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오른쪽)이 12일 워싱턴 애틀랙틱카운슬에서 열린 포럼에서 북한과의 조건 없는 대화 가능성을 언급했다.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오른쪽)이 12일 워싱턴 애틀랙틱카운슬에서 열린 포럼에서 북한과의 조건 없는 대화 가능성을 언급했다.

미국의 한반도 전문가들은 틸러슨 국무장관의 ‘전제조건 없는 대화’ 발언에도 미-북 대화가 현실화되기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백악관과 국무부가 일제히 틸러슨 장관의 발언을 뒤집는 듯한 대북 기조를 내놓음으로써 조율 부족을 노출했지만 큰 의미를 둘 필요는 없다고 진단했습니다. 함지하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수미 테리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북한이 대화할 준비가 돼 있지 않다는 점을 상기시켰습니다. 

[녹취: 테리 전 보좌관] “I don’t think North Koreans are ready to talk…”

테리 전 보좌관은 14일 ‘VOA’와의 전화통화에서 핵 프로그램을 완성해야만 대화 테이블로 복귀하겠다는 게 북한의 분명한 입장이라고 밝혔습니다. 

따라서 핵탄두의 재진입기술 보유 사실을 증명하지 못한 현 시점에서 북한이 대화 테이블로 돌아올 가능성을 매우 회의적으로 본다고 말했습니다. 

앞서 테리 전 보좌관은 지난 5월 스웨덴 안보개발정책연구소가 개최한 반관반민 대화에 미국 대표로 초청돼 북한 외무성 산하 군축·평화연구소 인사들을 만난 바 있습니다. 

결국 미국이 북한과의 대화를 희망한다고 해도 북한 스스로가 목표를 달성하지 않은 상황에서 이를 받아들일 가능성이 낮다는 게 이들 북한 측 인사들의 입장이었다는 겁니다. 

니컬러스 에버스타트 미국기업연구소(AEI) 선임연구원도 북한이 대화 제의에 응하지 않을 것으로 내다 봤습니다. 

[녹취: 에버스타트 연구원] “The North Korean government is always in the driver seat…”

북한은 언제나 자신들의 핵과 미사일 문제에 있어서 운전석, 즉 주도권을 쥐고 있어 북한이 어떤 결정을 내릴 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겁니다. 

그러나 북한이 핵무기를 미국 본토에 다다를 수 있는 점을 증명하지 못한 현 시점에선 대화 가능성이 사실상 없다고 말했습니다. 

에버스타트 연구원은 통상 북한이 공격적으로 행동한 뒤 취할 수 있는 이득이 있는지를 살펴본다고 지적했습니다. 이런 과정을 거친 후 최종적으로 원하는 것을 얻어내지만 북한이 아직 이 단계에 다다르진 않은 것 같다는 진단입니다. 

데이비드 맥스웰 조지타운대학 전략연구센터(CSS) 부소장도 북한이 먼저 대화할 준비가 돼 있지 않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녹취: 맥스웰 부소장] "North Korea has said that time is not right for talks..."

현재로선 대화를 무시하고 있는 쪽이 북한이며, 대화를 위한 대화를 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입니다. 

앞서 틸러슨 국무장관은12일 워싱턴의 애틀랜틱카운슬에서 열린 포럼에서 북한과의 첫 번째 대화는 전제조건 없이 할 수 있다고 말했었습니다. 

이 같은 발언은 북한과의 대화조건을 분명히 했던 미국 정부의 과거 기조와 다른 것으로, 대북 접근법에 변화가 생긴 게 아니냐는 추측을 낳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미국의 전문가들은 틸러슨 장관의 발언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습니다. 

테리 전 보좌관은 “당시 틸러슨 장관의 발언이 나온 직후 (한반도 전문가들) 모두가 놀랐지만, 곧바로 백악관과 국무부가 입장을 분명히 하면서 어느 정도 정리가 됐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백악관 관계자들과 이야기를 나눠본 결과 당시 틸러슨 장관의 발언은 질문에 대한 답변을 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으로, 미리 조율되지 않은 것이라는 게 확인됐다고 말했습니다. 

따라서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정책이 바뀐 것은 전혀 아니라고 테리 전 보좌관은 덧붙였습니다. 

다만 테리 전 보좌관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내년 1월 신년사의 어조가 바뀌고, 동시에 한국에서 열리는 올림픽을 고려해 미국과 한국이 연합군사훈련을 연기한다면 분위기가 어느 정도 완화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로버트 매닝 애틀랜틱카운슬 연구원은 틸러슨 장관이 자신의 역할을 하고 있을 뿐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매닝 연구원] “What’s the point of diplomacy…”

북한은 과거에도 자신들을 핵 보유국으로 인정하라는 것을 대화의 조건으로 내세웠다며, 이는 그 어떤 누구도 귀담아 듣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불필요한 논쟁이라는 겁니다. 

매닝 연구원은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서로의 입장을 “소개하고 탐색하는” 성격의 만남을 조건 없이, 또 아무 의제도 올려놓지 않고 갖겠다는 건 충분히 타당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에버스타트 연구원은 당시 틸러슨 장관의 발언을 두 가지 가능성으로 해석했습니다. 

[녹취: 에버스타트 연구원] “The statement was directed to the leadership at North Korea…”

우선 북한 지도부에게 보내는 메시지의 성격 입니다. 국제사회 제재가 북한에 충분한 고통을 안기고 있고 이 때문에 북한 정권이 협상을 바랄 것이라는 전제가 깔려있다는 겁니다. 

아울러 북한 외에 다른 나라들을 향한 메시지로, 트럼프 행정부는 전쟁광이 아니며 폭탄을 떨어뜨리기 전까진 외교적 대화를 할 것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고 있다고 에버스타트 연구원은 분석했습니다. 

맥스웰 부소장은 특히 ‘대화’와 ‘협상’이 서로 다른 개념이라는 데 초점을 맞췄습니다.

[녹취: 맥스웰 부소장] “He said talks without preconditions, but not negotiations…”

틸러슨 장관이 당시 발언에서 대화에 조건이 없다고 했을 뿐, 협상에 조건이 없다고 했던 게 아니란 점이 명확했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싸우는 것보단 대화가 낫다는 사실만큼은 모두가 동의하고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스티븐 노퍼 코리아소사이어티 부회장은 틸러슨 장관의 12일 발언에서 북한이 거쳐야 할 ‘조용한 기간’이 언급된 점을 주목했습니다. 

[녹취: 노퍼 부회장] “So if you go back to Secretary Tillerson, what he said was…”

틸러슨 장관이 북한과 협상에 나서기 위해선 ‘냉각을 위한 시간’이나 ‘아무 활동이 없는 시기’가 필요하다고 말했는데, 이는 국무부의 13일 입장과 일치하기 때문에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노퍼 부회장은 그러나 백악관의 경우 지금이 대화 시기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면서, 이는 백악관과 국무부 사이의 협조가 잘 이뤄지지 않는 신호로 해석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굿캅 배드캅’ 전략 즉, ‘착한 역할’과 ‘나쁜 역할’을 틸러슨 장관과 트럼프 대통령이 나눠 맡는 것일 수 있다고 노퍼 부회장은 밝혔습니다. 

VOA 뉴스 함지하입니다.