 우려가 있다는 겁니다.

진행자) “군사적 위협 해소”와 “체제 안전 보장”에 대해서는 북한 정권이 과거에 어떻게 표현했나요?

기자) “대북 적대정책 철회”를 다르게 표현한 것으로 풀이됩니다. 북한은 과거 미-한 합동군사훈련의 중단, 미-한 상호방위조약 파기와 연합사령부 해체, 주한미군 철수, 한국과 일본에 대한 핵우산 제공 철회, 미-북 평화협정 체결 등 다양한 요구를 했었습니다. 이런 주장은 특히 김정은 정권 출범 이후 핵·미사일 능력이 고도화되면서 자주 반복됐습니다.

[녹취: 북한 외무성 대변인] “미국이 핵 타격 수단들을 다시는 끌어들이지 않겠다는 것을 담보하여야 한다. 남조선에서 핵 사용권을 쥐고 있는 미군의 철수를 선포하여야 한다”
 
김정은 국무위원장도 지난 2016년 7차 당대회 보고에서 미군 철수를 공개적으로 직접 요구했었습니다.

[녹취: 김정은] “미국은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고 남조선에서 침략 군대와 전쟁 장비들을 모두 철수시켜야 합니다.”

진행자) 결국 비핵화에 대한 기존의 입장을 표현만 바꿔 각색했다는 얘긴가요?

기자) 미 전문가들은 대부분 그렇게 풀이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북한은 미군을 철수하면 비핵화하겠다고 명확히 확인한 적도 없습니다. 에반스 리비어 전 국무부 동아태 담당 수석 부차관보의 말을 들어보시죠

[녹취: 리비어 전 수석 부차관보] “We hear this very often. From North Korea, we’ve heard many times over the years and we have asked North Koreans…”

북한은 과거 미국과의 대화에서 미군 철수, 상호방위조약 폐기, 핵우산 제거 등을 핵 포기 조건으로 내세운 게 아니라 그렇게 하면 비핵화를 검토 혹은 그렇게 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기 때문에 전혀 새로울 게 없다는 지적입니다. 게다가 주한미군 철수는 과거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발언과도 배치되는 겁니다.

진행자) 무슨 얘긴가요?

기자) 제1차 남북정상회담의 산파 역할을 했던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은 저서 ‘피스메이커’에서 김정일 위원장은 통일 후에도 주한미군의 주둔이 필요하다는 김대중 대통령의 말에 동의했다고 말했습니다. 게다가 김 위원장은 김용순 비서를 1992년 미국에 특사로 보내 조선반도의 평화를 위해 미군이 (한반도에) 와 있는 게 좋다고 요청했었다고 말했다고 전했습니다. 미군이 평화유지군 역할을 해주길 바랐다는 겁니다. 

진행자) 그런데 왜 김정일 위원장은 계속 미군 철수를 외쳤나요?

기자) 당시 김대중 대통령도 왜 관영 매체를 통해 미군 철수를 주장하는지 물었다고 합니다. 그러자 김 위원장은 “우리 인민들의 감정을 달래기 위한 것이니 이해해 주기 바란다”고 답변했다고 임 전 장관은 말했었습니다. 북한이 이후 핵실험을 하며 미군 철수를 계속 주장하고 “서울 불바다”까지 협박한 것을 보면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지적입니다. 

진행자) 그런 측면에서 북한이 핵무기는 물론 재래식 무기를 한국을 향해 사용하지 않겠다고 확약했다는 것도 확인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기자) 미 전문가들은 진실이라면 다행스러운 얘기겠지만 믿기 힘든 얘기라고 지적합니다.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해 8월 선군절 4주년을 맞아 특수부대를 방문해 “오직 총대로 적들을 무자비하게 쓸어버리고 서울을 단숨에 타고 앉으며 남반부를 평정할 생각을 하여야 한다”고 말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었습니다. 로버트 애슐리 미 국방정보국장(DIA)은 6일 상원 청문회에서 김정일에서 김정은 시대로 넘어가면서 나타난 큰 변화는 전쟁에 대비한 실전 군사훈련을 매우 심각하고 철저하게 진행하는 것이라고 지적했었습니다.

[녹취: 애슐리 국장] ““I think the big change that we’ve seen from his father to KJU is the rigor of training. Kim jong-un has taken that readiness aspect very very seriously.”

미 랜드연구소의 브루스 베넷 선임연구원도 VOA에 “북한 정권은 결코 한국을 점령해 (무력)통일을 이루려는 목표를 포기한 적이 없다”며 평화 공세를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북한은 그밖에 정권 유지 등 억제수단, 무력 통일 수단, 강압외교를 통한 지원 획득, 외부의 위협을 계속 강조해 체제를 결속하려는 목적 등 다양한 이유로 핵 개발을 하는 것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합니다.

진행자)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비핵화는 선대의 유훈이라고 말했다고 한국 특사단이 밝혔는데, 북한 관영 ‘노동신문’은 다른 얘기를 했다고요?

기자) 네 노동신문은 7일 ‘조선의 핵 보유는 정당하며 시비거리가 될 수 없다”는 제목의 논평을 냈습니다. 민족의 운명, 최고 이익, 미국의 위협에 대응해 “핵 억제력 강화조치는 정당하다”고 주장한 겁니다. 게다가 ‘선대의 유훈’이란 표현도 과거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한국 측 인사들을 만나 종종 사용하던 표현입니다. 김 위원장은 지난 2005년 정동영 당시 통일부 장관에게 “한반도 비핵화는 선대의 유훈이며 여전히 유효하다”고 말했었습니다. 백악관 관리들은 북한 정권의 이런 신뢰할 수 없는 전례들을 이미 꿰뚫고 있기 때문에 말이 아니라 진정성 있는 행동으로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판단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김영권 기자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