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지난 2016년 9월 베네수엘라에서 열린 제17차 비동맹운동 정상회의에 참석했다.

미 중앙정보국(CIA)이 이번 주 북한 고위급 대표단을 이끌고 방한할 예정인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옛 보고서에서 당 중앙위원회 세대교체의 선두주자로 묘사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1970년대 김일성 주석이 빨치산 출신 부하들 밖에서 등용했던 첫 전문 인력 가운데 한 명으로 소개했습니다. 김영권 기자가 보도합니다. 

CIA는 지난 1975년 4월 작성한 북한 외교 인물 보고서(Who manages Foreign Relations?)에서 김영남 등 외교 관리 3인방을 집중 조명했습니다.

당시 북한 노동당 정치국은 항일 빨치산 출신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는데 김일성 주석이 젊은 외교.경제 전문가를 등용하려는 새 계획에 따라 뽑힌 인물이 김영남이었다는 겁니다. 

CIA는 북한 최고위 기구였던 노동당 정치국 위원들은 대부분 1930년대 김일성과 항일투쟁을 함께 벌였던 빨치산 출신들로 ‘행정 능력’이 아니라 ‘충성’에 기반을 둔 사람들이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김일성이 1966년부터 외교와 경제 전문가들의 필요성을 느껴 당 중앙위 정치국을 확대했지만, 이때 등용한 인물들(김동규, 박성철, 소철) 조차도 빨치산 출신들이었다고 덧붙였습니다.

이 때문에 김 주석이 구체적인 문제를 다룰 수 있는 전문성을 가진 새 인물이 필요하다는 것을 자각하고 내각에 있는 신진 핵심 인물들을 노동당 정치국으로 이동시켰다는 겁니다. 

CIA는 이런 계획에 따라 1972년부터 1974년 사이에 김영남과 유창식, 허담 3인방이 처음으로 정치국 후보위원이 됐다고 지적했습니다.

이들은 특히 당시 4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으로 60대 이상의 기존 정치국 위원들보다 훨씬 젊고 빨치산 경력이나 노동당의 계파 배경도 없었다고 CIA는 설명했습니다. 

게다가 학력이 높고 기존 정치국 위원들보다 국제 감각이 있으며 국제부에서 북한의 거친 외교 스타일을 매끄럽게 닦는 데 기여했다고 평가했습니다. 

CIA는 또 김영남 등 3인방이 해외 공산주의 세계 경험이 거의 없는 기존 정치국 위원들과 달리 개발국들과의 관계를 개척하고 국제회의에서 북한의 입지도 강화했다고 지적했습니다. 

지난 2007년 10월 평양을 방문한 노무현 한국 대통령이 국빈만찬에서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건배하고 있다.
지난 2007년 10월 평양을 방문한 노무현 한국 대통령이 국빈만찬에서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건배하고 있다.

​​1928년생인 김영남은 1950년대 김일성 대학 재학 중 모스크바 대학에서 외교학을 공부한 뒤 당 중앙위원회 국제부에서 활동했습니다.

CIA는 김영남이 1974년 정치국 후보위원에 지명되는 등 빠른 출세 가도를 달렸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1975년에 당 중앙위원회 비서국 비서가 됐으며 후보위원 중 서열 5위에서 2위로 올라섰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그가 이전까지 당 중앙위 국제부 부부장과 부장을 거치면서 소련과 동유럽과의 관계, 외교 정책의 틀을 책임졌다고 밝혔습니다. 

CIA는 김영남 등 3인방을 ‘떠오르는 세대’로 묘사하며 이들이 그저 재능만 인정받는 게 아니라 더 많은 노동당 내 책임과 외교의 무게감, 폭넓은 결정권을 갖게 됐다고 밝혔습니다.

또 이런 움직임은 국가와 당의 임무를 젊은 세대로 전환하려는 김일성의 의도를 반영하는 신호로 풀이했습니다. 

이에 따라 김영남과 유창식은 1975년에 당 중앙위 비서국의 북한 최연소 비서가 됐다고 CIA는 지적했습니다.

이렇게 1970년대 북한 노동당 중앙위 세대교체의 선두주자였던 젊은 김영남은 이제 90세의 고령이 되어 북한대표단을 이끌고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전령이 돼 한국을 방문하게 됐습니다. 

CIA는 그의 성격이나 스타일에 대해서는 보고서에서 언급하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 전문가들은 김 씨 가족에 대한 충성도가 굳건하고 외교적으로는 유연성을 가진 인물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가 1998년부터 거의 20년째 명목상 국가수반인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유도 이런 배경이 작용했다는 분석입니다.

VOA 뉴스 김영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