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F 케네디 대통령이 쿠바 사태 당시인 1962년 10월 23일 쿠바에 대한 해상봉쇄를 선포하는 문서에 서명하고 있다.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쿠바 사태 당시인 1962년 10월 23일 쿠바에 대한 해상봉쇄를 선포하는 문서에 서명하고 있다.

미국 전문가들이 북 핵 문제 해법과 관련해 미 정부가 과거에 겪었던 다양한 역사적 사례들을 제시하며 트럼프 행정부에 방향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선제 타격과 외교적 해법 지지자들이 내세우는 역사적 교훈이 취향에 맞게 각기 다르다는 겁니다. 김영권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북한의 핵·미사일은 과연 임박한 위협(imminent threat)일까?

북한 문제가 최대 안보 위협이라는 데 이견은 거의 없지만, 당장 임박한 위협인지에 대해서는 미국에서 의견이 많이 갈립니다.

임박한 위협으로 보는 전문가들은 시간이 많지 않기 때문에 트럼프 행정부가 자위적 차원에서 대북 선제공격을 진지하게 검토해야 한다고 촉구합니다.

하지만 대화론자들은 위협이 당장 임박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제재를 강화하면서 탐색적 대화 등을 통해 외교적으로 북한 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특히 양측은 모두 미국이 과거에 겪었던 주요 역사적 사례와 교훈들을 내세우며 자신들의 의견이 옳다는 주장을 펴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전문가는 존 볼튼 전 유엔대사와 그레이엄 앨리슨 하버드대 교수입니다. 

[녹취: 볼튼 전 대사] “I just think that we’ve run out of time…”

볼튼 전 대사는 26일 ‘VOA’와의 인터뷰에서 북 핵 문제를 해결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며 대북 군사 행동은 반드시 북한 정권이 미국 본토 타격 능력을 갖추기 전에 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볼튼 전 대사는 이틀 뒤 ‘월스트리트 저널’ 신문 기고를 통해 이런 주장을 정당화하는 역사적 사례로 ‘캐롤라인 테스트’를 지적했습니다.

세계 역사에서 선제적 자위권 행사의 고전으로 불리는 ‘캐롤라인 테스트’는 1837년 영국이 미국 영해를 침범해 캐나다 반군이 무기 중개선으로 활용하던 증기 선박인 캐롤라인호를 파괴한 사건에서 유래됐습니다.

당시 대니얼 웹스터 미 국무장관은 영국에 서한을 보내 선제적 자위(self-defense)의 필요가 임박했고 압도적(overwhelming)이며 다른 수단을 선택할 여유와 생각할 시간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라고 촉구했습니다. 

이후 영국은 웹스터 장관이 제의한 조건을 수용한 뒤 양측이 선제적 자위권의 필요성에 합의하면서 국제 관습법으로 후세에 영향을 미치게 됐습니다. 

이는 2차 세계대전 뒤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에서 상대의 위협이 임박해 먼저 자위권을 행사했다는 독일의 주장을 무력화하는 근거가 됐습니다.

볼튼 전 대사는 기고에서 대북 선제공격 반대론자들은 1837년 영국은 공격하기 전에 캐롤라인호가 캐나다에 도착할 때까지 기다렸어야 했다고 논쟁할 것이라며 거듭 북한의 위협이 임박했음을 강조했습니다.

그러면서 핵과 탄도미사일 시대의 선제적 자위권은 증기 시대와 달리 위협의 속도와 파괴력에서 비교조차 하기 힘들다고 지적했습니다. 이 때문에 북한의 핵무기 프로그램에 대응한 미국의 선제 타격은 웹스터 전 장관의 캐롤라인 테스트 조건을 위반하지 않는다는 주장입니다. 

또 2차 세계대전까지 해상의 영해를 3 해리(5.5km)로 고집하던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독일 잠수함들의 공격을 받은 뒤에야 자위권 수역을 뒤늦게 그린란드와 아이슬란드, 심지어 서아프리카 일부까지 확대한 사례,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1988년에 국가안보를 이유로 영해를 일방적으로 3 해리에서 12해리(22km)로 확대한 사례도 지적했습니다. 

볼튼 전 대사는 두 대통령 모두 (원칙을) 번복한 게 아니라 현실적으로 조정한 것이라며 이런 결정은 국제사회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다는 주장을 폈습니다. 

볼튼 전 대사와 선제공격 지지자들은 추가적인 예로 이스라엘이 적대 국가의 핵무기 프로그램을 겨냥해 1981년 이라크와 2007년 북한이 지원한 시리아 내 핵 시설을 선제 타격한 사례를 지적하기도 합니다. 

트럼프 행정부도 이런 전례를 교훈으로 삼아 선제 타격의 필요성을 진지하게 검토해야 한다는 겁니다.

반면 그레이엄 앨리슨 하버드대 교수는 지난해 12월 ‘뉴욕타임스’ 기고와 벨퍼센터 인터뷰에서 1950년 중국의 마오쩌둥과 1962년 존 에프 케네디 대통령의 교훈을 트럼프 대통령이 공부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미국은 6·25 한국전쟁 당시 중공이 내전으로 시달렸기 때문에 전쟁에 개입하지 못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마오쩌둥은 중공군 100만 명을 보내 미군이 압록강에서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는 겁니다.

앨리슨 교수는 미국이 북한을 공격하면 북한 정권의 보복으로 서울에서 많은 인명 피해가 발생해 한국이 보복하고 동맹인 미국이 도울 것이라며,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이 미-한 주도의 흡수 통일을 그저 바라만 보지는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녹취: 앨리슨 교수] “If we attack North Korea, American intelligence community believes North Korea is going to respond by attacking Seoul…”

지난 500년간 신흥 강국이 기존 강대국을 위협한 사례 16건 가운데 12건이 전쟁으로 이어졌기 때문에 미국의 대북 선제공격은 전쟁 위험을 증폭시킬 것이란 주장입니다.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가 지금의 북 핵 위기와 비슷하다는 지적도 꾸준히 나오고 있습니다. 

[녹취: 앨리슨 교수] “this is like a Cuban missile crisis in slow motion…” 

앨리슨 교수는 당시 핵전쟁 가능성을 무릅쓰고 쿠바를 공격할 것인가, 아니면 미국의 앞마당인 쿠바에 소련의 핵무기 배치를 묵인할 것인지를 놓고 고민하던 케네디 대통령이 결국 니키다 흐루쇼프 소련 서기장과 한 발씩 양보해 전쟁을 막았다고 말했습니다.

당시 소련은 미사일을 철수했고 미국은 그 대가로 터키에 배치한 미국의 미사일을 비밀리에 철수했습니다. 이런 조치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에 대한 타격 우려와 미국의 위약함으로 비칠 수 있다는 이유로 앞서 케네디 대통령과 보좌관들이 거부했던 방안이었습니다. 

앨리슨 교수는 기고에서 “자신의 핵심 이익을 지키는 가운데 핵 강국들은 굴욕적인 후퇴 아니면 핵전쟁이란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대치 상황을 반드시 피해야 한다”는 케네디 전 대통령의 발언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현명한 조언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대화론자들은 또 전쟁으로 얻을 게 아무 것도 없고 잃을 것만 많은 나라가 외부의 위협을 받을 때 전쟁이 시작됐다는 영국 역사가 AJ.P. 테일러의 말을 인용해 트럼프 행정부가 북한에 과잉 대응을 하지 말 것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대화론자인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국무부 장관은 지난달 6일 보스턴 강연에서 외교가 왜 국가 안보 사안에서 핵심적인 수단이 돼야 하는지를 가르치는 자신의 조지타운대 수업에서 트럼프 행정부 지도부가 혜택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미 국방부가 이런 논리를 이해하고 있다는 게 흥미롭다며 짐 매티스 국방장관이 “외교관을 더 확보하지 못하면 나는 총알을 더 가져야 한다”고 말한 점을 지적했습니다.

올브라이트 전 장관은 “미국은 다른 나라들이 민주화가 될 때 더 안전하다”며 거듭 북한과의 대화를 주장했습니다.

지난 2000년 평양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났던 올브라이트 전 장관은 연설 때마다 미국 행정부 교체로 당시 대화의 동력을 살리지 못해 아쉽다는 말을 반복했었습니다. 

VOA 뉴스 김영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